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자동차는 곧 신발이라고 한다. 신발이 없으면 걸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자동차가 없이는 미국 생활에 많은 제약이 따른다. 그래서 이민자들이 정보를 주고받는 인터넷 카페를 보면 미국에 와서 가장 먼저 자동차를 사라고 충고를 한다.
우리가 한국에서 계약하고 온 우리 집은 다운타운 근처에 있는 곳이라 마트며 공원 등이 가까이 있어 편리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동차는 필수이다. 처음 정착해서 자동차 없이 남편과 함께 다섯 식구의 마실 물과 음식, 생필품 등을 사다 나를 때면 우리의 관절이 염려가 되었다. 그래서 얼른 자동차를 사야겠다 생각했다.
미국에서 자동차를 사려면 먼저 새 차를 살 것인지 중고차를 살 것인지부터 결정해야 한다. 보통은 중고차 가격이 훨씬 저렴하고 선택지도 많아서 많이들 구매하는데 우리가 정착했을 당시의 상황은 딱히 그렇지 않았다. 코로나 이후 새 차 가격이 워낙 높아지고 환율도 비싸서 중고차를 찾는 사람은 많은데 중고차는 부족했다. 그래서 중고차 가격이 새 차 못지않게 비싸졌다. 3년 미만의 중고차는 새 차보다 비싼 경우도 있었고 3년이 넘어가는 중고차 가격에 6000불 정도 더 얹으면 새 차를 살 수 있었다. 우리의 고민도 깊어졌다. 중고차 가격에 조금만 더 얹으면 새 차를 살 수 있으니 말이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매장에서 중고차도 같이 판매를 하고 있어서 두 가지를 모두 염두에 두고 자동차 쇼핑에 나섰다.
시애틀의 뜨거운 여름날 아이들 셋을 데리고 자동차를 사러 다니는 일은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자동차 매장의 드넓은 야외 주차장에는 저마다 앞유리에 가격표를 단 자동차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호기롭게 많은 중고차들을 꼼꼼하게 보았지만 생각보다 비싼 가격과 짧은 워런티 때문에 그 많은 차를 보아도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점점 더위에 지치고 아이들의 징징거림에 지쳐 나중에는 차를 보는 둥 마는 둥 하게 되었다. 며칠을 그렇게 허비하다가 우리는 전략을 수정했다. 새 차를 사기로 말이다. 조금만 더 주고 새 차를 사면 워런티 기간도 길고 나중에 차를 비싸게 팔 수도 있으니 훨씬 남는 장사로 느껴졌다. 중고차를 잘못 사서 수리비가 엄청 많이 나왔다는 무시무시한 후기글들은 우리를 확신에 차게 만들었다.
새 차를 사려고 보니 5인 가족인 우리에게 적합한 SUV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독일차들은 미국에서 유지보수가 어렵다는 말들이 많았다. 실제로 내가 사는 시애틀 근교에서는 벤츠나 아우디 등의 독일차가 많이 보이지 않았다. 일본차가 많았다. 그리고 한국차도 많이 보였다. 거리에는 심심치 않게 엘란트라(아반떼의 미국이름)가 보였고 팰리세이드, 텔룰라이드 등의 대형 SUV도 종종 보였다. 이곳 미국에서 지나가는 한국차들을 볼 때면 괜스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자랑스러웠다. 외국 나오면 다 애국자가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도 당연히 한국차를 사야 할 것만 같았다.
