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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월 Mar 31. 2023

여성의 서사로 본 권력과 욕망에 대하여

[그린바이브] 여성의 삶은 다채롭고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최근 다양한 미디어에서 여성이 1인 주인공이 작품들이 많이 선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여성의 이야기는 신데렐라 스토리, 여성의 복수극, 치정멜로 등 여성의 연애 이야기에 중점을 두는 작품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남성들의 서사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권력과 욕망을 이야기하는 작품들도 종종 볼 수 있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여성들에게도 당연히 권력과 욕망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여성이 권력을 탐하거나 욕망을 드러내는 순간 낙인이 찍혀 주변에 따가운 시선을 감당해야 했다. 중세시대에는 마녀사냥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재능있는 여성들이 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최근 읽은 <커리어 그리고 가정>이라는 책은 하버드 경제학과 여성 최초의 종신 교수, 클라우디아 골딘이 미국의 대졸 여성들을 세대별로 분석하여 성별 임금 격차의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100여 년간 1세대에서 5세대로 나누어서 여성들이 커리어를 추구하기 위해 어떤 제약을 경험했고 이를 어떤 과정을 통해 해결해 나갔는지를 통계를 통해 보여준다. 이 책에서는 커리어와 일자리를 구분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커리어는 “일구고 진전시키는 데 온전한 관심과 집중을 쏟을 필요가 있는”일이며, 일자리는 돈을 벌기 위한 행동으로 단순 노동을 표현하고 있다. 가정 역시 결혼을 하고 아이가 있는 경우를 표본으로 삼고 있어서 책에서 표본으로 정한 여성의 범위가 좁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책이 성별 소득 격차, 소득 불평등을 해결하는 답을 완벽하게 제시한다고 보기에는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주는 몇 가지의 메시지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데 관심을 가지고 함께 논의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는 탐욕스러운 일(greedy work)이라는 용어를 만들면서 가차 없는 밀도로 불규칙한 일정에 대응해 가며 장시간 일할 것을 요구하고 그 대가로 높은 보수를 지급하는 일들로 인해 성별 간 소득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즉 부부 사이에 가구 소득을 높이기 위해 결국 공평성이 내버려지게 되고 부부간 공평성이 버려지면 보통은 성평등도 함께 버려지는 일이 벌어진다고 한다. 남성은 가정도 갖고 커리어의 속도도 낼 수 있는데, 그것은 여성이 커리어의 속도를 늦추고 가정일을 챙기기면서 커리어를 이어나가기보다는 일자리를 찾게 되는 것이다. 탐욕스러운 일에 대한 사회적인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지점이었다. 성장만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있는 자본주의 시대에 탐욕스러운 일에 대한 대전환이 기후위기 시대에도 꼭 필요한 지점이며,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잘 유지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싶다. 물론 탐욕스러운 일 하나만을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만 삶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노동구조, 가부장제, 정상가족 등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고려하면서 해결방안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인상적인었던 지점이 여성들이 커리어에 진입할 수 있게 한 큰 요인 중 하나가 피임약이라는 사실이다. 즉 임신이 여성이 사회 진출을 하는데 큰 제약이었던 것이다. 많은 남성들이 성인이 되면(혹은 성인 이전에도) 자신의 성욕을 부끄럽 없이 이야기하고 ‘총각을 뗀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여성과의 잠자리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이는 영웅담처럼 이야기되고 웃으면서 소비해 버리는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여성은 ‘순결’ 해야 한다는 인식과 함께 성욕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로 치부된다. 다양한 미디어에서 남성의 몽정과 자위행위를 웃음으로 소비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었으며, 여성의 성에 대한 이야기는 음란하며 저속한 것으로 소비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왜 이런 하지만 여성에게 남성과의 잠자리를 통해 아이를 가지게 되는 순간 여성의 삶은 자신이 생각지 못했던 삶으로 하지만 피임약이 나오면서 여성들에게 성욕과 사회생활 진출의 가능성을 만들어 준 것이다.

“페미니즘은 [우리에게] 일하고 싶다는 열망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효과적인 피임수단은 [우리에게] 일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습니다.”


이 책은 미국의 역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에게는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확실히 있었다. 이 책에서 4세대쯤에 해당되는 시기를 설명할 때는 미국 드라마 <미세스 아메리카>가 생각났다. 책에서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는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이 드라마에서도 정치인 ’필리스 슐래플리‘의 반대편에 있는 중요한 인물로 나온다. 정치인 ‘필리스 슐패플리’와 페미니스트 운동가이자 잡지 미즈(Ms) 편집장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큰 축을 이루고 미국의 ERA(성평등 헌법수정안)을 가지고 찬반 운동을 벌이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볼 수 있다. 여기서 필리스(케이트 블란체)는 반페미니즘 운동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비로소 (남성들이) 귀 기울이게 만든다. 자신은 여성의 특권을 옹호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군 징집에서의 자유, 임신, 출산, 가정을 지키는 것이 여성의 특권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가 활동하고자 하는 정치판에서 계속적인 성차별을 경험한다. 여성으로서 가정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은 그 가정 밖의 삶을 꿈꾸는 그의 모습이 답답하다가 미웠다가 안타깝기도 하면서 그 시대의 복합적인 여성을 잘 보여준 것 같았다. 그는 커리어를 만들어가기 위해 반페미니스트 운동을 하고 있지만 그 자신이 매우 페미니스트적인 행보를 보인다. 자신은 절대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미세스 아메리카 스틸컷

