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여진 Jul 24. 2019

발자국 방명록

마음 그림자 같은 달의 표면에는 얼마나 많은 그리움의 발자국이 있을까?

발자국 방명록     



한 사람은 하나의 행성과도 같다. 각자의 크기도, 모양도, 색깔도 다르다. 항상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공존하는 우리는, 서로에게 따뜻한 자국을 남기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우리의 마음 그림자 같은 달의 표면에는 얼마나 많은 그리움의 발자국이 있을까? 내게 새겨진 다른 사람들의 발자국은 마치 방명록과 같다. 자신이 여기에 들렀음을, 영원하지는 않지만, 그중 일부의 시간을 나와 함께 보냈음을 의미한다.      



나의 행성의 표면에는, 나의 행성의 방명록에는 잊지 못할 발자국들이 있다. 깊게 시간을 공유한 사람이 남긴 발자국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형태가 선명하게 남아있다. 나는 그 사람이 남긴 발자국을 보며 추억을 회상한다. 그리곤 그리움과 황홀함에 빠진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발자국의 크기, 밑창의 무늬, 그 사람이 걷는 보폭의 크기가 보인다. 그런 사소한 것들은 나를 더욱더 아프게 한다. 평생을 함께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끊겨버린 발자국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그 발자국들을 보며 흘린 눈물은 발자국 틈새를 가득 메운다. 나의 행성을 떠나간 사람들이 다시 이곳에 놀러 와서, 이번에는 새로운 발자국을 남겨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깊게 새겨진 발자국은 아마 나를 구성하는 것들일 것이다. 행복 덕분에 만들어진 깊은 발자국 주변은 항상 깨끗하다. 행복한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손상되거나, 왜곡되지 않도록, 오랫동안 꺼내 볼 수 있도록 발자국 주변에 쌓인 먼지를 깨끗하게 닦아낸다. 반면에 견디기 힘들었던 상처로 만들어진 깊은 발자국 주변은 항상 얼룩덜룩 지저분하다. 어떻게든 묻어 두고, 외면하기 위해 이것저것으로 그 틈을 메꾸려 한 흔적이 보인다. 갖가지 색깔로 덧칠한 유화 물감처럼, 상처는 멀리서도 눈에 보인다. 그러한 울퉁불퉁했던 내 상처의 표면은 시간이 지나면 매끈해진다. 마치 점처럼, 겨우 흔적만 찾아볼 수 있다.      


심심하고 할 일이 없을 때, 나는 나의 행성 위를 걸어본다. 걷다 보면 스쳐 지나간 사람들의 아주 미세한 발자국도 보인다. 나를 거쳐 간 사람들의, 내가 겪었던 일들의 흔적을 보다 보면 작은 위로와 힘을 얻는다. 힘든 것도 결국은 지나가기 마련이고, 많은 사람이 나를 진심으로 응원해주고 있다는 것. 뒤처진 것 같은 나지만,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는 걸 새겨진 많은 발자국을 보며 느낀다.     





<애월에서>, 이대흠 시 일부 인용

작가의 이전글 시계에 관한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