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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애틀 미나리 Apr 30. 2024

이민 10개월 차, 딸 셋 미국 공교육 적응기

(미국의 District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음)

 반짝이는 여름을 지나 단풍이 아름답게 거리를 물들이는 가을을 보내고 비가 매일 내리는 으슬으슬 추운 겨울을 지나니 지금 봄에 와있다. 벌써 시애틀에 정착한 지 10개월이 꽉 찼다. 그동안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이 쌓였는데 가장 큰 부분은 물론 아이들에 관한 것이다.


 10개월을 미국에서 지낸 우리 아이들의 모습은 어떨까? 작년 9월부터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으니 꼬박 7개월을 미국 학교에 적응해 온 아이들이다. 그동안의 이야기를 담아볼까 한다.


 유치원, 초등 4학년, 중학교 1학년(6학년).

 한국에서는 알파벳과 간단한 영어인사말 정도를 습득하고 온 토종 한국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의 현재 모습을 기록해 본다.


1. 유치원생 막내

 우리 막내는 알파벳도 모르고 한글도 모르고 0개 국어 상태로 미국 유치원에 입학했다. 여기서는 만 5세가 되면 유치원에 입학한다. 입학을 하자마자 반 배정이 되고 담임선생님과 면담시간이 있었다. 미국에서는 선생님과 부모님의 회의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보통 부모가 모두 참석하여 아이의 교육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나누게 된다. 미국에서는 처음인 학부모 상담 회의를 가는 길은 긴장이 되었다. 선생님과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어야 할 텐데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막내의 담임 선생님은 유치원 교육의 목표와 커리큘럼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고 궁금한 점을 물어보라고 하셨다. 아이가 영어를 몰라서 적응하는 것이 우려된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웃으시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도 알파벳이 모두 완성되지 않은 채 유치원에 입학하는 아이들이 많고 여러 문화적 배경을 가진 아이들이 다양하므로 괜찮을 거라고 안심시켜 주셨다. 선생님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서 믿음이 생겼다. 금발의 파란 눈의 예쁜 유치원 선생님을 우리 막내는 엘사를 닮았다며 좋아했다. 그렇게 막내는 10개월 간 알파벳 대문자, 소문자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영어를 배워왔다. 3개월마다 아이가 얼마나 성장하는지를 수치로 적어 집으로 보내주는데 알파벳과 간단한 단어들, 숫자를 배우고 있었다. 단어를 배울 때는 sound로 배우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예를 들어 STOP이라는 단어를 배울 때 스펠링 하나씩 발음소리를 내며 익히는 방법이다. "S-T-O-P (스트오프) STOP(스톱)" 이렇게 말이다.

유치원 알파벳 북
유치원 1년의 학습 목표와 달성 수준을 정기적으로 표로 보여준다

 우리 막내는 영어를 듣는 것이 힘에 부쳤는지 입학하고 일주일 동안은 아침마다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했다. 다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엄마랑 집에 있고 싶다고 했다. 이 작은 아이가 하루종일 얼마나 두렵고 답답할지 마음 한편이 시큰해졌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 아이가 스스로 넘어야 할 산이다. 같이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윤아, 우리 유치원 다녀오면 엄마랑 실컷 한국말하며 놀자. 언니들이랑 같이 게임도 하고. 엄마가 윤이 좋아하는 과자도 사놓을게. 엘사선생님께서 우리 윤이를 얼마나 기다리시는데~"

 막내는 내키지 않아 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 같았다. 여태 한 번도 결석하지 않은 우리 기특한 막내이다.  


2. 초등학교 4학년 둘째

 알파벳과 간단한 인사말 정도를 알고 온 초등학교 4학년 우리 둘째는 들어가자마자 영어가 부족한 아이들을 모아서 영어를 배우는 반에 들어갔다. ENGLISH 수업은 같은 반에 영어를 잘 못하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친구들과 함께 따로 배정된 반으로 가서 수업을 듣는다. 나머지 체육이나 수학 등의 수업은 원래 반 친구들과 함께 한다. 들었던 대로 역시 미국의 수학 진도는 한국보다 느리다. 진도가 1년 정도 늦은 수학을 풀다 보니 둘째는 본인이 수학천재라도 된냥 매일 백점을 맞았다고 좋아한다. 미국이 원래 쉬운 거라고 말을 해주면서도 수학에서라도 자신감을 느끼는 둘재 모습을 보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수학에 대한 자신감을 유지하기 위해서 한국에서 가져온 수학문제집을 풀고 있다.

