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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프랑스 물의 도시 엑상프로방스

남프랑스 소도시 산책

by 마리

마르세유에서 기차로 1시간 거리에 위치한 엑상프로방스. 여름휴가 때 마르세유에 머물며 가까운 근교 도시를 다녀올 계획을 세우던 중 별다른 정보 없이 방문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좋았던 곳이다. 오렌지빛 건물로 가득한 거리 곳곳을 거닐며 여행자들이 쉽게 떠올리는 남프랑스(작열하는 태양 아래 해안가 혹은 보랏빛 라벤더 밭)와는 조금 다른 결의 남프랑스스러움이 묻어있는 곳이랄까. 푸른 하늘, 오렌지빛 건축물, 우거진 녹음, 사람들의 여유로움까지. 소도시 특유의 느긋한 바이브가 가장 돋보이는 곳이었다.


물의 도시 엑상프로방스 (a.k.a 분수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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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왼손에 포도송이를 들고 있는 르네 왕 분수 (우) 이끼를 뒤집어쓴 형상이 독특한 Fontaine Moussue

엑상프로방스는 도시 이름 도시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담고 있는데 그 시작은 기원전 로마 시대부터 사용되었던 수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이 귀했던 당시 지금의 엑상프로방스 지역에만 다수의 샘이 흘러 당시 로마 통치자였던 섹티우스(Sextius)가 자신의 이름을 붙여 '아쿠아 섹티아'라 부르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도시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엑상프로방스 곳곳에 샘물 흐르는 자리마다 분수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도시에 분수만 1000여 개 가까이 된다. 구시가지를 걷다 보면 몇 걸음 차이로 분수를 볼 수 있는데 똑같은 모양은 하나도 없다. 하늘 아래 같은 분수는 없어도 그중에서 유명한 분수는 존재하는 법. 엑상프로방스를 대표하는 분수는 미라보 광장(Cour Mirabeau) 근처에 모여 있다. 가장 이색적인 건 이끼를 뒤집어쓰고 있는 Fontaine Moussue. 로마 시대부터 사계절 내내 수온이 34도를 유지하는 샘물이 솟아나 이끼로 뒤덮인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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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Bonheur Archive

미라보 광장에는 파리 생 제르망의 '카페 레 두 마고'나 '카페 드 플로르'처럼 예술가들이 모이던 카페(Les Deux Garçon)가 하나 있다. 엑상프로방스의 예술가들이 이곳에 모였는데 세잔과 그의 친구들도 이곳에서 아페리티프를 즐긴 것으로 유명하다. 세잔과 에밀 졸라, 피카소, 에디트 피아프, 앙드레 말로, 사르트르, 장 콕토 역시 이곳을 다녀갔다고 하니 이쯤 되면 파리 생 제르망에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다. 때로는 유명세가 클수록 맛은 반비례하기도 하는데 이곳은 가격도 맛도 모두 훌륭했다!



세잔과 함께 걷는 도시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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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커다란 소나무와 생 빅투아르 산 (Montagne Sainte-Victoire with Large Pine)>, 1885~1887, 유화, 코톨드 미술관 소장

엑상프로방스의 또 다른 수식어는 세잔의 도시. 남프랑스 아를에 고흐가 있다면 엑상프로방스에는 세잔이 있다. 이곳은 세잔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작품 활동을 한 그의 고향이자 삶의 터전이다.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대가 에밀 졸라 역시 엑상프로방스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는데 세잔과 졸라는 유년 시절 친구이기도 하다. 에밀 졸라가 일찌감치 파리로 떠난 반면 세잔은 고향에 남아 작품 활동을 이어갔는데 엑상프로방스는 그의 삶의 터전인 동시에 작품에 영감을 주는 거대한 뮤즈이기도 했던 것 같다. 세잔과 엑상프로방스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생 빅투아르 산. 엑상프로방스 동쪽, 높이 1,011m의 생 빅투아르 산은 프로방스 지역의 랜드마크와도 같은 산으로, 세잔의 작품 활동에 가장 많은 영감을 준 곳이기도 하다. 세잔은 자신이 몰두했던 주제에 대해 평생에 걸쳐 연작을 제작하곤 했는데 생 빅투아르 산이 가장 대표적인 주제로 무려 87점의 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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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Bonheur Archive

