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天子)’를 모르는 아이들
수년 전 1학년을 맡았을 때의 일이다. 방과후학교 수업에서 고전소설을 가르치던 중이었다. 한 아이가 질문했다.
“선생님, ‘천자’가 뭐예요?”
천자? 천자를 모른다고? 앞뒤 문장을 읽어보고 맥락 속에서 파악해 보라고 힌트를 주었다. 하지만 질문한 아이를 포함해서 다른 아이들 역시 맥락만으로는 단어의 뜻을 유추해 내지 못했다. 결국 한자의 뜻이 하늘 천, 아들 자이니 하늘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중국이 배경이었으니 중국에서 하늘의 아들로 불릴 만한 사람은 가장 높은 사람, 즉 황제를 말하는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제야 아이들은 이해하는 눈치였다.
이 일은 나에게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이 세대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디지털 기기에 대한 이해도는 매우 높지만 텍스트에 대한 이해도는 많이 낮은 세대. 결국 문해력 혹은 독해력을 키우는 것이 아이들에게 필수적이라고 판단했다.
당장 그 방과후학교 수업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삼국지》를 찾아서 읽으라고 했다. 이문열의 《삼국지》는 아버지 세대에서 10권을 다 가지고 있는 분들도 많으니 일단 구하기가 쉽다. 유비, 관우, 장비 등 익숙한 인물들이 등장하니 낯익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우리 같은 남학교 학생들이 환영할 만한 영웅과 전쟁 이야기가 아닌가.
물론 그 수업에서 《삼국지》를 열심히 읽은 아이들이 드라마틱한 문해력 향상을 이루어낸 것은 아니었다. 그 후에 아예 《삼국지》를 주제로 방과후학교 수업을 열어보기도 하였으나 아이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였다. 단순히 아이들에게 ‘찾아서 읽어라!’라고 주문하고 지켜보기만 할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당장 중간 기말고사와 수행평가가 중요한 고등학생들에게는 문제풀이가 더 급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영어 단어를 모르고 영어 독해를 할 수 없는 것처럼 단어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지문 이해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런 상태로 문제를 풀어봤자 답을 맞힐 확률은 당연히 낮아질 수밖에 없다.
결국 이 남자아이들은 뭐라도 시켜야 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 꾸준히 지속되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내가 나서서 책을 읽게 시키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그런 계기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어떤 방법이 좋을까?
1교시 수업이 없는 날, 2층에 있는 학교 도서관에 내려간 적이 있었다. 옆 건물에 있는 중학교에서 방송으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아침 독서를 알리는 노랫소리였다.
“모두 읽어요. 날마다 읽어요. 좋아하는 책을 읽어요. 그냥 읽기만 해요.”
이거다. 여러 아이디어가 샘솟듯 떠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