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여행을 가면 아침 일찍 일어나 미리 계획한 코스를 따라 여행하는 걸 즐겼다. 하나라도 더 경험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여행지에 가면 숙소에서 체크아웃 시간을 꽉 채워서 나가고 여행지 한두 곳 정도를 둘러보고 돌아온다. 특별한 걸 하지 않아도 낯선 곳에서 쉬는 게 곧 여행이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강릉에 놀러오는 지인들도 대부분 여행 코스를 계획하지 않고 온다. 맛집 정보 정도를 찾아오는 게 전부다.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주로 동네 산책을 하고 바다를 보고 집으로 돌아간다. 빡빡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고자 떠나는 게 여행인데 여행지에서도 너무 계획 있게 여행하지 않아도 좋은 것 같다. 물론 해외로 멀리 간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현지인 입장에서 내가 추천하는(좋아하는) 여행 코스를 한번 만들어봤다.
허균, 허난설헌 생가 & 정은숙초당순두부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에서 열린 일러스트 컬러링 체험.
허균, 허난설헌 생가는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허균, 여류 시인 허난설헌 남매의 생가다. 멋스런 한옥으로 지은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이 있는데 이곳을 꼭 한번 들러보길 추천한다. 재능은 출중했지만, 시대를 앞서 태어나 안타까운 두 남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매 주말이면 각종 체험 행사가 열리는데 요즘은 코로나로 쉬었다 열리기를 반복한다.
인생 첫 녹차.
기념관 맞은편으로 전통차 체험관이 있다. 현금 1,000원을 내면 녹차 한잔을 즐길 수 있다. 전통 한옥에서 마시는 녹차 한잔이 분위기 있으니 꼭 현금을 준비해서 한번 맛보기를 추천한다.
허균, 허난설헌 생가는 크지 않지만 아담하게 둘러보기 좋다. 당시 생활상과 가옥형태 등을 엿볼 수 있다. 생가를 나서면 눈앞에 멋진 솔숲이 펼쳐진다. 이 솔숲을 따라 걷다 보면 경포호수와 이어진다. 경포호수 옆으로도 솔숲이 넓게 펼쳐져 있어서 이 길을 따라 산책하기에 좋다. 4월이면 벗꽃이 흐드러지게 펴서 벗꽃 성지기도 하다.
생가와 도로를 마주하고 정은숙초당순두부가 있는데, 이곳 사장님이 어렸을 때 지금의 허균, 허난설헌 생가터에 살았다고 한다. 후에 시에서 이곳을 기념공원으로 조성했다. 지금도 이곳에 가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오른다고 한다. 순두부 한 그릇을 하며 사장님의 어린 시절 추억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떨까.
허난설헌 생가 솔숲과 경포호수 공원 산책길. 노을이 질 때쯤 이곳에 나가서 노을 사냥을 했다.
헌화로 & 탑스텐호텔 스카이라운지
헌화로는 강릉에서 차로 40분 정도 달리면 만날 수 있다. 바다와 가장 가까운 도로로 알려졌으며, 드라마 <시그널>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꼬불꼬불 도로를 옆에 두고 드라이브를 할 수 있다.(파도가 많이 칠 때는 도로로 바닷물이 넘치니 조심해야 한다) 최근에는 바다부채길이 조성되어 바다를 보며 트레킹을 할 수 있다. 헌화로를 지나면 언덕에 탑스텐호텔이 있는데 지금은 코로나로 뷔페가 조심스럽긴 하지만, 바다 뷰를 보며 뷔페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12층 스카이라운지에 가면 강릉에서 가장 멋진 바다뷰를 볼 수 있다. 커피값이 비싸긴 하지만 이곳에서 동해 바다를 보며 마시는 커피야 말로 여행의 꿀맛 아닐까.
그냥 이런 게 힐링 아닐까.
