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을 데리고 엄마들끼리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다. 높고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이 그림처럼 펼쳐진 곳에서 즐거운 가을 여행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나니 돌아올 집이 있고 보고 싶은 가족이 살아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녹초가 된 아이들을 씻기고 서둘러 모든 짐을 정리했다. 입었던 옷들을 세탁기에 넣고 나머지 물건들은 제자리를 찾아주었다. 저녁을 먹고 따듯한 물로 씻고 푹 자고 싶었다. 하지만 한 가지 남아있는 일정이 있었다.
장례식장에 가야 했다. 아는 언니의 엄마가 암으로 몹시 아프시다 돌아가셨다. 부고 소식은 어제 들었으나 여행 중이라 갈 수가 없었다. 오늘 저녁에라도 갈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사실 어제는 갈지 말지 조금 고민했다.
언니와 나는 예전부터 아는 사이였다. 20대 때 우리는 교회 청년부에서 같이 활동했는데 친하지는 않았다. 서로 깊은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고 나는 언니에 대해 제대로 몰랐다. 또 언니의 겉모습만을 보고 나 혼자 약간의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결혼식장은 안 가도 장례식장은 꼭 가야 한다는 예전 목사님 말씀을 기억하며 옷을 갈아입었다. 탈색을 3번 한 머리가 이럴 땐 하나도 예뻐 보이지 않았다. 내가 어쩌자고 머리를 이렇게 만들었나 싶다. 누군가는 나를 보고 편견을 가지겠지. 검은색 옷을 찾느냐고도 한참을 헤맸다. 겨우 한여름에 입는 검은 정장 바지에 검은색 흰색 체크무늬 블라우스를 입고 장례식장으로 출발했다.
아이들과 즐거운 여행을 하고 남은 조각의 슬픔으로 언니를 위로해 준다는 것이 미안했다. 나의 위로가 얼마나 도움이 되겠냐마는 나도 엄마가 암으로 아프시다 돌아가셨기에 언니의 슬픔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장례식장에 도착했는데 한여름 옷을 입고 있어서인지 몸도 마음도 너무 추웠다. 3층으로 올라가 301호에 들어서니 의자에 앉아 있던 언니가 서둘러 나를 맞이하러 나왔다. 하얀 국화를 놓아드리고 두 손을 모았다. 하나님께 남은 가족들을 꼭 붙잡아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나의 어리석은 걱정이길 바라지만 언니가 미혼이라 더 힘들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을 보니 그래도 마음이 놓였다. 내가 걱정했던 것보다 언니는 괜찮아 보였다. 아마 모든 장례가 끝나고 홀로 남는 그때에는 무척 힘들겠지만, 지금은 씩씩하게 버티고 있었다. 인사만 하고 가려고 했는데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단둘이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말주변이 없는 나를 배려하는 듯 언니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엄마의 암이 갑자기 많이 퍼지고 안 좋아졌다고. 올해 연명치료만 계속하시다가 너무 고통스러워하셔서 호스피스에 가셨는데 며칠 만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나는 호스피스란 말만 들어도 그 어두웠던 회색 병실이 생각이 나서 힘들었다. 그러면서 예전에 있었던 하나의 작은 일을 이야기했다. 나는 어렴풋이 기억이 날듯 말 듯했다. 뇌와 눈을 굴려가며 기억을 떠올리려 애썼다.
"내가 꼭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어. 그때 내가 무척 아프고 힘들었는데 말이야. 나와 함께 해줘서 고마웠어.”
언니는 내 두 손을 꼭 잡고 말했다. 나에게 예전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꼭 하고 싶었다고 말하는데 가슴이 저릿했다. 나는 몰랐지만 당시 언니가 많이 아팠을 때라고 한다. 겉으로 보기엔 전혀 몰랐으니 아마도 마음의 병이었던 것 같다. 우울증이었다고 한다.
내가 언니에게 찬양단을 같이 하자고 말했는데, 말에서 그치지 않고 연락하고 이끌어주었다고 한다. 언니는 지금도 찬양단을 하고 있는데 삶의 큰 원동력이라고 했다. 보잘것없는 내가 그런 도움이 되었다니. 잠깐이지만 여기에 올지 말지 고민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동시에 잘 왔다는 생각에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던 미안함의 공기가 쑤욱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나도 힘들었을 때 누군가의 작은 말과 행동으로 큰 위로를 받은 경험이 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3년 후 아빠마저 이 세상을 떠나니 진짜 고아가 된 느낌이었다. 어느 날 동네 길에서 큰 아이 어린이집 친구 엄마를 만났다. 우연히 알게 되었다며 아버지가 돌아가셨냐고 물으며 위로를 해주었다. 그때 너무 힘들어 넋을 놓고 걷고 있었는데 따듯한 위로의 말을 들으니 울컥했다. 뒤돌아서 걸으며 한참을 울었다. 그다음 마주쳤을 때 고맙다는 말을 차근차근 전하고 싶었는데 가슴이 복받쳐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그 후 우리는 지금도 좋은 인연으로 남아있다. 누구나 다른 이에게 작은 의미로 도움이 될 수 있다. 나의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이 모든 사실에 마음이 따듯해진다. 살아갈 힘을 얻는다.
언니와 아이들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들 주라며 음료수와 간식도 챙겨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마음은 무겁고도 가벼웠다. 장례식장에 가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에 하나님께 그리고 천국에 있는 엄마아빠에게 '나 잘했지요.'라고 속으로 속삭였다.
즐거운 여행 후 장례식장에 다녀오니 문득 인생이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을 여행이라 생각해 보았다. 여행은 언제나 끝이 있다. 누가 어떤 여행을 했건 상관없다. 오랜 여행의 끝에 나에게 돌아갈 집이 있다면, 그 집에 꼭 들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