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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Oct 04. 2024

추억과 아픔을 품은 <우먼 인 골드>

씨네아카이브 49. 헬렌 미렌의 시간들 Part 2.

엠마 톰슨에 이은 영국 배우 특집 주인공은 헬렌 미렌! 내가 헬렌 미렌에 입덕한 시기는 늦은 편인데 <레드: 더 레전드>에서의 연기를 보고 고혹적인 섹시함에 반해 팬이 되어버렸다. <더 퀸>에 이은 두 번째 추천작은 그녀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좋아하는 <우먼 인 골드>.


씨네아카이브 49. "헬렌 미렌의 시간들 (배우특집 ep.7)" 전문 읽기

"헬렌 미렌의 시간들 Part.1" 읽기



우먼 인 골드 (Woman in Gold), 사이먼 커티스, 2015년 개봉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우먼 인 골드>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아델레 블로흐-바우어 부인의 초상’의 주인공 아델레의 조카 마리아 알트만이 초상화를 되찾기 위해 오스트리아 정부를 상대로 한 8년의 걸친 법정 싸움을 그린 실화 바탕의 작품이다. 마리아 알트만에 대한 이야기는 BBC 다큐멘터리를 통해 먼저 소개되었는데 감독이 이를 보고 이야기에 매료되어 영화를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영화를 제작할 당시 마리아 알트만은 사망한 후였기 때문에 마리아의 변호를 맡은 랜디 쇤베르크의 증언을 토대로 완성했는데 영화는 과거의 재연보다는 ‘2차 세계 대전과 홀로코스트에 얽힌 개인의 고통과 이를 치유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 인물의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그렸다.


마리아 알트만이 되찾으려는 작품은 구스타프 클림트가 그린 ‘아델레 블로흐-바우어 부인의 초상’으로 오스트리아의 모나리자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그림 속 주인공인 아델레는 사업가 페르디난트 블로흐의 아내로 그녀의 초상화는 남편이 클림트에게 부인의 초상화를 부탁하면서 탄생했다. 그리고 자녀가 없었던 부부는 그림을 조카들에게 남긴다는 유언을 남기면서 작품의 소유주가 조카들 가운데 한 사람인 마리아 알트만에게 넘어오게 되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가 나치에 합병당하면서 당시 집안의 예술품이 몰수당했고, 마리아는 고국을 떠나 미국으로 탈출하는 과정에서 초상화는 오스트리아의 소유가 되었는데 이후 마리아가 유언이 담긴 편지를 발견하면서 초상화를 되찾기 위해 소송을 진행하며 그녀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졌다.


예술품이나 문화재 환수는 국가 간의 이해관계와 과거가 복잡하게 얽힌 민감한 문제인 만큼 이전까지는 이와 관련한 소송에서 승소한 사례가 드물었다고 한다. 특히 오스트리아 국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품인 만큼 마리아의 소송은 시작부터 쉽지 않았는데 해당 사건은 이후 비슷한 사례의 판결에 긍정적인 선례를 남기지 않았을까. 당시 마리아의 변호를 맡았던 랜디 쇤베르크 역시 오스트리아에서 망명한 유대인 출신 작곡가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손자로 이후 예술품 반환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유명 화가 클림트는 자신의 후원자였던 아델레를 모델로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을 그리게 된다. 그러나 그녀가 죽고 난 뒤 남편 페르디난트는 나치에 의해 오스트리아 정부에 그림을 몰수당하고, 이 그림을 조카들에게 남긴다는 유언 만을 남긴 채 생을 마감한다. 세월이 흐른 1998년, 이미 노년에 접어든 아델레의 조카 마리아 알트만은 유언이 담긴 편지를 발견하게 되고 가족들의 추억이 담긴 그림을 되찾기 위해 무려 8년간 오스트리아 정부를 상대로 외롭고 긴 싸움을 시작한다.


마리아가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소송을 재기했을 때 초상화는 오스트리아 국보에 해당하는 위상을 지니고 있었기에 문화재 반환으로 파생될 다른 문제를 이유로 반환 소송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거부된다.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던 마리아는 현재의 자국인 미국 법원에 이를 문의하여 얻은 판결을 토대로 국제사법재판소를 통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권한을 얻으면서 8년간의 긴 싸움이 시작될 수 있었는데 마리아가 초상화를 돌려받고자 한 이유는 그림이 지닌 금전적 가치가 아닌 가족과 고국에 대한 추억을 되찾고 싶은 마음과 과오를 저지른 이들의 인정과 사과를 원했기 때문이다.


마리’s CLIP:

“사람들의 눈에 그림은 오스트리아 최고 화가의 명화로 보이겠지만 제 눈에는 제 숙모가 보입니다. 머리를 빗겨주며 인생을 가르쳐 주던. 환수라는 단어는 흥미로운 단어입니다. 사전에서 뜻을 찾아봤는데 ‘원래의 소유주에게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다'. 이걸 읽고 생각했죠. 저도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고 싶다고. 아름다운 이 도시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 많은 저희 세대들은 도망쳐야 했습니다. 저를 도망치게 만들었던 그들을 용서할 수 없네요. 최소한 우리 물건을 돌려받는 건 당연하지 않나요?” – 마리아 알트만

빈에서 열린 환수 위원회에서 마리아의 연설은 이를 가장 잘 보여준다. 마리아에게 고국은 생존을 위해 가족과 이별하고 떠나야만 했던 그리움의 대상이자 마냥 그리워만 할 수 있는 곳이 아닌 행복했던 추억과 아픔이 공존하는 공간인 셈이다. 영화는 마리아의 소송 과정을 따라가며 마리아의 모습과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의 태도를 극명하게 보여줌으로써 역사 속 과오가 현재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마리아의 승소로 끝나는 영화의 결말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영화 뉴스레터 ciné-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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