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남극. 후 북극

위대하게 때론 반짝거리게

by SseuN 쓴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고 오겠네.

그랬다. 지구는 둥그니까 잘 걸어가 가기만 한다면 한 바퀴를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세상에는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나 말고도 이미 많은 사람들은 같은 생각 했다. 물론 그중에 생각으로 그치지 않고 도전을 했고 이미 그들이 목표한 결과를 얻게 된 사람들도 있었다.


'Giant Stepes'이라는 책의 저자이자. 걸어서 세계여행을 하고 있는 '칼 부쉬 비'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다. 나처럼 긴 여행을 계획 중이거나 여행을 마치고 온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 본 이름일지도 모른다. 칼 부쉬 비는 영국인으로 영국군에서 낙하산병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 그는 군 복무 시절 당시에 앓고 있던 난독증으로 더 이상의 진급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12년이라는 긴 군생활을 마감했다. 1997년 제대를 선택하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이혼의 아픔까지 겪으면서 정신적으로 허약해졌다. 강인한 군인이 되고자 했던 그의 가장 큰 목표가 없어지고 사랑하는 사람까지 잃으면서 그는 더 이상의 목표가 없어진 상태가 되었다.


그러던 중 스스로 극한의 상황으로 자신을 내 몰아세워 극복하게 되면 더 큰 용기를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두 발로 걸어서 세계를 돌아 집으로 가는 여행의 길에 서게 되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24년간 여행을 이어나가고 있다. 지금 그의 나의 53살이다.


각자의 가치관이겠지만 '칼 부쉬 비'는 이미 그의 꿈을 이루기 시작한 나만의 위인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가 쓴 일기를 아버지가 받아서 책을 출간하기도 했는데, 그 금액으로 여행을 이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세상은 그가 영국에서 처음 출발 한 1998년보다 훨씬 변화무쌍하게 바뀌고 있다. 매년마다 새로운 종류의 핸드폰이 나오고 있으며 그가 여행을 시작했을 당시 노트북에 설치된 윈도우98 시스템은 이제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를 알고 있었던 사람들도 그의 존재가 조금씩 흐려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는 자신의 꿈을 위해 정착보다는 걷기를 택했다. 사람들의 기억에 잊히겠지만, 나 자신의 마음을 먼저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먼저라고 결심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의 결심처럼 비장하거나 혹은 대단한 이유가 있지 않았다. 단지 세상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고, 담고 싶었다. 어쩌면 평생 못 보고 죽을 수 있겠다는 것에 최선을 다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진으로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두 눈으로 보고 뇌에 저장시키고, 나중에 사진을 보고 그 기억들의 조각을 맞추는 것을 계획했다.


'칼 부쉬비'의 어려움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나 또한 크게 어려움이 있었다. 아주 어렸을 시절 나는 큰 사고로 한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인이 되고 나서도 고치기 힘든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로 인해 승진의 누락이나 꿈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무엇이든 직접 보는 것을 좋아하게 된 것이 바로 여기서 나오는 욕심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세상의 여러 곳을 다니더라도 직접 그곳을 가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볼 수 없음에 대한 두려움이 큰 탓이다. 스무 살에 받았던 군입대 신체검사에서 군의관은 나에게 보이는 눈을 소중히 하지 않으면 실명의 위험이 있다고 했다. 당연히 이미 실명한 눈이 있으니 다른 눈이 실명해 버리게 되면 그 기능을 다한다는 것이 뻔 한 결과지만, 좋은 시력을 유지하고 있는 다른 눈 마저 실명이 된다는 가정을 들어버리니,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열심히, 그리고 부지런하게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능력이 되면 치열하게 살지 않았도 된다. 어느 강연에서 강사는

"10억이 있는 부모는 아이에게 2억을 투자해서 실패하면 3억을 들여 가게를 차리게 되고, 그러면 돈을 벌 수 있다" 고 했다. 그리고

"2억이 있는 부모는 아이에게 2억을 투자해서 실패하면 전 재산을 잃게 된다" 고 말했다.


교육에 관한 강연이었는데, 나는 다른 생각을 했다. 나는 이제 하나를 잃게 되면 모든 것을 잃게 되어 버린다. 그렇게 내가 선택하지 못한 인생을 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쉽게 떠 날 수 있었다. 선택지 중에서 가장 큰 것을 고르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여행은 내가 목표 한 바 대로 계획하고 움직였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보고 기억했다. 그리고 나도 기록했다. 대단한 기록은 아니었지만 매일 저녁 짧게라도 글은 끄고 잠에 들었다. 사람들이 읽어 줄지도 모르는 글은 내가 여행을 처음 시작해서 중국을 들어갔을 때부터 쓰기 시작해서, 쿠바를 지나 한국으로 들어오는 내내 날짜 순서대로 기록해 남겨 두었다.


우리 집에서 출발해서 우리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은 아쉽게도 못 가 본 곳이 더 많았다. 심지어 오로라는 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여건 상 북극으로는 일정을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남미의 여행 중에 만난 남극의 모습은 기억에 남겨 두었다. 나는 일정이 남극에서 북극으로 이어지는 일정이 되어 버렸다. 지금은 침대 위에서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지만 어느 순간 다시 여행의 기록을 시작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남극을 먼저 다녀왔으니 북극을 향해가는 여정을 세우면 되겠다. 선 남극 후 북극은 바로 이어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내가 훔친 많은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