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라는 운동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대학교 때였다. 낭만적인 대학 생활에 한껏 부푼 마음으로 대학에 입학한 나는 서울의 한 종합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여러 단과대학이 있었고 학생들 수도 많아서 대학교 캠퍼스는 늘 활기가 넘쳤다. 하루는 수업 이동을 위해 캠퍼스를 오가던 내 눈에 들어오는 광경이 있었는데 학교 가운데에 있는 대운동장의 테니스 코트였다. 테니스 코트를 실제로 처음 본 나는 한참을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학교 내 테니스코트에는 테니스를 치는 남학생들이 있었고 그들이 멋져 보인다기보다는 테니스를 치는 그 모션이 너무나 멋져 보였다. 우아하면서도 절제된 임팩트 있는 스윙은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상대 선수에 대한 매너를 중요하게 여기며 자신과의 싸움,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 정신. 와 이렇게 멋진 운동이 있었다고? 나도 배워봐야겠다! 늘 도전정신이 차고 넘쳤던 나는 교양수업으로 테니스를 신청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부드럽고 절제된 스윙을 하는 내 모습 대신 공도 제대로 못 맞추는 우스꽝스러운 내 모습이 있었다. 생각보다 너무나 어려운 운동이었다. 한 학기 동안 라켓을 휘둘러보았지만 공 하나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였다. 실기로는 도저히 점수가 나오지 않을 것 같아 테니스 엘보에 대한 정성 담긴 대체 리포트로 내 교양수업은 막을 내렸다. 그렇게 내 인생에서 테니스는 사라져가는 듯했다.
그런데 테니스와 무슨 인연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3년을 연애하고 결혼한 남편은 테니스 광이다. 대학교 때 테니스동아리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도 웬만한 동호회에서는 우승을 차지할 정도의 실력을 갖춘 아마추어 중에서는 꽤 드문 에이스이다. 의도한 바는 없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테니스를 잘 치는 남자와 살게 되니 좋은 점이 많았다. 남편은 내 테니스 스승이다. 라켓을 잡는 것부터 시작해서 포핸드, 백핸드, 발리, 서브, 스텝, 게임하는 법 등 아주 많은 것들을 가르쳐 주었다. 그런 남자와 13년을 살았더니 이젠 나도 제법 테니스를 친다.
13년을 사는 동안 딸 셋이 태어났다. 우리는 그 아이들이 5살 정도가 되면 각자의 라켓을 하나씩 사주고 같이 테니스코트에서 놀았다. 레드볼부터 시작해서 오렌지볼, 그린볼 이렇게 단계별로 공 사이즈를 줄여나가며 아이들에게 테니스를 가르쳐 주었다. 아니 가르쳐 주었다기 보다 그냥 같이 공을 맞히고 놀았다. 엄마 아빠가 랠리 연습을 하면 굴러다니는 공을 주우러 다니는 게 놀이였고, 누가 더 많이 공을 떨어뜨리지 않고 튀어 오르게 하는지도 아이들에게는 재밌는 놀잇거리였다. 탁 트인 테니스코트는 아이들에게는 놀이터나 다름없었다.
테니스는 아이들에게 너무 좋은 운동이다.
첫 번째 이유, 성실함과 인내심을 배운다. 테니스는 매우 어려운 운동이다. 끈기와 인내심이 없이는 네트로 공을 넘기는 것, 상대방과 랠리(공을 주고받는 것)를 하는 것 모두 불가능하다. 직접 해보니 제대로 된 스윙 자세를 잡고 공을 맞추는 것이 3개월, 네트로 공을 컨트롤하며 넘기는 것은 6개월, 끊기지 않는 랠리는 최소 1년 이상이 걸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요령이 통하지 않는 스포츠이다. 제대로 된 스윙 자세 없이는 공은 넘어간다 해도 모두 아웃이 되는 지독하게 과학적인 운동이다. 다시 돌아가 기본, 초심을 배울 수 있는 운동이다. 아이들의 절제력과 인내심을 기르기에 이만한 운동이 없다. 무수한 연습과 실패 없이는 실력이 늘지 않는 운동이다. 패배감, 자괴감을 맛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딛고 일어나면 성장했음을 깨닫게 해준다. 반드시 성취감을 가져다준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인생을 살다 보면 끊임없는 실패감, 좌절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 감정에 사로잡혀 굴복하느냐 그 감정을 딛고 일어나 다시 시작할 것이냐는 너무도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아이들을 앞에 앉혀놓고 '포기하지 않는 인생을 살아라. 성실히 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이런 말들이 필요 없어진다. 그냥 아이들이 스스로 운동을 하며 깨닫는다.
