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부터 조회 시간에 책을 읽겠다
한 학기 만에 좌절해 버린 아이들을 위해 꺼낸 카드
"내일부터 조회 시간에 책 읽을 거야. 한 권씩 꼭 가지고 와."
나의 말에 우리 반 아이들은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반응이었다. 아무도 반발하거나 인상을 찌푸리지는 않았다.
우리 학교는 서울에 위치한 남자고등학교이고 일반고이다. 학생들 대부분이 졸업 후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한다. 대학 중에서도 인서울로 대표되는 명문대 진학을 꿈꾸는 학생들이 많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명문대에 가고 싶은 학생은 많다. 하지만 갈 수 있는 학생은 많지 않다. 범람하는 정보의 영향으로 아이들도 알고 있다. 1학년 때 석차 등급이 나오면 졸업할 때까지 그 등급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학기 초반에는 아이들 모두 열정이 넘쳤다. 새롭게 고등학교에 입학했으니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마음가짐들이었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애도 문제를 풀고 영어 단어를 외웠다. 그러나 중간고사가 끝나고 나니 좌절하는 아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수행평가와 기말고사까지 모두 끝나면 한 학기의 석차 등급이 나온다. 모든 아이들이 과목별로 1부터 9 중 하나의 숫자를 받아 든다. 우리 학교는 여름방학 때 성적표가 공개되었다.
2학기가 되었다. 한 학기 만에 분위기가 싹 바뀌었다. 쉬는 시간까지 경쟁적으로 공부하던 열정은 미지근하게 식어갔다. 다른 학교로 전출 가거나 자퇴하는 학생들도 생겨났다. 단 한 학기 만의 일이다.
교사도 사람이다. 사람은 주변 사람의 영향을 받는다. 1학년 담임을 하게 되면 신입생의 싱싱한 에너지와 함께 하기 때문에 아이들로부터 좋은 기운을 받는다. 그걸 바탕으로 더 열심히 가르치고 더 열심히 일한다. 그러나 단 한 학기만에 이렇게까지 생기가 떨어지는 일은 흔치 않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좋은 기운을 받는 상황이 아니다. 쓰러지고 무너지려는 아이들이 생기면 하나하나 잡아 일으켜 세워주어야 한다. 자퇴하고 싶다고 동료교사를 찾아왔던 옆 반 아이의 표정을 보고 나는 크게 놀랐다. 열일곱 살 아이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저렇게까지 힘들어할까.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무얼 할 수 있을 것인가. 공교육에 종사하는 교사는 정해진 교육과정을 따라간다. 그렇기에 새롭게 꺼낼 만한 카드는 극히 제한적이다. 나는 한 학기 내내 만지작거리기만 했던 '책 읽기' 카드를 꺼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