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브르타뉴 생 말로(Saint-Malo) 산책
프랑스를 여행하며 중세 시대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도시만의 매력을 발견한 곳은 남프랑스 아비뇽에서였다. 그러나 예스러운 도시의 매력에 완전히 매료되게 만든 곳은 노르망디를 시작으로 브르타뉴까지 이어진 자동차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였던 생 말로 덕분이다. 생 말로는 브르타뉴 지방의 주도이자 세계에서 조수간만의 차가 가장 큰 해안 도시로 알려져 있는데 오래전에는 해적들의 도시이기도 했다. 넘실거리는 파도와 해적들의 도시였다는 이야기만 듣고 떠올린 이미지는 미드 왕자의 게임 속 강철 군도. 그러나 도시를 찬찬히 걸어보면 알게 된다. 생 말로는 강인해 보이는 외면에 속에 감춰진 말랑말랑한 감성적이고 부드러운 면모 또한 많은 도시라는 것을.
브르타뉴 해안 도시 생 말로 (Saint-Malo) 산책
생 말로는 15세기부터 해상 탐험으로 수많은 해적을 배출하며 15~18세기까지는 프랑스의 중요한 항구 도시 중 하나로서 왕으로부터 공식 허가를 받아 적국의 배에서 물건을 약탈하던 해적들의 본거지였다. 그래서일까 해적의 후예들은 프랑스 사람도, 브르타뉴 사람도 아니고, 오직 생 말로 사람 (Ni francais, ni Breton, mais Malouin suis)라며 자랑스러워한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한다. 해적으로도 유명(?)하지만 문인을 배출해 낸 도시기도 하다.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의 거장 샤토브리앙의 고향이 생 말로다. 샤토브리앙은 이곳에서 태어나 생 말로와 근교 도시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고, 사후에는 생 말로의 그랑베 섬 위에 묻혔다. 캐나다를 발견한 자끄 까르띠에의 고향 역시 생 말로. 4년마다 까르띠에를 기념하는 축제가 열리는데 이 시기에는 많은 캐나다 인들이 캐나다 프랑스어권 지역인 생로랑(세인트로렌스)에서부터 요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생 말로를 찾는다고 한다.
중세 시대부터 특색 있는 역사를 지녀온 생 말로는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도시의 80% 이상이 파괴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은 철저한 고증을 거쳐 도시를 완벽하게 복원했기 때문이다. 고증을 통해 다시 복원된 생 말로를 제대로 둘러보고 싶다면 성곽을 때라 한 바퀴 돌아보는 것이 필수다.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샤토브리앙이 잠들어 있는 그랑베가 내려다보이는데, 사람이 살지 않는 섬으로 원래는 생 말로와 연결되어 있고 밀물 때마다 섬이 된다.
성벽을 따라 걸으면 생 말로의 풍경은 강인함 속에 숨겨진 말랑하고 부드러운 생 말로의 진짜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넘실거리는 파도 위에 장난감처럼 떠 있는 요트,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 미니어처 효과를 적용한 듯 구시가지 성곽 안에 오밀조밀 모여있는 삶의 터전까지.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내려다보며 걷다 보면 한때는 이곳이 해적들의 도시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생 말로 구시가지 안에는 볼거리, 먹거리가 모두 모여 있는데 특히 여행자들로 붐비는 7-8월에는 구시가지 곳곳에서 버스킹이 벌어져 어딜 가도 음악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그렸던 풍경은 우중충하고 어두운 분위기와 달리 한여름의 정중앙에 맞닿아 있던 생 말로는 비가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씨 틈에서도 흥겨움이 새어 나오는 밝고 활기찬 도시였다.
크레페의 본 고장 브르타뉴 (feat. 생 말로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
구시가지에는 유명한 카페가 하나 있는데 생 말로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이자 개성 강한 실내 장식으로 유명한 곳이다. 호텔에 짐을 풀고 지도를 받기 위해 리셉션으로 내려갔을 때 직원이 가장 먼저 추천해 준 곳이기도 하다. 지도에 별까지 그려가며 머무는 동안 꼭 가보라길래 일부러 시간을 내어 방문했는데 나처럼 숙소에서 추천받고 온 여행자들로 이미 만석이었다. 커피 맛보다는 독특한 분위기를 체험하는 값을 지불하는 곳이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분위기에 값을 지불하는 사치도 여행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함이기에 가보길 잘했다 싶다.
프랑스를 여행하다 보면 지역마다 대표 음식이 다양한 진정한 미식의 나라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브르타뉴는 좋은 밀이 생산되는 지역이라 밀을 주 재료로 하는 갈레트와 크레페가 유명한데 하루에 두 끼를 연달아 먹어도 질리지 않을 만큼 안에 넣는 재료에 따라 맛과 풍미가 달라진다. 갈레트는 우리나라의 부꾸미처럼 메밀가루로 된 얇은 크레이프 반죽에 짭짤한 속 재료를 채워 만드는데 가장 많이 넣어 먹는 것은 햄(jambon)과 치즈(fromage). 걀레트는 보통 간식이 아닌 식사용으로 먹는 경우가 많다. 크레페는 식사용과 디저트용으로 나뉘는데 짭짤한 재료로 속을 채우면 식사가 되고 달콤한 재료로 속을 채우면 디저트가 된다. 브르타뉴는 노르망디와 마찬가지로 맛있는 사과가 생산되는 지역이라 식사에 사과주인 시드르 (Cidre)를 곁들여 먹는 편이다. 시드르도 와인 못지않게 종류에 따라 맛과 풍미가 다양하기에 식당에서 메뉴에 어울리는 것으로 추천받는 것 좋다.
생 말로 여행 마지막 날에는 느즈막이 일어나 근교 도시를 방문했는데 우리는 생 말로에서 내륙으로 1시간 남짓 떨어진 호수마을 꽁부르그(Combourg)를 선택했다. 이곳은 샤토브리앙이 유년 시절을 보냈던 곳으로 호수 주변 공원에서 책을 읽거나 담소를 나누는 마을 주민들만 간간이 마주칠 만큼 한적해서 좋았다. 여행 마지막을 정리하며 잠시 쉬어가기 위한 선택지로 완벽했달까. 노르망디를 시작으로 보름 남짓 이어진 자동차 여행에서 사람들 틈에 섞여 알게 모르게 쌓여있던 피로가 찰나의 고요함으로 씻겨나가는 기분이었다.
생 말로는 콩부르그 이외에도 근교 도시로 가볼 만한 곳이 많은데 구시가지 안내소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통하면 렌터카 없이도 버스 투어를 통해 충분히 다녀올 수 있다. 안내소 투어의 아쉬움을 꼽자면 주로 여행자들이 선호하는 생 말로 근교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위주라는 것 정도.
Reference
생 말로 관광청 (saint-malo-tourisme.com)
본 글은 매일경제/네이버 여행+ CP 8기 활동으로 제공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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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여행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