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차란,흑차의 정의와 역사
흑차를 만드는 전통적 방식은 악퇴와 소나무홍배 방식의 제조공법으로 만듭니다. 윤기가 흐르는 흑갈색을 띠며, 깔끔하고 부드러운 맛을 지니고, 송연향이 그윽이 풍겨나는 차입니다. 사족을 더 단다면 후난설봉산맥의 대중엽군체 품종이 그 재료라고 하고도 싶군요.
흑차라는 용어의 첫 역사문헌상의 데뷔는 명나라 가정 3년이니, 지금으로부터 493년 전인 1524년의 일입니다.
“상업차의 양이 적으니 모든 흑차를 끌어 모아라(産地有限,悉征黑茶).생산에 한계가 있으니, 차를 품질에 따라 상중으로 나누고, 도장을 찍고, 대나무로 둘러싸고,상품명을 기록해 알 수 있게 하라. 매 십 근을 하나로 찌고 말려 대나무로 싸라.그리고 차 관사에 보내어 관차와 상업차를 나누고 관차는 말과 교환하고, 상업차는 팔아라.”
『명사明史, 식화지食貨志』에 나오는 어사 진강의 상소문 중에 있는 한 표현입니다.명사는 모든 역사서 중에서도 가장 정밀하게 씌여진 역사서이며, 식화지란 식화食貨를 기록한 책입니다.식食이란 음식이며 화貨는 재물이니, 식화란 곧 경제 일반을 뜻하는 말입니다. 예로부터 각 시대의 역사서엔 대체로 식화지가 포함되어 있는데, 그중에서도 『명사明史, 식화지食貨志』는 체재와 논리가 정연할뿐더러 내용도 풍부하기로 유명합니다.
어찌 되었건 위 기록을 남긴 이는 전강인데, 그의 당시 직업이 어사입니다. 어사란 왕으로부터 특별한 사명을 띠고 지방에 파견되던 임시 직업이니, 직분은 높지만 비정규직입니다.
상소문의 표현을 통해 흑차의 모습을 일부 재현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흑차’라는 차가 있구나
흑차의 생산량이제한적이네
수요가 많은가 보구나
차를 품질로 나누되 상품과 중품으로 구분했구나
관인官印으로 봉했구, 대오리로 포장했으며
포장한 후에는 상품명을 적었네
하나의 덩어리 중량은 십 근 이구만
관리처가 따로 있었구
관차官茶와 상업차로 구분했는데
관차는 말과의 교환이 주목적인데 반해,상업차는 경제적인 필요를 충족해야 했구나 하는 등등입니다.
그때의 흑차는 후난지역의 차였습니다. 생산물량도 많았거니와 맛과 향이 북방소수 민족의 식생활과 취향이 맞아 인기가 높았지요. 가공은 샨시陝西성 씨엔양咸阳현과 징양泾阳현 일대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지금도 징양전이라 하면 흑차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지요.
한 근짜리, 1kg짜리, 10kg짜리, 30kg짜리, 40k짜리, 혹은 90kg짜리 들이 있지요. 차 종류도 육보차, 강전차, 금첨차, 모장차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육보차는 30kg짜리 대오리로 만들어 숙성시킨 뒤 분쇄하여 재포장 합니다.병차나 전차 등 긴압차로도 만들고 한 근짜리 대오리에 산차 모습으로 포장하기도 합니다.
금첨과 강전은 10kg짜리 대오리에 넣되 그 대오리 세 덩어리를 모아 다시 야크 가죽으로 쌉니다. 그래야 차마고도의 먼 길을 안전하게 운반할 수 있겠지요.대오리 안에는 누런 종이로 소포장이 되어 있는데 강전은 한 근 단위로, 금첨은 다섯 근 단위로 되어 있어요.
반면 모장차는 30kg짜리, 40k짜리 대오리 안에 소포장이 없이 통째로 차가 긴압되어 들어 있습니다.기회가 닿는 대로 그 대오리들의 포장을열어 묵은 차를 한 잔씩 우려 드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