강릉에서 커피가 제일 맛있는 곳
커피도시로 유명한 강릉에는 300개가 넘는 카페들이 있다. 다 가본 건 아니지만 다녀본 곳 중에 가장 커피 맛이 좋은 곳은 이곳이다. 사천해변 근처에 있는 '월성회관'. 마을회관을 리모델링해 만든 듯한 이곳은 빈티지하면서도 세련된 감각의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곳이다. 야외 자리는 캠핑 분위기가 물씬 나게 꾸며 놓았다. 2층은 숙박도 할 수 있다. 이곳에서 라떼를 마시면 진한 에스프레소 맛이 우유와 부드럽게 섞이며 '아, 이맛이야'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물론 커피 맛에 대한 기호는 사람마다 다르다) 놀러온 지인들에게 추천해줬는데 평이 좋았다. 인테리어 감각도 좋으니 꼭 한번 들러보시길.
겉은 허름해보여도 내부 인테리어는 센스가 넘친다.
아쉽지만 이곳은 노키즈존이다. 카페 곳곳에 고양이들이 있는데,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고양이 한 마리가 죽는 사건이 있은 후로 노키즈존으로 바뀌었다. 지인들이 놀러오면 종종 들렀는데 이제는 다 같이 갈 수 없어 아쉽다. 아기 어린이집 보내면 한잔하러 가야겠다.
사근진해변
강릉은 바닷가 근처에 넓은 해송숲이 있다. 해송은 바닷바람의 염분을 흡수하는 역할을 하고 멋진 산책 코스가 되기도 한다. 강릉의 바다는 주로 이 해송숲을 지나야 바다를 볼 수 있지만, 사근진해변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차에서 바로 바다를 볼 수 있는 해변이다. 차 의자를 한껏 뒤로 젖히고 누워서 보닛 위에 발을 올리고 바다를 보면 이보다 좋은 힐링이 없다. 드립커피나 커피를 보온병에 담아 커피 한잔을 하면서 바다를 보면....이하 생략. 여행의 꽃이다.
우리 부부는 서울 살 때 이곳을 자주 찾았다. 커피를 좋아하는 남편은 드립커피 세트를 준비해와서 이곳에서 커피를 내리고 같이 마시며 바다를 즐겼다. 피크닉 세트와 함께 드립 세트를 대여해주는 서비스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강릉에서 이렇게 대여해주는 게 유행이다. 피크닉 세트를 대여해 이곳에서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멋진 방법.
강릉에서 차로 1시간만 달리면 속초와 고성에 다녀올 수 있다. 2박 3일 또는 3박 4일로 여유 있게 강릉 여행을 온다면 하루쯤 근교로 떠나보는 것도 좋다.
고성 화진포 해변
동해안을 주로 다녀본 소감으로 바다는 고성 바다가 제일 예쁘다. 고성은 상대적으로 사람 발길이 덜 닿아서 그런지 맑고 깨끗한 느낌이다. 강릉은 해변 모래사장이 넓지 않은 편인데 고성 화진포 해변은 모래사장이 300m 이상은 되는 듯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모래사장을 부지런히 걸어서 만나는 바다는 맑고 투명하다. 그냥 매일 여기서 살고 싶다. 아, 살면 감흥이 떨어지니까 자주 와서 보고 싶은 곳이다.
고성 바우지움조각미술관
바우지움조각미술관 주소지는 고성이지만 속초 끝, 고성 시작 즈음이라고 보면 된다. 치과의사인 남편과 조작가인 아내가 함께 지은 곳이다. 조각의 세계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고성의 자연과 어우러져 분위기가 좋은 곳이다. 미술관을 지나 조금 떨어진 곳에 카페도 있고 전시관이 하나 더 있다. 구석구석 돌아보기에 좋은 곳.
속초 척산족욕공원
아기 분유 먹이면서 족욕하기! 육아의 피곤이 녹는 시간~
온천으로 유명한 속초 척산에 시민들을 위한 무료 족욕공원이 있다. 3월~12월까지 운영하고 1, 2월은 운영하지 않는다. 온천은 추운 날 해야 제맛이다. 두꺼운 패딩을 입고 발을 뜨끈한 물에 담그면 온몸에 피로가 사르르 녹는 듯한 기분이 든다. 아이가 어렸을 때 이곳에 가봤는데, 아이를 바구니 카시트에 눕혀서 분유를 먹이면서 온천에 발을 담궜는데, 육아의 고단함이 다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속초에 살면 매일 갈 것 같은데 막상 속초 시민들보다는 관광객이 더 많이 찾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