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아카이브 47. 스파이의 세계 Part. 2
언제나 로맨스를 가장 좋아한다고 이야기하지만, 마음 깊은 곳의 0순위는 다른 장르가 아닐까 싶을 만큼 추리 영화나 첩보 영화도 즐겨 본다. 극 중 인물과 함께 치열한 두뇌싸움을 벌이는 영화가 볼 때는 힘들지만 숨겨진 단서를 발견했을 때, 혹은 추리가 들어맞았을 때의 카타르시스 역시 크달까. 이번에 소개할 영화는 ‘진짜 스파이의 세계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는 작품들로 골라봤다.
<모스트 원티드 맨 (A Most Wanted Man)>, 안톤 코르빈, 2014년 개봉
<모스트 원티드 맨>은 911 테러 이후 세계 각국 정보기관의 감시 대상이 된 독일 함부르크를 배경으로 범죄 집단의 악행을 어떻게 저지할 것인가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게 되는 각국 정보기관의 심리전을 섬세하게 묘사한 존 르 카레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언제나 기대 이상의 연기력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아 온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마지막 주연작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윌렘 대포, 레이첼 맥아담스 등 연기파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이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는 총격전과 같은 자극적인 장면이 거의 없음에도 국내에서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는데 그 이유가 ‘주제의 이해도 측면을 고려할 때 청소년이 이해하기에는 어렵기 때문’이라고 할 만큼, 영화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보다는 쉽게 이해됐지만 국제 정세와 관련한 기본적인 지식이나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영화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존 르 카레의 첩보 소설이 지닌 가장 큰 특징이 ‘스파이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인 만큼 <모스트 원티드 맨> 역시 스파이라는 직업이 어떤 일을 하고 첩보 활동은 어떻게 하는지를 가장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정말 세상에 저런 물건이 존재할까 싶은 첨단 장비와 화려한 액션이 빠지지 않는 007 시리즈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와 비교했을 때 <모스트 원티드 맨>은 ‘직업으로서의 스파이’에 집중한 실제 스파이의 세계를 흥미롭게 풀어낸 작품이다.
독일 최고의 스파이였으나 지금은 정보부 소속 비밀조직의 수장인 군터 바흐만은 자신의 정보원을 미끼 삼아 더 큰 목표물을 제거하는데 탁월한 재능을 가졌다. 그런 그의 앞에 인터폴 지명수배자이자 아버지의 유산을 찾기 위해 독일 함부르크로 밀항한 무슬림 청년 ‘이사’가 포착된다. 본능적으로 이사를 쫓기 시작한 군터는 이사를 돕고 있는 인권 변호사 애너벨 리히터와 이사 아버지의 유산을 관리하는 은행장 토마스 브루의 존재를 알게 되고, 두 사람을 자신의 정보원으로 섭외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이사를 이용해 테러리스트들의 자금원으로 각국 정보부의 용의 선상에 오른 닥터 압둘라를 체포할 작전을 설계한다.
영화는 테러리스트를 검거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지만 넓게 보면 “인간이 저지르는 실수와 죄를 어떻게 볼 것인가, 더 큰 악을 막기 위해 작은 악을 저지른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에 대한 입장은 군터와 마사의 태도를 통해 대비되게 그려지는데 두 사람 모두 ‘안전한 세상을 만든다’는 목표를 갖고 있지만 군터는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을 선택하는 인물’로 영화는 “스파이의 세계를 배경으로 인물 설정을 통해 악을 대하는 원론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셈”이기도 하다. 군터와 마사를 비롯해 다른 영화 속 인물들은 악하지도 선하지도 않게 그려지는데 이를 통해 “개인의 양심과 직업적 의무가 충돌할 때, 인류애와 공공의 이익이 충돌할 때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하는가”를 물으며 인물들이 내리는 선택을 지켜보는 것 역시 영화의 흥미로운 지점.
마리’s CLIP: “Ending Sequence”
<모스트 원디트 맨>에서 많은 이들이 명장면으로 필립 세이모어 호프먼의 연기력이 돋보였던 엔딩 신을 고를 것 같다. 항상 침착한 모습을 보여온 군터가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 장면이자 군터에게 협조적으로 비춰진 마사가 사실은 어떤 의중을 갖고 있었는지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장면이기도 하기에 마치 감추고 있던 반전을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영화가 러닝타임 내내 보여준 실제 스파이의 세계와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누군가는 희생될 수밖에 없는 비정한 현실을 냉철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라 개인적으로도 여운이 오래 남는 장면으로 기억될 것 같다.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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