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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euN 쓴 Oct 31. 2024

4-1. MBTI검사를 가장한 인물분석

연극에는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등장한다. 실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모여 있는 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스토리에 맞지 않는 억지 인물을 넣을 수도 없고, 과감하게 배역을 뺄 수도 없다. 대본이 이야기하고 싶은 본질은 인물 간의 갈등과 배경에서 나타나는데, 그러기에 더더욱 인물 분석에 힘을 쏟아야 한다. 배역을 분석하다 보면 사람의 군상에 대해 고찰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질문이 


"나는 어떤 사람일까?" 


이다. 과연 사람들이 생각하는 "어떤 사람"은 무슨 뜻일까? 그러니까 나는 어떤 사람이라고 말해야 하는 걸까?


현재의 가장 쉬운 질문으로 스몰토크에서나 처음 만나는 사람과 이야기를 시작할 때 많이 하던 주제거리이다. 열풍이라 해야 할 정도였고 M.B.T.I 가 없으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없었을 때가 있었다. 나는 그러한 열풍이 조금은 과하다 싶었다. 16가지의 유형으로 사람을 나누고 나와 맞는지 아닌지 초면에 이야기할 수 있는 조금은 불편한 편 가르기 식 도구라고 생각했다. 


포켓몬스터 노래 가사에 보면 "서로 생긴 모습은 달라도 우린 모두 친구'라는 가사가 나온다. 꼭 모두가 친구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미리 "나는 너랑 친구 안 해"라고 하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이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16개 유형이 인간 군상 모두를 표현할 수 없다. 그건 누구라도 아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지표도 없이 처음 봐야 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초면의 상대를 대하는 게 서투르다는 생각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M.B.T.I를 해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단지 그런 가벼움이라면 어느 정도 이해는 하지만 진지하고 깊은 과정으로 사람을 나누거나 분석하는 것에 사용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연극에서 인물 분석은 무엇을 하는 과정일까? M.B.T.I로 분석이 가능할까?


대본을 받아 들면 연기를 바로 "뙇" 해내면 좋겠지만 나 같은 아마추어는 쉽지 않은 일이다. 연기라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것도 맞지만 내가 연기해야 하는 배역에 오롯이 몰입하는 과정이 없이 그 역을 연기한다는 것이 여간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창 극단 활동에 몰입했었을 때, 연기라는 분야 자체를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그때는 아이러니하게도 무조건 대사가 적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다. 무대에 서는 일은 흥분되고 신이 나는 일이지만, 두려움과 낯섦이 늘 공존한다. 그러기에 대사가 적으면 무대에 있는 시간이 적으니 빨리 대사를 하고 들어오면 무대에도 설 수 있고, 빨리 내려올 수도 있으니 그 방법이 제일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짧은 생각으론 나름 무대에 서는 경험도 하고 사람들 앞에 서는 경험도 하고, 여러모로 짧은 게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극으로 오래 하면 할수록 가장 어려운 일이 짧은 대사를 가지고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일이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대사가 짧으면 연기하는 시간이 짧아지고, 연기하는 시간이 짧으면 사람들에게 내가 극에서 맡은 역할을 제대로 설명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글머리 부분에서 설명했지만 연극에는 다양한 역할의 배역이 존재한다. 정해진 분량 안에서 설명하고 있는 사건을 해결하려면 인물 간의 다양한 대립이나 소통이 있어야만 하는데, 인물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사건을 풀거나 해결하가 너무나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다. 짧은 대사를 뱉기 전엔 그 대사가 왜 나왔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대사를 상대 배역을 향해 쏟아내는 일이건 관객을 향해 쏟아내는 말이건 '내가 왜 이 대사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들어있어야만 한다. 그 고민이 바로 인물 분석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등장인물의 배경지식. 즉 나이, 성별, 결혼유무. 대립하는 배역과의 과거 혹은 원인, 성격, 발성의 예측, 사투리 유무, 걸음걸이. 부자(부유함), 습관 혹은 버릇 등 많은 부분들이 인물 분석하는 질문이 된다. 질문을 보고 다시 대본을 읽어보면 내가 어떤 부분이 인물을 분석할 '대사' 인지를 바로 찾아볼 수 있게 된다. 


처음 만나는 사람을 한 번에 알아보기란 쉽지 않다. 영혼의 단짝이라던 전 여자 친구도 헤어지는 마당에 실제로 나에게 대화 한마디 건네지 못하는 대본 속 인물의 정보를 만들어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일을 마치고 나면 대본 읽기가 훨씬 가벼워지고, 당위성을 찾을 수 있어 화가 나도 화나는 연기를 슬퍼도 슬픈 연기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귀찮고 힘든 일이라 요즘엔 인물 분석을 안 하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는데, 인물 분석은 기초 중에 기초를 빼먹으면 나중엔 인물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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