초등 4학년 수학 학습지. 선생님께서 번역된 것을 따로 챙겨주셔서 감사한 마음
매주 금요일 발행되는 리포트. 한 주의 활동에 대해 본인 스스로 평가를 해보고 선생님께서도 평가해주신다.

 우리가 사는 지역은 전쟁 난민 가족들이 많이 이주하는 곳이다. 미국 내에서도 워싱턴주는 난민과 이민자에 관대한 주이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는 다양한 나라에서 온 아이들이 많고 전학생도 자주 온다. 우리 둘째는 유일하게 혼자 한국인인데 선생님께서 많이 배려해 주신다. 처음 몇 달은 한국어로 번역이 된 수학 학습지와 수업자료를 따로 챙겨주셨다. 그리고 수업을 하다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반 친구들이 서로 나서서 도와주고 알려준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매일 20분씩 놀이터에서 노는 시간이 있는데 사교성 좋은 둘째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영어가 제법 늘고 있다. 손짓발짓으로 소통하며 놀이터에서 함께 뛰어노는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다. 영어는 역시 놀면서 느는 게 가장 효과적인 것 같다. 아직 스피킹은 잘 안되지만 선생님과 친구들이 하는 대부분의 말을 알아듣게 되었다.

초등4학년 리코더 합주

 미국 초등학교는 아이들이 지겨울 때쯤 재미있는 이벤트를 만드는 것 같다. 특히 가을 시즌에는 핼러윈데이, 땡스기빙데이를 기념하는 행사도 하고 정기적으로는 파자마파티(잠옷 입고 등교하는 날), 팝콘데이, 무비데이 등등 쉴 새 없이 즐거운 행사가 가득했다. 한국과는 다른 학교 행사들에 즐거워하는 모습이다.

1학기 끝나고 발행된 평가표. 학습 뿐 아니라 태도에 대한 평가항목도 많고 선생님의 코멘트도 볼 수 있다.

3. 중학교1학년 첫째

 이민을 올 때 가장 걱정이 되었던 첫째. 한국의 초등학교 5학년을 1학기도 채 마치지 못하고 와서 바로 중학생이 되는 경우여서이다. 한국에서 1년 반 정도 필리핀 선생님과 화상영어를 꾸준히 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다. 영어에 자신감이 부족한 상태로 중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첫째 역시 English 시간이 되면 영어가 부족한 아이들의 그룹에 들어가서 영어공부를 했다. 그 외 다른 과목인 Social study, Science, Math, Physical exercise는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수업을 받았다. 그런데 학교가 시작하고 1달 정도 지났을까 English 반의 수준이 생각보다 너무 쉬워서 선생님께서 아이에게 보통반으로 가는 게 어떻겠냐고 물으셨다. 첫째는 선생님 의견에 동의했고 6학년 영어를 시작했다. 생각보다 영어의 수준도 높고 소셜스터디나 과학도 어려운 내용들이 많아 보였다. 1년 동안은 시험이나 성적에 신경 쓰지 말고 편안하고 즐겁게 적응해 보자라고 아이를 끊임없이 안심시켜 주었다.


혼자 스스로 완성한 과학 시간 프로젝트, 선생님께 많은 칭찬을 받았다고 뿌듯해했다


 중학교는 거의 매주 퀴즈를 보거나 숙제를 제출하고 팀원들과 프로젝트를 한다. 이 모든 활동들이 각각 A, B, C, D로 Grade가 매겨진다. 1년은 2개의 Semester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는 1개의 Semester가 끝나고 두 번째 학기를 보내고 있다. 6학년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매일매일 많은 숙제와 퀴즈가 쉴 새 없이 쏟아져서 아이도 나도 어려움이 많았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퀴즈를 보는 줄 모르고 준비를 못했다가 시험을 망쳐서 가장 낮은 그레이드인 D를 받아왔다. 상심해 있는 딸에게 달리 해줄 말이 없었다. 시험 성적이 안 좋다고 쪼르르 엄마가 선생님에게 대화를 요청하는 것도 너무 말이 안 되어 보였다. 이건 너의 부주의고 공부를 안 한 것도 너의 잘못이므로 스스로 해결하라고 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아이가 그날 저녁에 나에게 와서 이야기를 했다. 아직 영어 듣기가 잘 안 되어서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시험을 본다고 하신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신다면 열심히 준비해서 시험을 보고 싶다고 선생님에게 편지를 썼다고 한다. 다음날 아이는 그 쪽지를 선생님께 드렸고 선생님께서는 아이의 상황을 이해해 주시고 방과 후 혼자 남아 리테이크를 보게 해 주셨다. 아이는 열심히 준비하였고 A를 받았다.

