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물건은 건들지 말자.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몇 학년 때였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았지만, 어린 시절의 이야기다.
학교 앞에 자리하고 있는 작은 문구점에는 준비물을 사려는 많은 학생들이 줄 서 있었다. 나도 그중에 섞여 있었다. 처음엔 작은 지우개 하나였다. 계산을 하려다 뒤로 밀리면서 타이밍을 놓쳤다. 그러면서 지우개 값으로 내려던 100원은 다시 내 주머니로 들어왔던 것이다.
물론 그 뒤로도 지우개와 작은 간식들은 계산도 하지 않은 채 실내화 주머니 앞 작은 공간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남은 돈은 그 문구점 한편에 설치되어 있는 게임기에 돈통으로 흘러 들어갔지만 말이다.
중학교 시절엔 철이 들어 남의 물건에 손을 대거나 초등학생 때처럼 문구점에서 물건을 가지고 나오는 일은 없었다. 그러던 중 친구들과 학교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길가에 세워져 있던 자전거를 타고 집에 오면서 나의 나쁜 일은 다시 시작되었다.
그 시절을 변명하자면 친구들과 무리 지어 다니는 중학생의 변질된 용기라고 하면 될까 싶다. 굳이 안 해도 되는 일은 해서 친구들 사이에 화자가 되는 것이 자랑이 되는 시절이었다. 집에서 갑자기 생긴 자전거에 대한 질문에 거짓말을 하기 싫어서였을까? 끝까지 집에는 들고 가지 않았다. 동네 입구라던지, 친구 집에 세워두고 집에 갔었다.
물론 얼마 안 가서 그 자전거를 누가 훔쳐가면서 나도 얻은 게 없이 끝이 났다.
나쁜 일이 나쁜 줄 모르고 살던 시절의 일들은 결국 나에게 돌아왔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참 많은 짐을 들고 다니게 된다. 가방 하나 가득 옷과 의약품, 그리고 카메라와 노트북 같은 전자기기까지도 다 들고 다니게 된다.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 사막을 여행하고 수도인 라파즈로 돌아왔을 때였다. 한국에서 우유니 소금사막을 보려고 왔던 친구는 같이 마추픽추를 가기 위해 동행길에 올랐다.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즈는 고산에 위치하고 있어 마을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호흡이 가빠오고, 어지러움을 느끼는 경우도 많이 있다. 물가가 저렴하고, 아직 발전된 도시가 아니라 도로도 포장된 도로가 아닌 곳이 많다.
도착한 첫날, 저녁을 먹기 위해 나간 '마녀 시장' 끝에서 우린 강도를 당했다. 칼을 든 강도는 우리를 뒤에서 목으로 졸라 기절시키고 가지고 있는 물건 전부를 강도해 달아났다. 들고 있던 현금이 얼마 없었지만 여권과 카메라를 가져갔고, 핸드폰도 가지고 달아났다. 포장이 안 된 도로 위에 우리 둘은 기절해 있었고, 고산지대라 호흡도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칼들 든 강도를 쉽게 대적할 수는 없었다. 우리도 준비 없이 당하긴 했다. 하지만 주변의 사람들도 쉽사리 도와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들의 미안하다는 위로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우선 자리를 피해 몸을 추스르는 게 중요했다.
손이 떨려오고 머리는 어지러웠으며 충격으로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서지 않았다. 다만 할 수 있는 게 경찰에 신고를 하는 것뿐이었다. 친구의 안드로이드 핸드폰 위치 추적으로 가까운 곳에 그들이 있음을 알 수 있었지만 우리만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가기엔 역부족이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가타부타 소식도 없고, 여전히 대사관으로 거는 전화의 신호음만 들렸다. 잠시 후 대사관에 연결이 되어 대신 경찰에 정식 요청을 넣었고, 우리는 신고를 마치자마자 숙소로 돌아왔다.
우리는 일단 해야 할 조치들을 하나하나 시작했다. 다행히 노트북이 숙소에 있었고, 핸드폰 한대가 있으니 한국에 연락하고, 카드는 정지했다. 아직까지도 손이 떨리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긴 여행을 하면서 강도를 당할 것이라는 생각도 못해봤고, 실제로 일어나면 어떻게 할지 고민해 본 적도 없던 터라 머리가 멍하기만 했다. 쿵쾅 거리는 심장과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땀은 그리 유쾌한 느낌이 아니었다.
다음날 여권 사진도 찍고 대사관으로 가서 여권을 새로 만들었지만. 단수 여권으로 여행에 재동이 걸려 버렸다. 미국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고, 캐나다는 당연히 입국할 수 없는 여권이었다. 외국에서 만든 단수 여권으로는 한국으로 가는 여정만 허락되었다.
하는 수 없이 큰 일정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여행의 큰 변환점을 맞이 했다.
세상의 이치라는 게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다. 내가 누군가의 것에 손을 대었으니 반드시 누군가가 나의 물건에 손을 대는 것이다. 그 일이 있고, 볼리비아를 나가는 내내 그 생각뿐이었다. 내가 잘 못한 것이 결국 이렇게 돌아 다시 나에게 오는구나. 그날 잃어버린 자전거 주인은 며칠을 손을 떨며 잠을 못 이루었으리라. 내가 여행을 돌아오는 날까지도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