2021년 미국의 골프황제 타이거우즈는 심각한 자동차 전복사고로 목숨을 잃을 뻔했다. 다행히 우즈는 심각하지 않은 다리 부상에 그쳤고 전문가들은 그 당시 우즈가 탑승한 제네시스 덕분에 큰 부상을 면했다고 판단했다. 제네시스에 장착된 에어백 성능에 극찬했으며 까다로운 미국의 충돌테스트에서도 최우수 등급을 받으며 제네시스를 비롯한 한국차들은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미국인들마다 다르겠지만 대체적으로 미국인은 자동차를 구매할 때 브랜드관여도보다는 안전과 성능을 우선시하는 것 같다. 그동안 일본차들이 미국의 자동차 시장을 거의 점령했던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일본의 도요타, 혼다 등의 차는 안전하고 고장이 적다는 미국인들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차들이 무섭게 따라오고 있다. 안전과 성능이 입증되고 세련된 디자인과 다양한 옵션기능까지 누릴 수 있는 한국차를 보고 어찌 다른 차를 살 수 있을까. 내가 차를 사러 다녀보니 이건 애국심의 문제가 아니었다. 정말 한국차를 사고 싶었다. 그런데 요즘 텔룰라이드를 사려면 마크업(프리미엄)이 6천 불, 펠리세이드를 사려면 3천 불을 더 얹어줘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반면에 일본차는 할인에 할인을 더해 우리를 유혹한다. 너무 비싸서 한국차를 못 사고 일본차를 사는 현실이었다. 렉서스보다 비싼 제네시스는 그냥 구경만 했다.
하루는 둘째 딸이 학교에 다녀와서 간식을 먹다가 나에게 묻는다.
“엄마, 내 친구 스테파니(미국아이)가 같이 춤을 추자고 부르던 노래인데 한국 노래래요. 나는 처음 듣는 노래인데 같이 부르자고 하더라고요.”
용케도 제목을 물어 알아온 우리 둘째 딸은 ‘큐피드(Cupid)’라는 노래를 찾아달라고 패드를 가져왔다. 우리 가족은 처음 듣는 K-Pop이었는데 미국에서 느끼는 K-Vibe에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날 열심히 노래와 춤을 연습해 간 둘째 딸은 다음날 친구들과 같이 놀이터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놀았다고 한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는 한국인이 거의 없다. 그래서 매일 아침 도시락을 쌀 때마다 고민이 생긴다. 너무 한국적인 음식을 싸주면 아이가 불편해할까 싶어서 말이다. 간단한 샌드위치를 싸주다가 그래도 요즘 미국에서 김밥이 대인기라길래 도시락으로 김밥을 싸준 날이었다. 그날 아이들의 도시락은 따로 설거지가 필요 없을 정도로 깨끗했다. 너의 도시락 멋지다며 한 마디씩 하는 친구들, 어떤 음식이냐며 묻는 친구들, 지나가는 선생님도 맛있어 보인다며 관심을 보였다는 말에 기분이 좋았다고들 한다.
중학교에 다니는 큰 딸은 수업 중 CNN 기사로 토론을 하는데 하루는 토픽으로 south korea의 음악과 드라마, 음식에 열광하는 미국인들의 트렌드를 다루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예전에는 한국인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다던데 요즘의 미국은 생활 구석구석 한국이 가까이 있다. 우리 집 근처 트레이더조의 김밥은 몇 달째 품절이라 구경조차 쉽지 않아 아쉬운 마음에 떡볶이와 파전을 사 온다. 코스트코 가전제품 코너에 가면 즐비한 삼성과 엘지 제품들은 괜히 더 그 근처를 어슬렁거리게 만든다. 미국 내 한인마트로 유명한 H마트에는 가만 보면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아 보인다. 우리 동네 미국 로컬마트에는 소주 열풍이 불어 따로 소주코너가 생기기도 했다. 한 병에 6.99 불하던데 단가로 따지면 와인보다 비싸지만 자몽에 이슬 이런 류를 칵테일 같아 좋아들 한다고 한다.
이곳에 와서 미국 중심의 세계지도를 보고 있노라면 대한민국은 정말 어디쯤에나 있는지 처음에는 찾기조차 어려웠다. 그마저도 반으로 잘려있는 그 작은 나라에서 뿜어져 나오는 저력을 매일 이곳 미국에서 느끼자니 감격이 몰려온다.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 그리고 먼저 이민 온 분들의 땀과 노력의 결실일까 싶어 이런 좋은 시대에 와서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오늘도 나는 이곳 사람들의 마음속에 기억될 한국을 생각하며 이웃들에게 환한 웃음을 먼저 건넨다. 그리고 앞으로 이곳에서 살아갈 한국인들을 위해 미약하지만 한 줌 빛을 더하기 위해 성실히 내 자리를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