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부터 조회 시간에 책을 읽겠다 - 4
책을 고르는 것부터 독서 교육이 시작된다
"오늘은 자기가 읽는 책들 표지 한 번 보여줘 봐. 선생님이 돌아다니면서 한 번 볼게."
몇몇 아이들이 분주해진다.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학급문고로 가서 책을 꺼내온다. 한 발 늦은 아이는 남은 책들에 영 손이 가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집히는 책을 하나 들고 왔다.
앞자리부터 천천히 이동하며 아이들이 무슨 책을 읽고 있나 살폈다. 대부분 자기가 재미있어할 만한 책들을 들고 있었다.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는 호날두의 책을, 클라이밍이 취미인 아이는 클라이밍 책을, 요리사가 꿈인 아이는 요리 관련 책을 읽고 있었다.
"좋아, 좋아. 훌륭해."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려주었다.
몇몇 아이들의 책은 표지만 보고도 알 수 있다. '이 시간에 그냥 멍 때리고 있었겠구나.' 장래희망이 교사가 아닌데 교사의 글쓰기 수업 관련 책을 들고 있다. 내 교무실 캐비닛에 있던 책들 중 하나다. 학급문고를 만들 때 혹시 관심 가질 아이가 있을까 봐 가져다 놓은 책이다. 하지만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이 아이가 읽을 책은 아니다.
"이거 아니야. 딴 걸로 바꿔 와."
아이는 아무 말 없이 학급문고로 가서 책을 바꿔온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들고 왔다. '차라리 그게 낫지.' 생각하며 교탁으로 돌아온다. 만약 아이가 한 마디라도 항변을 했다면, 자기가 왜 이 책을 골랐는지를 이야기했다면 아마도 내가 사과했을 것이다. 일부러 고른 건지 몰랐다고, 미안하다고. 하지만 정말 읽을 생각 없이 가져온 책이었으니, 담임이 그걸 알아봤으니 바로 바꿔 온 것이다. 종종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학교 예산이 넉넉하다면 나는 매년 전교생에게 책 한 권씩을 사 주고 싶다. 자기가 읽고 싶은 책, 사고 싶은 책을 찾을 때부터 국어 시간은 생기가 넘친다. 책을 많이 읽은 아이들은 여기저기 책 추천해 주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지만, 신이 나 있다. 무슨 책을 고를지 모르는 아이들은 이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관심사가 비슷한 아이들끼리 모여서 온라인 서점에서 키워드 검색을 한다. 그리고 서로 다른 책을 골라 바꿔 읽기로 한다.
올해 1학년은 독서 예산이 모든 학생에게 책을 사 줄 수 있을 만큼 넉넉하지 않았다. 그래서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나고 방학 전까지 남는 국어 시간에 구글 시트 주소를 공유했다. 그리고 원하는 책이 있는 사람은 사 줄 테니 입력하라고 했다. 어차피 가만히 놔두면 무의미하게 흘러갈 시간에 아이들은 책을 찾느라 분주하게 보냈다. 그래도 남학교답게(?) 아무 책도 입력하지 않은 아이들이 3분의 1이었다. 나머지 3분의 2에 해당하는 아이들 중에 추첨을 통해 당첨된 아이들에게 책을 사 주었다. 2학기 아침 독서가 시작되자 새 책을 받은 아이들은 바로 그 책부터 읽기 시작했다.
심심하고 할 일이 없어서 집에 있는 책들을 꺼내 읽던 시대가 아니다. 눈앞에 책을 갖다 놔주고 멱살 잡고 읽자 읽자 해도 겨우 읽을까 말까 하는 시대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읽게끔 만들어주면 의외로 잘 읽는다. 책을 좋아하는 게 느껴진다. 어릴 때 읽었던 그림책이랑 잠시 멀어져 있던 것뿐이다. 학원 다니느라 바빠서 그런 것뿐이다. 다시 책을 골라보게 만들어주면 다시 어릴 때 그림책 골라 읽던 그 감각을 어떻게든 살려낼 수 있다. 독서교육은 책을 고르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혹시 잘못 고르면 어쩌나 고민할 필요도 없다. 다시 고르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