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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자반 Jul 11. 2024

그랬다면 어땠을까

수학) 수학과 대학원 일기

어찌 저찌 3학기가 끝났다. 

마지막까지 불안불안했던 성적을 부여잡고 펀딩을 지켜냈다.

학기가 끝나자마자 학회를 세 군데 돌았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겠는 곳에 앉아서 교수님 눈치를 봤다. 

나는 직업 적성 검사를 하면 목수와 등대지기밖에 없는 과묵한 사람인데 미친놈처럼 속으로 울먹이며 사람들에게 치댔다. 

그 사람들에게 나는 하등 쓸모없는 인간이기 때문에 무례한 말을 들어도 참아야 했다. 

서양인 특유의 과한 리액션을 취하며 나는 알지도 못하는 것들을 포장해 몰라도 아는 척, 으스대야만 했다. 

그렇다고 한국인하고 있는 것이 좋았나, 그것도 아니다. 

교수님은 나에게 한 달 전에 보여드렸던 페이퍼가 실망이라고 8월까지 제대로 해서 내지 못하면 박사과정은 하지 못할 것이라 말씀하셨다.  

회사 생활에서 배운 것은 이럴 때 머리를 박고 싹싹 빌면서 죄송하다고 하는 것이다. 

내 페이퍼가 어느 점이 좋은지, 이런 면에서 재평가가 필요한지에 대한 설명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사람들은 그것을 변명으로 받아들인다. 

어느 점에서 그렇게 느꼈는지 조심스레 여쭤보고 실망드려 죄송하다고 빈 다음에 다시 기회 주셔서 감사하다고, 해당 부분 보완해서 다시는 실망드리지 않겠다고 했는데 속이 먹먹했다. 


내가 대학원에 온 이유는 수학이 좋아서도 있지만 사람들 사이에 있지 않고 혼자 일하고 싶었던 점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이곳에 있으니 짙은 회의가 든다. 

차라리 회사에 있을 때가 나았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에 있던 대학원에 있던 여전히 나는 즐겁지 않고, 사람들은 나를 괴롭게 한다. 


가끔 나는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의 사람들은 내가 구성원인 것이 불만인 것 같다. 

그래서 나보고 자꾸 나가라고 하는 것 같다. 

사람들하고 어울리지도 못하고 실적도 좋지 않으니 말이다. 


회사에 있으면서 무언가를 해 냈을 때, 인정받았을 때 기뻤다. 

왜인지, 이곳에 와서는 그런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칭찬에 박한 건지, 아니면 내가 기대치를 도달하지 못했던 건지.

계속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렸던 인형마냥 우두커니 있을 뿐이다. 


가끔 내 인생이 어디부터 잘못되었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과거의 이 순간 이 선택이 아닌 다른 선택을 했으면 어땠을까. 

종이 한 장 차이로 인생이 갈렸다. 

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남들이 정해준 길이 아닌 항상 내가 원하는 길을 갔다.

어느 시점까지는 그것이 내 아이덴티티고 프라이드였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게 잘못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들이 시키는 대로 살걸. 

정해진 운명 따위 뜯어고치지 않고 순응할걸. 

중학교 때 수학 학원에서 얘 못 가르치겠다, 나가라 할 때 수학 공부 같은 거 하지 않겠다 다짐할걸. 

자연과 우주에 대해 무한한 환상을 품지 말걸. 

고등학교 때 내가 받았던 성적에 만족할걸. 

수학 선생님이 나는 끈기가 없어서 수학을 못할 거라고 했을 때 그렇구나, 하고 수긍할걸. 

그렇게 많은 책을 읽지 말걸. 

좁은 2층 침대에서 가까운 천장을 보며 미래를 그린 것이. 

대학교 때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지 말걸. 

수학과를 복수 전공하지 말걸. 

그때 그 회사에 계속 있을 걸.

역시 그렇게 많은 책을 읽지 말걸. 

글을 쓰지 말걸. 

역시 손바닥만 한 방에서 몸을 뉘이며 미래를 그린 것이.

세상을 그렇게 빨리 깨닫지 말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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