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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Jul 05. 2024

우리의 동화 같은 일주일 <테스와 보낸 여름>

씨네아카이브 43. 여름날의 단상 Part. 2

고백하자면 나는 여름을 가장 싫어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공기에 예민해 높은 기온과 습도에, 장마까지 기승을 부리는 여름은 저절로 불쾌지수가 높아지는 듯한 기분이 들곤 했으니까.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이 아니지만, 여름에만 느낄 수 있는 환경의 변화와 감성적인 분위기를 찾아서 즐길 수 있는 정도는 된 것 같다. 여름을 싫어하는 사람에서 즐기는 법을 찾을 줄 아는 사람이 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는 청명하게 반짝이는 여름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있다! 특히 여름날 특별했던 추억이나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다룬 영화들이 떠오르는데 소개할 2편의 영화는 아주 직관적인 방법으로 골라봤다. 제목만 봐도 여름날 추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구나 싶은 작품으로.


씨네아카이브 43. "여름날의 단상" (전문 읽기)


<테스와 보낸 여름(My Extraordinary Summer with Tess)>, 스티븐 바우터루드, 2019년 개봉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테스와 보낸 여름>은 네덜란드의 동화작가 안나 왈츠의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휴양지에서 만난 소년 소녀의 성장을 밝고 따뜻하게 그린 작품이다. 안나 왈츠는 네덜란드의 아동문학가로 그녀의 작품은 섬세한 표현력과 통찰력, 유머를 겸비한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통해 가족 그리고 성장에 초점을 맞춰 인생에 대해 고민해보게 하는데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사랑받는 작가이기도 하다. 스티븐 바우터루드 감독은 아이들이 즐겨보는 TV드라마나 아이가 주인공인 단편 영화를 제작한 이력을 바탕으로 장편 데뷔를 준비하던 과정에서 원작 소설을 접하게 되었고 영화화를 결정했다.


영화는 정교하게 각색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여름의 청량한 분위기를 영상으로 구현해 내며 여름날 감성을 두 주인공의 감정과도 연결시켜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감독은 “어릴 때는 단순하게 보였던 일들이 나이를 먹을수록 본질보다 더 복잡해지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는 누구나 마주하게 되는 일이다”라고 밝히며 “삶이란 유한한 것이고, 때로는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시간과 관계 역시 영원할 수 없지만, 인간은 회복할 수 있는 존재이고 예기치 못한 고난을 통해 더 단단해질 수 있다”는 것을 영화 속 인물과 이야기를 통해 그리고 싶었다고.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엉뚱한 소년 샘은 가족과 함께 떠난 바닷가 휴양지에서도 죽음에 대해 고민한다. 지구에 남은 마지막 공룡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상상하고, 가족 중 막내인 본인이 언젠가 혼자 남겨질 때를 대비해 ‘외로움 적응 훈련’에 돌입하는데 샘의 계획은 섬에서 만난 소녀 테스로 인해 차질이 생긴다. 첫 만남에서 대뜸 함께 살사를 추자고 하는, 4차원 샘보다 더 고차원인 테스는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행동으로 샘을 놀라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샘은 테스의 숨겨진 비밀과 그녀의 계획을 알게 되고 그녀를 도와주기 위해 계획에 동참한다.


영화는 죽음이나 외로움과 같은 무거운 주제를 밝게 풀어낸다. 샘은 염세적이라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가족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소년이기에 언젠가 가족들이 떠나고 혼자 남겨졌을 때 닥쳐올 외로움에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샘이 테스와의 만남을 통해 조금씩 성장하면서 “죽음은 언제나 우리 앞에 있지만 죽음 이후를 연습하기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금의 삶을 만들어 나가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마리’s CLIP:
“여전히 매일 보고 싶지만, 내게는 행복한 추억이 아주 많단다. 우리 인생은 머릿속에 기억으로 남아 있어. 그 안에서 아내도 살아 숨 쉬고 있지. 함께한 모든 순간이 소중 하단다. 더 많은 추억을 남기면 좋았겠지. 최대한 많은 추억을 모으거라. 함께 보내는 순간들 말이야. 너무 늦기 전에." – 오두막 할아버지

샘이 간과했던 것이 있다면 죽음이 항상 차례대로 찾아오지는 않는다는 것. 예기치 못한 사건을 통해 샘도 이를 깨닫게 되고, 샘을 구해준 오두막 할아버지는 죽음에 매몰되어 잊어서는 안 될 삶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겨 준다. 혼자 남겨지는 것이 힘들지 않냐는 샘의 질문에 할아버지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한 기억과 추억이 존재하는 한 외롭지 않다고 답하는데 이는 영화가 처음부터 암시했던 ‘카르페디엠 (Carpe diem, Seize the day)’을 등장인물의 목소리를 통해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것이기도 하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였다. 누군가는 죽음 앞에서 기억과 추억은 힘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겨진 사람들이 떠난 사람들과 함께 현재에 집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건 역시 그들과 함께 한 기억이 아닐까.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영화 뉴스레터 ciné-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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