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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Feb 22. 2024

벼랑 끝에서 찾은 삶의 의미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씨네아카이브 35.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

내가 꾸준히 영화를 볼 수 있는 원동력은 다양한 이야기를 보고 듣는 즐거움에서 온다. 영화를 보다 보면 실화에 기반한 작품도 자주 접하는데 35번째 씨네아카이브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 2편을 골라봤다.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믿기 힘들 만큼 극적인 개인의 삶을 그리거나, 사회 부조리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을 조명하며 세상에 목소리를 내거나. 일부러 만들어내기도 어려울 것 같은 드라마틱한 삶을 보고 있으면 무탈한 매일에 감사하게 되고, 인생의 굴곡에 좌절하지 않고 맞서는 이들의 용기와 의지에 감탄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종류의 인간 군상이 존재하고 그들의 사연과 이야기도 그만큼 다양하구나’를 느끼게 된달까. 소개할 2편의 영화는 희대의 사기꾼에서 FBI 보안 컨설턴트가 된 프랭크 애버그네일 주니어의 이야기를 다룬 <캐치 미 이프 유 캔>과 삶의 벼랑 끝에 내몰린 한 남자가 자신의 인생과 더불어 타인의 삶까지 구원하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이다.


'씨네아카이브 35.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 전문 읽기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Dallas Buyers Club)>, 장 마크 발레


(출처: 영화 스틸컷)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1992년 HIV로 사망한 론 우드루프의 실화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30일 시한부를 선고받은 한 남자가 세상에 맞서 7년을 더 살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에이즈 환자들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앞장섰던 기적 같은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영화는 개봉과 동시에 평단과 관객들의 호평을 이끌어내며 유수의 영화제에서 좋은 성과를 거뒀는데 주인공을 연기한 매튜 매커너히를 비롯해 자레드 레토와 제니퍼 가너 등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매튜 매커너히의 경우 무려 20kg의 체중을 감량하며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놀라움을 안겼고 자레드 레토 역시 53kg까지 몸무게를 줄이며 깡마른 트랜스젠더 ‘레이언’으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두 사람의 열연과 앙상블은 제86회 아카데미를 비롯해 골든 글로브 및 각종 비평가협회의 남우주조연상을 동시에 휩쓸었는데 아카데미의 경우 한 작품에서 남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을 모두 수상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고.


에이즈를 확진받은 론 우드루프는 당시 병원에서 처방하는 AZT라는 약물이 거의 효과가 없고 부작용도 많다는 것을 발견하고 대체 약물을 구하기 위해 멕시코부터 일본, 중국, 중동까지 여러 국경을 넘나들며 대체 약물을 구해 복합 약물 요법을 통한 자가 치료를 시작했는데 이후 자신이 구해 온 약물을 판매하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설립하여 수백만 명의 에이즈 환자들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영화의 각본을 맡은 크레이즈 보텐은 ‘복합 약물 요법’을 통해 수백만 명의 환자들을 도운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에 대한 인터뷰를 시작으로 추가적인 조사를 통해 20여 년에 걸쳐 각본을 완성했다. 각본에 긴 시간이 들어간 것과 달리 촬영은 단 25일 만에 끝냈는데 짧은 촬영 기간과는 별개로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작품의 사실성을 높이고 1980년대 시대 배경을 완벽하게 재현하기 위해 촬영 방식부터 의상, 로케이션, 음악까지 많은 부분을 세심하게 공들였다.


(출처: 영화 스틸컷)


방탕한 생활을 하며 로데오를 즐기는 전기 기술자 ‘론 오드루프’는 어느 날 의사로부터 HIV 감염을 진단받는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30일.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던 론은 치료제로 복용한 약물이 거의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자국에서는 금지된 약물을 다른 나라에서 밀수해 복합 약물 치료를 통한 자가 치료를 시작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알게 된 에이즈 감염자 ‘레이언’과 함께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만들어 자신과 같은 병을 앓는 환자들에게 밀수한 약물을 판매하기 시작하는데...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배경인 1980년대는 영화배우 록 허드슨의 죽음과 더불어 에이즈에 대한 인식과 동성애에 대한 혐오가 확산되던 시기다. 막대한 치료비용이 드는 데다 돈이 있어도 약을 구하기 어려워 당시 HIV 감염은 사망 선고나 다름없었는데 감염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제약회사의 임상실험대상에 선정되어 약물의 효능에 기대는 것이 전부였다. 별다른 치료법도 없이 ‘동성애자들이나 걸리는 저주받은 병’이라는 편견 속에서 수많은 환자들이 죽을 날만을 기다려야 했다. 주인공 론 우드루프는 방탕한 생활을 하긴 했지만 이성애자였던 자신의 에이즈 감염을 부정한다.


론은 동성애자를 인간 이하의 존재로 취급하며 혐오감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인물이다. “호모포비아 카우보이가 에이즈에 감염된다는 모순적인 상황은 론이라는 인격에 실존적 깊이(영화평론 발췌)”를 만들어 냈는데 생에 대한 강한 의지는 그가 도서관에서 에이즈에 대해 공부하고, 치료가 될 수 있는 약을 찾고, 밀수해 온 약을 HIV 양성 환자들에게 판매하도록 만든다. 결과적으로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이 수백만의 에이즈 감염자를 구했지만 그 시작은 어디까지나 론 본인이 살고자 시작한 삶의 수단이었다. 그리고 본인이 살고자 시작한 일이 조금씩 다른 사람들을 구하는 방향으로 바뀌면서 론의 근성은 고가의 에이즈 치료법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을 끌어내기도 한다. 


마리’s CLIP

“얼마 남지도 않은 삶을 붙잡고 있지만, 뭔가 의미를 두고 싶어요."


동성애자를 벌레보다 못한 존재로 여겨왔던 론에게 찾아온 HIV 감염은 스스로를 벌레 취급받는 존재로 추락시켰고, 친구들에게 외면당하며 차별하던 사람에서 차별받는 사람이 되면서 그의 인간관계와 삶의 가치관까지 변화시킨다. 생존을 위해 밀수했고 돈을 벌기 위해 약을 팔았지만 결국에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손을 잡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과 부대끼며 조금씩 마음을 나누는 법도 터득한다. 그리고 자신이 살고자 시작한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이 비싼 치료제를 감당할 수 없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FDA라는 거대한 공권력에 맞서며 수백만의 에이즈 환자들이 살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준다. 방탕한 삶을 즐기며 사는 것이 전부였던 론에게 에이즈로 인해 차별받는 존재가 되고, 고통에 시달리는 것이 결코 나쁜 영향만 주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얼마 남지 않은 삶이지만 의미를 두고 싶다’는 그의 말은 육체적으로는 약해졌을지언정 정신적으로는 진정한 자유를 찾고 평온해졌다는 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소수자를 향한 차별의 시선을 거둬들임으로써 이전보다 나은 삶을 살게 된 것이기도 하니까.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영화 뉴스레터 ciné-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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