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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진 Jul 24. 2019

X&I

사랑에 관하여

X&I     



X, 타인과의 사랑

나는 많은, 다양한 사랑을 해보지 않아 미숙하다. 내가 사랑을 주고받는 대상은 부모님과 선생님 그리고 친구들 정도로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어버이날, 스승의 날, 친구들의 생일 같은 특별한 날이 아니면 그 사람들에게 사랑과 애정을 잘 표현하지도 못한다. 인류애 같은 넓은 범위의 사랑이 아닌 나와 가까운 사람들과의 사랑만 사랑으로 치부하다 보니 나의 사랑의 범위는 작디작다. 남자 친구도 딱 한 번밖에 사귀어보지 않은 나에게 사랑은 너무 어려운 존재이다. 그런데도, 나는 나만의 사랑을 정의할 수 있다. 정답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나의 자잘한 경험들, 내가 보고 들은 수많은 사랑 영화와 노래들은 나만의 자그마한 사랑 영역을 구축시켰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각자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을 교집합 시켜 서로의 삶에 서로를 새겨 넣는 것이다. 우리는 한 공간에 있지만, 서로가 어떤 순간들을 보내왔는지, 또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는 모른다. 누군가와 가까워진다는 건, 다른 형태의 시간의 주파수를 맞춰 같이 공유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시간을 함께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가 함께하지 않았던 순간들을 말하며 그 공백들을 채운다. 한순간도 쉬지 않고 쌓여가는 추억들을 돌아보면, 보석처럼 반짝이는 순간들이 알알이 박혀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런 작은 순간 하나하나들을 보며 나는 진한 사랑을 느낀다. 그리고 그 예쁜 사랑들은 내가 힘들 때 나를 끌어올려 주는 힘이 되어준다. 나는 이러한 사랑이 알파벳 ‘X’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두 개의 직선은 한 점에서 만나 X의 모양을 이룬다. 이때 두 직선은 모두 ‘접점’이라는 동일한 점을 소유하게 된다. 평생의 시간을 교차하며 공유할 수는 없겠지만, 교차함을 피하지 않고 잠시 멈춰 시간을 공유하는 그 모습이 마치 알파벳 ‘X’의 모양 같다. 신기하게도 외국에서 ‘XO’는 ‘Hugs and Kisses(포옹과 입맞춤)’라는 뜻으로 사랑하는 친구나 연인 사이에서 자주 쓰인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알파벳 ‘X’는 사랑의 의미인가 보다.      


이병률의 여행 산문집,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중 “삿포로에 갈까요? 이 말은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입니다.”라는 말은 최근 사랑 고백에 많이 쓰인다고 한다. 가슴을 몽글몽글하게 만드는 이 말을 듣고 나는 어떤 말을 들었을 때 설레고, 사랑받고 있다는 걸 느끼는지 생각해보았다. 나에게 “사랑해”를 대체하는 말은 “같이 맛있는 밥 먹자.”인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는 것도 좋고, ‘맛있는 밥’을 먹는 것도 좋다. 이 두 가지를 함께 한다면 더더욱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리고 특히 밥을 먹을 때 나누는 자연스러운 대화가 참 좋다. 단순히 취미나 관심사가 비슷한 것보다도, 아무런 화제 없이 이러한 일상적인 것들을 함께 나누는 게 더 좋다. 어떠한 대화를 나눠도, 말을 하지 않아 긴 정적이 흐를 때도 답답하지 않고 안 어색한 분위기가 나는 좋다.   


   