세잔의 고향이자 삶의 터전이요 뮤즈였기에 엑상프로방스에는 그와 관련된 투어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관광청에서 운영하고 있는 투어 중 '세잔의 발자취'는 1893년 그가 태어난 생가에서 시작해 엑상프로방스 근교에 위치한 아틀리에를 방문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대표적인 프로그램 중 하나. 우리는 엑상프로방스에 머무는 시간이 짧아 구시가지 보도에 새겨진 동으로 만든 세잔 사인을 따라가는 것으로 우리만의 세잔 투어를 진행했다. 사인은 세잔의 생가에서 시작해, 그가 다녔던 학교, 자주 가던 장소까지 이어진다. 우리만의 작은 투어에서 아쉬움으로 남은 것이 있다면 근교 세잔의 아틀리에에 가보지 못했다는 것. 이곳은 세잔이 거주했던 장소로 정물화 작업에 사용했던 미술 도구와 오브제들을 둘러볼 수 있는데 기차여행으로 방문하다 보니 차편이 없어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라벤더 비누와 칼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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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Bonheur Archive

엑상프로방스는 라벤더 재배 지역이기도 한데 가장 유명한 곳은 엑상프로방스 근교 발랑솔(Valensole). 시기적으로 만개한 라벤더 밭을 보려면 여름휴가철보다는 이른 6월-7월에 방문하는 것이 좋다. 우리는 8월 초순에 떠난 여행이라 라벤더 밭 대신 엑상프로방스 상점에서 라벤더의 흔적을 찾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물론 차량이 따로 없어 라벤더 밭을 자유여행으로 가는 것이 쉽지 않기도 했고) 몇 걸음 차로 곳곳에 라벤더 추출물이 들어간 오일부터 향수와 비누를 파는 상점을 쉽게 찾을 수 있는데 상점 밖까지 은은하게 풍기는 라벤더 비누 향이 라벤더 밭 못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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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Bonheur Archive

엑상프로방스를 방문했다면 라벤더 비누와 함께 구매해야 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마름모꼴 모양의 디저트 칼리송(Calissons)! 아몬드를 주재료로 한 프로방스 지역의 대표적인 디저트인데 첨가하는 재료에 따라 색도 맛도 다양하다. 칼리송은 식감이 조금 독특한데 손으로 집었을 땐 젤리나 캐러멜과 비슷하지만 막상 입에 넣고 씹으면 (서로 공존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부드러우면서도 쫀득한 식감으로 무엇보다 보기보다 달지 않아 한 번 먹으면 멈출 수 없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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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Bonheur Archive

여행자의 시선에서 골목을 걸으며 마주한 풍경을 통해 돌아본 엑상프로방스는 소도시의 여유로움이 돋보이는 곳이었다. 분수 근처에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 직접 기른 작물과 수공예품을 선보이던 소박한 플리마켓, 우연히 마주한 시청 앞 결혼식, 푸른 하늘과 플라타너스 나무 그늘, 더위에 지쳐 갈 때쯤 선물처럼 불어오던 산들바람까지. 아비뇽에서 시작해 마르세유까지 이어진 남프랑스 기차 여행의 끝자락에서 마주한 엑상프로방스는 남프랑스 사람들의 여유로운 삶이 피부로 가장 잘 와닿았던 곳이고 그래서 더 기억에 오래 남는다.



Reference

프랑스 관광청 홈페이지 엑상프로방스 관광청 홈페이지

본 글은 매일경제/네이버 여행+ CP 8기 활동으로 제공한 원고입니다.

글의 내용 및 사진의 저작권은 필자 및 여행+에 있으며 내용의 일부 및 문체는 여행+에서 변경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여행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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