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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못난인형 Mar 19. 2023

나의 겨울은

난방비 폭탄이 터진 이후로 “이달 관리비 얼마 나왔어요?”가 안부 인사가 되었다. 모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단지 내 친구 네 명 모두가 전년 대비 사용량은 비슷했으나 난방비가 10만 원 안팎으로 높게 나왔다며 하소연이었다. 난방을 안 해도 실내 적정 온도인 20~22가 유지되어 약하게 틀었는데도 이 정도라니 주거환경이 열악한 취약계층의 고충은 오죽하랴 싶다. 


이사 오기 전 살던 곳은 5층짜리 건물을 재건축한 대단지 아파트였다. 재래시장 가깝고, 역세권이고 속칭 초품아로 인기 좋은 곳이었다. 단점도 있었다. 대부분 가정이 입주 전 유행을 따라 개별확장을 했다. 그 때문인지 난방 문제가 심각했다. 창문에 에어캡과 문풍지를 설치하고 두꺼운 커튼을 달고, 난방 텐트와 온수 매트를 깔고 내복을 입고 수면 양말을 신어도 견디기 어려웠다. 시중에 떠도는 난방비 절약법은 거의 실천해 봤지만 크게 도움이 되진 못했다. 참다못해 보일러를 틀면 작동 소리만 요란할 뿐 실내온도는 별로 오르지 않았고 난방비만 엄청나게 청구되었다. 많은 장점을 누를만한 크나큰 문제였다.   

   

4월에도 잔설이 날리던 강원도 깡촌에서 자란 나는 추위에 유독 약했다. 밥은 먹고 살았기에 배고픔은 없었지만, 강추위를 막을만한 변변한 옷이나 땔감이 부족해 겨울이 가까워질수록 몸이 움츠러들었다. 유난히 길고 깊은 겨울을 어찌 견딜지 초가을부터 걱정스러웠다. 정작 가족의 겨울나기를 준비해야 할 아버지는 따끈한 두붓집 사랑채에서 날 새는 줄 모르고 노름에 빠졌기에 이웃집 처마 밑에 가득히 쌓아둔 장작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여인들이 겨울준비로 몇백 포기 김장하듯 남정네들은 굴뚝을 청소하고 처마 밑에 땔감을 쌓았다. 지게 가득 땔감을 싣고 거뜬히 걷던 성실한 아버지를 둔 친구가 부러웠다. 드라마에 나오는 부자 아버지가 나에게도 있었으면 하는 헛된 바람을 가지기도 했다. 통나무를 엮어 지게로 나르던 남자들과 달리 엄마가 매고 온 나무는 작고 어설펐다. 게으른 어린 손도 거들어야 했다. 눈길을 걸어 뒷산에 올라 약한 힘으로도 꺾기 좋은 싸리나무나 잔가지를 모으는 게 전부였지만.      

중학교를 졸업하고 난생처음 오지마을인 촌구석을 벗어나 춘천의 허름한 단칸방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전교에서 나름 공부깨나 하고 경제력도 뒷받침되어야 할 수 있는 유학 생활이었지만 나만은 예외였다. 성적도 경제력도 부족했지만, 오직 답답한 시골을 벗어나 탁 트인 도시에서 혼자 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부모님께 눈물로 호소했고 머리 싸매고 누워가며 시위를 벌였다. 6년 전에 있었던 언니의 투쟁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또 한 번의 전쟁이 힘에 부쳤던지 두 분은 어렵사리 허락해주었다. 농사를 짓던 부모님이 때마침 직장생활을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에 우겨서 시작한 유학 생활이라 용돈 올려 달라는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살림살이라야 밥그릇, 국그릇, 냄비, 접시 몇 개가 고작이었고 반찬도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한 가지로 해결하곤 했다. 부모님이 준 적은 돈으로 방세를 내고 나면 학용품 사기도 부족했다. 옷을 사 입거나 여가활동을 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매서운 겨울나기는 특히 몸과 마음을 움츠리게 했다. 연탄 광 안쪽으로는 집주인의 연탄이 가득 쌓여있고 가난한 자취생의 연탄은 문 앞에서 두 줄로 낮게 앉아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 연탄집게를 든 손이 바르르 떨렸다. 나쁜 손은 주인집 연탄을 집어 들었다. 기억해보면 여러 번에 걸쳐 훔쳤고 집주인이 모를 리가 없었을 텐데 한 번도 물어보거나 다그친 적이 없었다. 죄송하고 감사하다. 

단짝이던 친구 J는 고향이 같은 자취생이었다. 뽀얀 얼굴에 동그랗고 커다란 눈, 우월한 키에 심성이 착하고 익살스러워 함께 있는 이도 행복하게 해주는 능력자이기도 했다. 읍내에서 호텔을 운영하던 아버지를 둔 덕에 돈 걱정도 없었다. 친구의 번듯한 자취방에는 몸에 좋은 맛있는 반찬이 가득했다. 커다란 찬합에 종류별로 담겨있던 먹거리를 나 포함한 여러 친구가 참새 방앗간처럼 드나들며 먹었다. 먹성 좋은 친구들을 배불리 먹이고도 부족함이 없었다. 연탄값 걱정 따윈 없이 어른들이 말하던 ‘지지는 기분’도 한껏 즐길 수 있었다. 오가며 가끔 들르던 대부분 친구와 달리 가난한 자취생은 겨우내 빈대처럼 붙어살았다. 부담스러운 연탄값도 아끼고, 함께 먹는 즐거움도 누리고, 친구와 이야기 나누며 밤새는 줄 몰랐다. 가난하지 않은 자에게 겨울이란 기꺼이 반길 수 있는 살만한 계절이었다. 


사람에겐 각자의 온기가 있다. 누군가는 한없이 따뜻하고 누군가는 미지근하고 때로는 온기가 전혀 없는 이도 보인다. 타고난 성향보다는 외부요인이 클 것이다. 요즘 주변을 살필 여유 없이 바쁘게 살며 웃음을 잃어가는 이웃이 늘고 있다. 내 마음의 온기는 어디쯤일까. 

장 보고 오는 길에 경비실에 간식을 나누고, 환경미화원 아주머니께 마스크를 선물하고, 따뜻한 인사말로 감사함을 전한다. 직장 일과 늦은 공부로 바쁜 일상임에도 복지관 소속 놀이활동가로 봉사활동도 한다. 놀이를 통해 아이들이 웃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통해 나 또한 그곳에서 삶의 활력을 얻는다. 지난 시절 J의 온기로 등 따시고 배부른 겨울을 보낼 수 있었던 것처럼, 나의 온기로 누군가의 겨울이 따뜻해지길 소망해 본다. 

(202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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