I, 나와의 사랑

사랑 중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나에 대한 사랑’이다. 나에 대한 사랑은 알파벳 ‘I’와 비슷하다. 알파벳 ‘I’의 모양은 그저 한 직선처럼 보일 수 있지만, 다른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무수히 많은 직선이 겹쳐 한 직선을 이룬다고 볼 수도 있다. 이처럼 한 명의 사람에게는 수많은 모습과 자아가 있고, 이러한 수많은 모습과 자아들은 결국 ‘나 자신’을 뜻하는 영어 단어 ‘I’처럼 ‘한 사람’을 만든다. 더욱 견고한 ‘I’를 만들기 위해선, 다양한 자극을 통해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오는 새로운 내 모습을 발견하고 이를 인정해야 한다. 이 과정에선 ‘다름’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다름’이 있기 때문에 각각의 개성과 희소성이 존재하고, 이는 결국 각자의 가치를 상승시킨다. 따라서 나의 가치를 존중받기 위해서는 남의 다름을 배척하지 않고 인정해야 한다. 나를 온전히 사랑한다는 건 결국 사랑의 범위가 타인에게까지 확장된다는 의미이다. 책 ‘멀고도 가까운’에서 작가 리베카 솔닛은 “사랑은 끊임없이 뭔가를 덧붙여가고, 가장 궁극적인 사랑은 모든 경계를 지워버려 확장된다”라고 했다. 이렇듯 사랑의 파급력은 엄청나다.      



사랑과 꿈의 상관성

사랑과 꿈은 여러모로 비슷하다. 두 단어의 거리는 매우 가까운 듯하다. 사랑은 꿈을 이루는 데에 있어서 필수 자양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때론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꿈을 공유하기도 한다. 이렇듯 사랑과 꿈은 상호 보완적 관계이다. 이러한 상관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영화가 ‘라라 랜드’라고 생각한다.      


영화 ‘라라 랜드’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정확한 이유는 잘 몰랐지만, 왠지 무척 서글펐다. 그 이유를 찾으려 몇 번 더 영화를 다시 보았지만, 그럴수록 더욱 헷갈렸다. 이렇게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던 이유는, 보통의 사랑 영화처럼 ‘사랑’만을 주제로 한 영화가 아니라 ‘꿈’이라는 주제가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큰 두 가지 주제에 대해 느낀 점들은 많았지만, 부족한 내 글솜씨로 이를 풀어내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영화평론가들의 감상평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한 영화평론가는 꿈과 사랑은 다른 듯 비슷하다고 했다. 인용하자면 “예전 면접에서 불합격했던 사람끼리 밥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누군가가 “이 기분은 꼭 이별한 것 같아요.”라고 했고, 말없이 모두 동의했다. 사랑과 꿈은 있다가 없어지면 마음이 아리는 건 똑같다. 마치 내 삶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 느낌처럼. 우리는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또 무던히 노력하고, 새로운 꿈과 새로운 사랑으로 채워간다. 다른 단어, 다른 뜻이지만 느낌으로는 일맥상통한다. 너의 꿈, 나의 꿈이 우리의 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이유는 후반부의 클럽 간판 때문이다. 각자의 방식대로 꿈꿔온 미래가 어느새 ‘우리가 바라던 미래’라는 걸 확실히 보여준다. 사랑으로 울고 웃던 그 힘든 시간을 발판 삼아 미아와 세바스찬은 결국 각자의 꿈을 현실화시켰다.”     


마지막에 미아와 세바스찬이 다시 만났을 때 서로에게 웃어줄 수 있었던 것은 ‘연인 이상의 사이’였기 때문이다. 둘은 연인 관계이자, 각자의 꿈을 향해 가는 데 의지할 수 있는 친구 같은 동반자였다. 그렇기에 서로의 꿈을 진심으로 응원해주고, 서로의 꿈이 현실이 된 후, 고생한 서로에게 환하게 웃어줄 수 있었다.    

   

이렇듯 사랑은 우리 주변에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사랑의 범위는 각자 정의하기 나름이기에 무척이나 변화무쌍하다. 사랑은 너무 자연스럽게 우리 일상 속에 자리 잡고 있어서 의식하지 않으면 사랑을 인식할 수 없다. 따라서 가끔은 의식적으로 내가 주고 있는, 또한 받는 사랑에 대해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내가 나를 정말로 온전히 사랑하고 있는지, 그 사랑을 올바른 방법으로 남들에게 확장하고 있는지, 부모님, 내 주변 사람들이 주는 헌신적 사랑들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닌지, 내가 받는 사랑에 대한 고마움을 여실히 표현하고 있는지’에 대해 곰곰이 반성해봐야 한다. 모두가 각자의 사랑을 소중히 여긴다면 나누고 베푸는 그 사랑 덕분에 분명 세상은 따뜻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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