여성의 적은 여성(여적여)이라는 표현이 종종 일상생활이나 미디어에서 사용하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여성의 적이 대다수 남성이지만 여성일 때도 있고, 연대하고 함께 싸워나가는 사람들이 대다수 여성이지만 남성일 때도 있다. 드라마 자체에서 어느 한쪽을 선과 악으로 구분 짓어서 인물을 그리지 않은 점이 객관적으로 그 시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점점 남성과 여성을 구분 짓어서 표현하는 문구들의 사용이 없어지기를 바란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에 대해 궁금한 분들에게는 넷플릭스의 <세상을 바꾼 위인들> 다큐를 추천드린다.


영화 <타르>를 보면서 여성의 권력과 욕망에 대한 생각을 다른 시각으로 하게 되었다. 케이트 블란체가 연기한 ’ 리디아 타르‘라는 여성으로 처음 베를린 필하모닉 수석 지휘가로 선출된 재능이 뛰어난 인물로 무대를 장악하는 마에스트로로 커리어의 정점에 있는 그가 점점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여자라서 손해 본 것이 없이 승승장구한 인물로 여성주의와 소수자 연대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다. 자신이 설립한 여성음악인 아카데미도 지원자를 여성으로만 한계를 주지 말고 열어서 받자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하며 여성의 날에 대한 인식도 전혀 없다.

또한 이영화는 권력형 성범죄의 가해자 자리에 전형적인 예술가 남성이 아니라 레즈비언 여성을 세웠다. 이로 인해 여러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 여성 지휘자인 마린 올솝은 이 영화에 대한 불쾌감을 공식적으로 표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영화는 남성이나 여성으로 구분 짓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부패한 본질’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케이트 블란쳇의 인터뷰처럼 이 영화의 주인공을 여성이 함으로써 권력의 부패, 부패한 예술가들의 결과물에 대한 평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예술가들을 후대에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등을 이야기할 수 있게 해 준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타르가 선한 인물이고 여성 연대를 위해 힘써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던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또한 극 중 등장인물인 남성들은 타르의 커리어를 방해하는 인물이지 않을까라는 편견을 가지고 영화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타르는 내가 생각했던 여성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모든 여성이 여성의 날을 알고 있고, 여성이 주인공이라고 선한 인물이고 연민을 가지게 되는 인물이지는 않을 것이다. 이 영화가 다양한 방면으로 비평받을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그동안 남성 캐릭터에서만 볼 수 있었던 모습을 볼 수 있어 여성의 캐릭터로 가지고 온 부분은 확실히 흥미로웠다. 물론 케이트 블란체의 연기가 너무 훌륭해서 더욱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여성을 여성이라는 고정관념에 갇히고 생각하는 나 자신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여성이 권력과 욕망을 들어내는 순간 인간이 그러하듯 한 순간 나락으로 떨어지고 부패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반면 JTBC 드라마 <대행사>의 경우, 여성이 커리어의 정점에 올라가려면 보이는 전형적인 모습들을 나열한 모습이 지루해서 드라마 중도 하차를 결심했다. 차가운 도시의 여성답게 칼단발을 한 그는 불면증에 시달리며 일중독이다. 밤을 새우며 일을 하지만 항상 아름다운 모습으로 항상 잡지에 나올 듯한 패션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만큼 실력도 뛰어나서 주변의 시샘을 받는데, 회사에서는 그녀의 실력만큼 인정을 해주지 않고 남성들로 구성된 카르텔은 드라마상 악인으로 나온다. 이런 진부한 설정은 이제 그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유독 한국 드라마에서는 여성이 권력을 손에 넣으면 진한 화장(눈꼬리를 위로 올리는)과 과한 패션으로 즉 겉모습을 치장한 모습을 보여주는지 모르겠다. 여성=화장과 패션이라는 공식을 깰 수는 없는 건지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역사를 살펴보면 여성이 권력과 욕망을 드러낼 수도 없었던 시절이 있었고, 조금이나마 욕망을 보이거나 사회적으로 관심을 받게 되면 사회에서 질타를 받거나 마녀사냥이라는 이름으로 죽음을 당하는 시절도 있었다. <커리어 그리고 가정>에서 언급했듯이 각 세대별 여성들이 생애의 각 국면에서 다른 유형의 삶을 '연쇄적'으로 살아오면서 다음 세대의 여성들에게 가능성을 조금씩 열어주었다. 이제는 여성들이 자신의 욕망을 들어내는 것을 숨기지 않고 권력을 향해 커리어를 지속해 나가야 하는 시대이다. 미디어에서도 이런 여성들의 권력과 욕망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더 다양하게 나와서 여성 남성으로 구분 짓어서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작품을 마주하게 되는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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