6학년 성적앱. 매주 시험, 과제 등을 통해 성적이 업데이트된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미국의 교육은 완전히 자발적인 시스템이다. 본인의 의지가 있어야 발전 가능한 시스템이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것. 그래도 파는 만큼 물을 얻을 수 있다. 지식적인 성장보다는 학습에 임하는 성실한 자세, 시간을 관리하는 법을 배우는 것 같다. 내가 학창시절 했던 것처럼 시험기간에만 벼락치기한다고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 꾸준히 성실하게 공부하고 능동적으로 관리를 해온 학생들이 좋은 점수를 받게 된다.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지금까지 잘 적응해 주고 여태 모든 과목에서 올 A를 받은 첫째가 참 기특하다.

같은 District 여러 중학교 오케스트라들이 모여 연주회를 열었다.

 첫째는 한국에서 꾸준히 해온 테니스와 바이올린이 학교 적응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아무래도 언어가 소통이 어려우니 친구들과 친해질 기회가 적은데 오케스트라와 방과후 테니스 클래스에서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고 말이다. 아이가 익숙한 운동과 악기를 통해 자신감을 갖고 학교생활을 하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 아이의 미국학교 적응기 총평


 언어의 적응면에서만 본다면 세 아이 모두 아직까지는 영어 말하기가 안 된다는 것이 팩트이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스피킹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도 많은 발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대부분의 듣기는 가능해졌다는 것?

 신생아도 듣기부터 하고 옹알이를 하다가 갑자기 봇물 터지듯 말하기 시작하는 걸 보면 외국어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서두르지 말아라. 오히려 한국어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많은 선배 이민자분들이 그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 말에 많은 공감을 하지만 생각보다 영어 말하기가 되지 않아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마주하다 보면 집에 있는 한국책을 다 숨기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두르지 않으려 한다. 아이들이 영어와 함께 걸어갈 길은 아주 멀고 기니까 말이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세 가지를 경험해 보니 공통점은 "부모가 학교에 갈 일이 아주 많다."이다. 한국에서는 아이의 상담이 있는 날에만 학교에 방문해도 충분했었다. 오히려 학교에 너무 자주 갈 일이 생기는 것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시그널이었다. 그런데 미국은 그렇지 않다. 매일 점심시간이나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지켜봐 주는 역할도 엄마들의 Volunteer이고, 행사가 있을 때마다 부모들이 많은 역할을 하고 참여를 한다. 오케스트라 공연이나 리코더합주 그 외 학교대항 체육시합도 자주 열리고 아침시간에는 교장선생님과의 커피타임, 북클럽 등등 부모참여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회사 근무 중에도 잠깐 아이들 픽드랍을 하거나 자원봉사를 하고 가는 부모들이 많고 회사에서도 흔쾌히 excuse해주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 학교와 부모가 협력하고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에 대한 부모의 책임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아이의 잘못된 행동이 있을 때는 바로 부모를 불러 행동을 교정해야 한다고 피드백한다.


 또 한가지 이색적인 것은 인성교육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Kind, Respect를 수도 없이 강조하고 의미를 깨닫게 한다. 표현과 행동도 상세히 교육시킨다. 언뜻보면 미국이 자유로워 보이지만 실상은 미국 선생님들은 더 엄격하시고 자율과 책임의식,  존중과 배려의 행동을 늘 강조하신다.


 아이들에게 가끔 물어본다. 한국 학교가 좋아, 미국 학교가 좋아?

 물론 한국 아이들끼리의 정서적 유대감, 소통 측면에서는 한국이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수업 방식이나 분위기, 학교 이벤트 등은 미국 학교가 더 재미있다고 말한다.


딸들아, 이 세상 모든 것은 모두 장단점이 있어. 그러니 좋은 면을 보고 감사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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