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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애틀 미나리 Oct 07. 2023

어서 와, 미국 중학교는 처음이지?

모든 게 새로운 미국 중학교 이야기

 한국에서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첫째 딸은 이곳으로 오면서 중학생이 되었다. 워싱턴주는 1~5학년이 초등학교, 6~8학년이 중학교, 고등학교가 9~12학년 즉 4년이다. 9월 초부터 지난 한 달간 느낀 미국 중학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미국은 주정부마다 교육 시스템이 많이 다를 수 있어 내가 살고 있는 워싱턴주에 한해 적용되는 이야기일 수 있다.  


    학생은 학교에서 너무 바쁘다.

  

 워낙 이민자가 많은 곳이라 영어가 부족한 아이들은 따로 정규시간 동안 영어보충과목을 듣는다. 그러므로 학생마다 시간표와 수업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곳은 과목 담당 선생님의 교실이 각자 있고 아이들이 교실을 찾아다니는 방식이다. 그래서 입학 전 아이와 함께 학교 방문은 필수이다. 우리도 학교에서 오픈하우스를 하는 동안 아이와 함께 건물 시설과 교실 등을 함께 다니며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쉬는 시간은 단 5분이 허락되기 때문에 복도는 매우 정신이 없고 많은 인파 속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교실을 찾아다닌다고 한다. 점심시간도 각자 다르다. 공짜점심은 없다. 30분 동안 식당에 가서 가져온 도시락 또는 매점 스낵 등을 사서 점심으로 먹는다. 이동시간 포함이기 때문에 실제 식사 시간은 20분 내외, 서로 대화할 시간도 없이 각자 앉아서 식사를 한다고 한다. 한 마디로 학교에 가면 굉장히 바쁜 시스템이다. 스스로 알아서 다 해야 한다. 큰 아이는 7시 20분에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는데 그때부터 하교하는 오후 4시까지 이런 스케줄이라서 집에 오면 녹초가 되기 일쑤이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5학년을 매우 즐겁고 여유롭게 다니던 큰 아이는 요즘 굉장히 피곤해 보인다. 그런데도 우리 큰 아이에게 물어보면 미국 학교가 더 재미있다고 한다. 큰아이는 워낙 자기 주도적인 성향이라 자기 효능감이 올라가는 것 같다. 가까이서 지켜보면 한국에서 대학생이 돼서 느끼는 기분을 여기는 중학교부터 살짝씩 맛보는 것 같다.    


    숙제가 많다.

  

 여기는 따로 학원이 없다. 물론 LA 쪽은 한국만큼 사교육의 시장이 크다고 하던데 아직 워싱턴주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워싱턴주는 특히 내가 살고 있는 시애틀 근교 레드몬드, 밸뷰, 커클랜드, 사마미쉬 등은 공교육 수준이 매우 높다. 최근 제2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시애틀 쪽에 아시안 IT 이민자 비율이 높다 보니 자연스럽게 학구열이 올라가고 성취도도 높다.  우리 큰 딸의 학교는 대부분 인도아이들인 것 같다. 가장 친한 친구도 인도친구. 대부분 여기 본사가 있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다니는 아빠엄마들이다.

 학교에서는 학생마다 개인 랩탑을 나눠주고 학교계정 이메일을 만들어준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항상 가지고 다녀야 한다. 지난번 교육청에 가보니 우리 동네의 많은 IT기업들이 (아마존, MS, 구글 등) 학교를 후원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교육용 소프트웨어, 앱 등이 풍부하게 깔려있는 개인 랩탑으로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숙제를 한다.


 하교 후 집에 와서 시스템에 접속하면 매일매일 해야 하는 숙제들이 올라와있다. 영어가 아직 어려운 우리 큰딸과 나는 매일매일 숙제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독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에세이 쓰는 훈련을 많이 시킨다. 수학 푸는 앱을 통해 매일매일 연산도 많이 시킨다. 선생님과 학부모는 학교 이메일로 소통을 하는데 학교 시작하고 첫 주에 이메일을 쓰는 방법, 에티켓을 자세히 다룬 수업도 있었다. 큰 딸 어깨너머로 나도 같이 배우는 중이다.


 우리나라도 학교에서 이메일을 적극 활용했으면 좋겠다. 한국에선 선생님과 소통하는 방법이 보통 학교 전화나 앱을 통한 톡이었다. 아무래도 톡이나 전화 등은 개인적인 감정이 담길 수밖에 없고 그 자체로 선생님들의 스트레스가 될 것이다. 전달할 내용을 글로 한번 정제해서 소통하는 이메일을 주축으로 교육 현장에서 사용했으면 한다. 서로 감정 싹 빼고 전달할 말만 깔끔하게 말이다. 학생과 학부모 대상으로 에티켓 교육도 빼먹지 말고 말이다.  


    교과서가 없다.
  

 처음엔 교과서를 안 가져오길래 우리 아이가 영어를 못해서 못 받아온 줄 알았다. 수업 시간에도 안 쓰냐고 물으니 안 쓴다고 한다. 그럼 뭘로 수업해? 하니 선생님이 나눠주시는 핸드아웃이나 선생님이 보여주시는 수업자료가 전부라고 한다. Social study, English Language Art, Math, Science, Geography를 배우는데, 이 중 한 과목만 수업시간 중에 교과서를 나눠줬다가 가져가고 나머지 과목은 교과서가 없다.

 교과서가 없는 이유를 내 나름대로 진지하게 고민해 봤다. 그런데 수업 내용과 숙제자료를 보니 조금은 유추가 가능해진다.