두 번째 이유, 체력이 향상된다. 테니스 라켓을 잡아본 이는 모두 알 것이다. 보는 것은 쉬워 보이는데 너무 어렵다는 것을. 그 이유는 테니스는 상체와 하체가 모두 완벽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도 이것을 아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어떻게 생각하면 아주 단순하다. 상체는 기본적인 스윙 자세를 힘을 빼고 부드럽게 하면 된다. 그와 동시에 하체는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공을 재빠르게 쫓아가기만 하면 된다. 이게 말은 쉽지만 인간의 몸은 하나라서 이렇게 분리해서 운동하는 것이 매우 매우 어렵다. 여유로운 스윙을 생각하다가 발이 못 쫓아가고, 재빠른 발에 맞추면 스윙이 급해져서 타이밍이 맞지 않는다. 테니스를 잘 치려면 발이 빨라야 하고 이런 사람들은 발로 하는 운동은 아마도 다 잘할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라파엘 나달은 특히 발이 빨라서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인데 난 이 선수는 축구선수를 했어도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을 거라 확신한다. 스윙만 좋아서는 반쪽자리 테니스이고 발만 빨라서도 반쪽자리이다. 결국 상체의 유연함과 하체의 근력, 지구력 모든 조건이 필요한 운동이다. 우리 딸들은 테니스를 시작하면서 플랭크, 런지, 복근 운동 등이 생활화되어있다. 내 몸이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테니스를 치기 시작하니 체력이 좋아지고 학교에서 하는 축구나 줄넘기, 피구 등 다른 종류의 운동도 잘하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체력이 중요함을 알고 스스로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를 아는 것은 큰 축복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기 때문이다.
세 번째 이유, 집중력이 향상된다. 테니스를 잘 치려면 순간의 타이밍을 잘 잡아야 한다. 공이 튀어 오르다가 정점을 지나 살짝 내려와 멈추는 그 지점을 잡아야 한다. 그때야말로 굿샷이 나올 수 있는 타이밍이다. 타이밍만 잡아서는 안된다. 그 타이밍에 맞춰서 내 스윙도 맞아야 하고 공과의 거리도 맞아야 한다. 그 완벽한 지점을 찾는 연습, 그 지점에 내 스윙과 거리를 정확하게 맞추는 연습에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집중해서 테니스를 열심히 치다 보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그 순간의 타이밍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타이밍이 라켓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순간, 손에 울려펴지는 떨림을 느끼고 경쾌한 소리를 듣게 된다면 그때부터는 테니스에 빠지게 된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어떤 영역을 넘어서는 것을 초월성이라고 하는데, 그 어떤 잡념도 없이 공에 집중하여 라켓의 정확한 지점을 맞출 때에는 현실을 넘어서는 초월성을 느낀다. 스포츠가 인간에게 주는 순수한 선물이다. 이러한 집중력은 내재화되어 다른 일을 할 때에도 그 효과성을 발휘한다.
네 번째 이유, 독립심과 자율성을 기른다. 5살부터 라켓을 가지고 놀던 큰 딸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한국 초등테니스연맹 선수가 되었다. 한국에서 딸아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테니스부가 있는 학교여서 학교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으며 테니스를 배우고 훈련받을 수 있었다. 매일 하교 후 3시간씩 학교 테니스코트에서 코치님과 테니스부 선후배들과 함께 훈련을 했다. 아주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3시간을 꼭꼭 채워 훈련을 했다. 그리고 테니스 대회가 열리는 시즌이 되면 양구, 인제, 순창, 창원 등등 전국 각지의 테니스 대회에 출전했다. 전국의 초등학생 테니스 꿈나무들이 출전하는 대회인데 학교별로 출전해 단식, 복식 경기를 치른다. 보통 대회를 가면 3박, 4박씩 부모님과 떨어져 코치님과 학교 선후배와 합숙을 하며 대회 기간을 보낸다. 초등학교 2학년부터 합숙 생활을 시작했던 큰 딸은 처음 합숙을 갔던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엄마 아빠와 떨어져 처음 낯선 곳에서 밥을 먹고 운동을 하고 잠을 자는 일이 두려워서 잘 때는 눈물도 흘렸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경험들 덕분에 스스로 알아서 할 일을 하고 씩씩해질 수 있었다고 말한다. 미국 학교에 적응할 때에도 그때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중학생이 된 지금까지 난 큰 딸을 아침에 깨워본 적이 없으며 이부자리며 옷가지를 정리해 준 적도 없다. 음식도 가리지 않고 골고루 잘 먹는 습관, 주변 정리를 깔끔하게 하는 습관 등 모두 합숙생활에서 얻은 결과물이다.
