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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Jun 28. 2024

올리비에 아사야스 <여름의 조각들>

씨네아카이브 43. 여름날의 단상 Part.1

고백하자면 나는 여름을 가장 싫어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공기에 예민해 높은 기온과 습도에 장마까지 기승을 부리는 여름은 저절로 불쾌지수가 높아지는 듯한 기분이 들곤 했으니까.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이 아니지만, 오직 여름에만 느낄 수 있는 환경의 변화와 감성적인 분위기를 찾아서 즐길 수 있는 정도는 된 것 같다. 여름을 싫어하는 사람에서 즐기는 법을 찾을 줄 아는 사람이 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는 청명하게 반짝이는 여름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있다! 특히 여름날 특별했던 추억이나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다룬 영화들이 떠오르는데 소개할 2편의 영화는 아주 직관적인 방법으로 골라봤다. 제목만 봐도 여름날 추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구나 싶은 작품으로.


씨네아카이브 43. "여름날의 단상" (전문 읽기)


<여름의 조각들(L’heure d’Été)>, 올리비에 아사야스, 2008년 개봉


(출처: 영화 스틸컷)

<여름의 조각들>은 어머니가 남긴 유산을 지켜 추억을 간직하고 싶은 가족과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산을 처분하고 싶은 가족의 갈등을 과장 없이 담백하게 그린 작품으로 <이마 베프>, <사랑해, 파리>,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퍼스널 쇼퍼> 등으로 유명한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이 처음으로 가족을 소재로 연출한 영화다.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집과 고향은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하며 이 시대 가족의 모습을 정의 내리기보다 관객들이 영화를 통해 생각해 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영화에는 감독의 개인사가 반영되었는데 시나리오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상실로 인한 과장된 슬픔만 다루지 않고 가족과의 추억을 지키고 싶은 마음과 현실적인 문제가 적절히 균형을 이루며 비춰진다. 세 남매를 연기한 샤를 베를링, 줄리엣 비노쉬, 제레미 르니에르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가족의 모습을 담백하게 표현했는데 어머니의 죽음과 남겨진 유산을 두고 갈등을 빚는 남매의 모습이라 믿어지지 않을 만큼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출처: 영화 스틸컷)

집안 대대로 타고난 예술적 감각으로 평생 미술품과 고가구를 모아 온 어머니 엘렌. 그녀는 75번째 생일에 자신이 떠나면 짐이 될지 모를 물건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지만 자녀들은 귀담아듣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럽게 어머니의 사망소식을 듣게 된 세 남매는 뒤늦게 가슴 아파하며 그녀를 떠나보내지만 슬픔도 잠시, 세 남매는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정든 집과 어머니가 남긴 예술품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두고 미묘한 갈등에 부딪힌다.


영화는 파리의 도회적인 모습부터 파리 근교 시골마을의 고즈넉한 풍경과 고풍스러운 주택, 집안을 채운 예술품 등 서정적인 연출이 돋보인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마치 인상주의 풍경화를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할 만큼. 실제로 영화는 오르세 미술관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된 작품이기도 한데 주인공 남매가 갈등을 빚는 어머니의 유품이자 예술품은 오르세 미술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영화 속에서 다뤄질 수 있었다고. 미술관의 소장품으로 영화를 촬영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은데 오르세 미술관으로부터 제안을 받은 감독이 사실주의부터 인상주의, 후기 인상파와 아르누보 인상파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미술관의 그림, 조각, 가구 등 다양한 소장품을 소개하며 사물에 사연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


마리’s CLIP:
“내가 떠날 때 많은 것들도 함께 떠나게 될 거야. 기억도 비밀도. 이제는 누구도 재미있어하지 않는 이야기들까지. 그런데 찌꺼기가 남아. 물건들이 남지. 부담으로만 남지 않았으면 좋겠어." - 엘렌

엘렌은 세 남매가 떠난 후 오랜 시간 집을 돌봐 온 엘로이드에게 언젠가 자신이 떠난 후 남겨질 것들이 부담으로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고백한다. 엘렌의 고백에는 예술품을 미술관에 기증하길 바라는 마음과 자신이 떠난 후에도 예술품과 함께 살아 숨 쉬는 추억을 누군가는 지켜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모두 담겨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감독은 “예술이 실생활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경험에서, 자연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추상적인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그 예술이 박물관에 묻히면 어떤 본질적인 부분도 사라지게 된다”라고 밝히기도 했는데 영화는 코로의 풍경화를 집 복도에 걸어두고, 조셉 호프만의 수납장에는 장난감 비행기를 넣고, 드가의 조각상이 아이들 장난에 깨지기도 하고, 루이 마조렐의 책상에서 편지를 쓰는 엘렌의 삶을 통해 예술과 삶이 연결되어 있을 때, 예술품도 살아 숨 쉴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영화 뉴스레터 ciné-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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