 큰 아이가 하루는 Science 숙제라며 유인물을 들고 왔는데 A4용지 반 페이지 정도 글이 있었다. 글의 내용은 어떤 아이가 숲 속에서 잠깐 잠이 들었고 깨어나보니 주변 상황이 달라져 있었고 주변의 여러 관찰요소들을 종합해 보고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이지 논리적인 추론을 하라는 숙제였다. 지시문의 글 속에서 증거를 찾고 그 증거를 정성적관찰, 정량적 관찰, 추론으로 구분하라는 숙제였는데 이틀을 낑낑대며 고민했다.

 우리 아이는 추론의 추 자도 모르는 5학년이란 말이에요. 처음엔 엄두도 나지 않던 숙제였는데 함께 구글링을 하면서 먼저 개념을 이해하고, 쉬운 사례를 들면서 하나씩 가르쳐주니 이해를 하는 것이었다. 개념을 알게 되더니 아이가 신이 나서 스스로 논리적인 이야기 흐름을 만들며 즐겁게 숙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숙제를 내 준 선생님께서는 유인물 디렉션에 이렇게 적어두었다. 숙제를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부모님과 함께 해도 되고 친구와 여럿이 그룹으로 해도 된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봐도 되고 구글링을 해도 된다. 정답이 꼭 있는 것이 아니다. 너의 사고의 과정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라. 학교에서는 발표를 하고 함께 토론할 것이다.   


 교과서를 나눠주면 사고의 영역이 교과서에만 갇히게 될까 봐 안주는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결론에 도달했다.  교과서만 달달달 외우면 고득점이 가능했던 식의 공부를 했던 나는 여태 교과서가 목숨줄인 마냥 교과서만 찾고 있었는데… 나 자신이 안타까워졌다.  

 그래, 살아보니 달달달 외워서 써먹는 지식보다는 내가 스스로 직접 찾아보고 논리적으로 생각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힘이 더 중요하더라!   



    운동에 진심이다.

  

 정규 수업과정이 끝나면 운동타임이다. 정규 수업에도 체육이 있고 애프터스쿨로 보통 학기당 2~3가지의 운동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운동을 신청하는 것 같다. 큰 딸의 이번 학기 운동은 크로스컨츄리이다. 말 그대로 학교 트랙과 뒤 숲길을 엄청 뛰고 걷는다고 한다. 1시간 동안의 운동 시간을 1분도 쉬지 않고 뛰고 걷고를 반복해야 한다고 한다. 중간에 스쾃, 런지, 플랭크 같은 근력운동도 한다.  학교로 아이를 데리러 가면 운동이 끝난 아이들이 모두 하나같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다. 어릴 때부터 운동으로 단련된 우리 큰 딸도 힘들다고 할 정도니 얼마나 강도가 높은지 알 것 같았다. 아주 아이들 힘을 쫙 빼주고 집에 보낸다. 사춘기 아이들의 신체활동은 신체적, 정신적으로도 중요하기에 난 이 점이 매우 맘에 든다. 한국 학교에서의 부족한 체육활동이 늘 아쉬웠었기에.


 스포츠팀에 참여하기 위해선 의사를 만나야 한다. 아이가 정말 운동을 하기에 적합한지, 건강상 위험요소는 없는지 등을 세세하게 파악한다. 학교에서 준 양식을 작성하여 의사 서명을 받아야 하고 운동을 하다가 발생할 수 있는 부상, 사망 등 어마무시한 상황에 대한 서약도 해야 한다.


 크로스컨츄리 수업이 2주 정도 지났을 때에는 근처 중학교와 학교 대항 시합을 했다. 운동만 하는 것은 재미가 없으니 시합을 통해 아이들의 에너지를 이끌어낸다. 각자의 학교를 응원하며 비를 맞으면서도 최선을 다해 뛰는 아이들 보니 기특해서 웃음이 났다. 그날 다행히 우리 딸의 학교가 이겼다. 준비한 세리머니도 하면서 승리를 맛보는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시합이 끝나면 각자 기록을 체크해서 알려준다. 150명 중에 51등을 한 우리 큰 딸은 그래도 반 이상에 들었다고 너무 좋아한다. 다음 시합 때는 30등 안에 들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아이들이 공부가 아닌 운동 속에서 순수한 비교와 경쟁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어느 곳이든 완벽한 교육환경은 없다. 한국은 한국 교육환경의 장단점이 있고 여기는 여기대로 장단점이 있다. 아이가 셋이다 보니 중학교, 초등학교, 유치원 다양한 미국의 교육시스템을 경험하게 된다. 아직 모든 걸 다 알지는 못하지만 여태까지의 느낌을 말하자면, 한국은 온실 속의 화초, 미국은 야생의 들꽃 느낌이다. 무엇이 더 아름답다는 없다. 그저 다를 뿐이다.  이곳에서는 자율과 책임이 중요하다. 남에게 의지할 곳이 없다. 모두 내 선택이고 내 책임이다. 내가 알아서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살아가야 함을 느낀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시스템이다. 학교 교육에서부터 그런 것들을 훈련시키는 것 같다.


 평생을 안락하고 안전한 한국의 교육환경 속에서 자라온 나라서 가끔씩 미국의 이런 시스템이 낯설기도 하지만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도 있다. 어차피 완전한 것은 없으니 좋은 면을 보면서 살아가야겠지. 학교에 다녀와서 재잘거리는 아이들이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보따리를 가져올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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