딸이 출전하는 테니스 시합을 보는 것은 윔블던 결승전 저리가라할 정도로 긴장되고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초등학생 시합은 셀프콜을 원칙으로 한다. 따로 심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이 각자 점수를 세는 방식이다. 그러다 보니 선수는 더욱 집중해서 자신의 점수를 챙겨야 하고 각 포인트마다의 상황을 정확하게 기억해야 한다. 혹시 모를 언쟁이 생길 경우를 대비해서 말이다. 테니스는 인, 아웃에 대해서 선수 각각의 의견이 엇갈리는 일들이 종종 생기는데 이것을 해결하는 것도 아이의 몫이다. 즉 코트에 들어가서 게임을 치르고 상대 선수와 마지막 악수를 하는 그 순간까지 모두 아이가 스스로 해야 한다. 기권하지 않는 이상 모든 경기는 정해진 세트까지 치러내야 하며 위기가 올 때에도 중간중간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을 이끌어가는 것도 아이의 몫이다. 어릴 때 이런 경험을 하는 것은 그야말로 인생을 한 수 먼저 배우는 일이다. 살다 보면 힘들어도 내가 끝마쳐야 하는 일들이 있지 않은가.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말이다.
코트 밖의 부모와 가족들은 큰 소리로 응원하는 것도 금지된다. 테니스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운동이므로 응원마저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TV에서 생중계하는 국제 테니스 오픈 경기들만 봐도 그 분위기를 알 수 있다. 나는 딸의 테니스 시합을 다녀오면 자녀교육에 대한 초심을 되새기게 된다. 이 아이의 인생이 지금 이 코트라면 난 지금처럼 한발 물러나 있어야 한다. 그저 먼 발치에서 마음속으로 진심 어린 사랑과 응원을 보내주면 충분하다. 아이에게 너무 깊이 관여하고 간섭하지는 않았는가. 아이는 스스로 할 수 있다. 믿는다.
딸아이 셋을 모두 테니스를 가르치고 대회에 출전하는 우리 가족에게 많은 사람들이 물어본다. 테니스 선수를 시킬 거냐고. 난 아니라고 답한다. 물론 선수가 되고 싶다면 응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우리 가족에게 테니스는 그저 행복의 수단이다. 가족이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운동, 함께 땀 흘리고 성장해나가는 기쁨, 자매들끼리의 질투와 경쟁, 실패와 승리. 이 모든 감정을 누리게 해주는 테니스는 우리 가족에게행복이다.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 때가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다. 부모님, 친구, 학교 등을 통해 인격과 가치관이 대부분 형성된다. 그리고 그 시간이 아이의 인생에서 물리적으로 가장 여유로운 시간일 것이다. 초등 시절 6년 동안만이라도 스포츠 종목 한 가지를 정해서 꾸준히 한다면, 어른이 돼서 다시 시작해도 수준급 정도의 실력을 갖게 될 것이다. 테니스, 수영, 승마, 축구, 농구, 야구 그 무엇이라도 좋다. 아이가 좋아하는 운동을 한 가지 정해서 꾸준히 하는 것이 좋다. 초등 시절 수학 문제집 몇 권 더 푼다고 해서 인생을 배울 수는 없다. 그리고 이렇게 몸에 익힌 운동은 아이가 어른이 되어도 건강한 인생을 살게 해주는 에너지원이 된다. 인생이 안 풀린다고 우울하다고 집에만 처박혀 있을 것인가. 나가서 햇빛을 보며 운동을 하고 땀 흘릴 것인가. 어릴 때부터의 운동 습관은 평생 아이의 몸에 기억되어 아이의 인생을 바꾸게 된다.
우리는 한국에 살 때 신도시의 아파트를 분양받아 이사를 했었다. 신도시를 건설하다 보니 여러 주민체육시설도 건설하자는 주민 투표가 있었는데 테니스장이 생긴다는 소식에 우리는 한껏 들떠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테니스를 치는 소리가 소음공해라 하며 주민들이 반발했고 결국 무산되었다. 우리 큰 딸이 다녔던 초등학교의 테니스부 역시 위기에 처해있다고 들었다. 겨우 한 코트 있는 이 학교의 테니스코트는 교직원용 주차장 부족 문제로 없어질 위기라고 한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아이들이 테니스를 접하기를 바랐는데 현실은 점점 더 어려워져만 간다. 한국의 공공 테니스장은 예약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이며 사립 코트는 너무 비싸고 그마저도 지역 동호회들이 점령하고 있는 현실이다. 미국에 이민을 오고 나서 가장 좋은 점은 언제든지 우리 가족이 원할 때 테니스를 칠 수 있는 환경이다. 물론 미국의 테니스코트도 부족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곳의 공공 테니스장은 예약 시스템이 아니다. 비어 있으면 누구라도 가서 칠 수 있고 만약 코트가 다 차있으면 기다리면 된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면 코트는 최대 1시간만 사용을 할 수 있다. 비록 1시간이지만 모두가 함께 쓸 수 있는 것이다. 여기 아이들은 테니스의 자세를 몰라도 게임하는 룰을 몰라도 그냥 라켓 하나 들고 와서 친구들과 논다. 테니스 코트 가까이에는 많은 주택들이 있는데 공치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민원을 하는 사람은 한 명도 보질 못했다.
한국의 아이들이 땀 흘리며 운동했으면 좋겠다. 스포츠를 통해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것은 분명 어른들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아이들이 뛰어놀 멍석을 깔아주는 역할은 우리 어른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