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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Jul 23. 2021

주말을 보내며

오랜만에 브런치에 들어왔다. 글을 안 쓰니 브런치에 어떤 글들이 있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내 글을 쓰고 나면 반응이 있나, 남들은 어떤 글을 쓰나 곁눈질이라도 했지만 내 글이 없으니 역시나 잘 안 들어온다.


다른 날 같았으면 힘겨운 주말을 보내고 뻗었겠지만 오늘은 잠이 오질 않아서 글을 써보기로 한다.


아이와 함께 한 휴가


목요일 오후에 속초에 다녀왔다. 아이들은 사랑스럽지만 늘 그런 건 아니다. "빨리 가자. 언제 가? 왜 안 놀아줘? 심심해." 엄마, 아빠는 짐 챙기면서 둘째 챙기고 할 일들이 많은데 첫째는 왜 빨리 안 가냐고 옆에서 투정이 심해진다. "기다려. 갈 거야. 짐을 정리해야 가지." 나긋하게 타이르던 말도 목소리가 높아진다. "계속 떼 부리면 다시 안 올 거야! 한번만 더 떼 부려 봐!" 으름장과 협박에 아이는 그제야 잠잠해진다. 입은 아직 타협을 못했는지 삐죽거리면서.


아이와 한바탕 끝에 속초에서 제일 먼저 찾은 곳은 바다. 아이는 태어나서 네 번째 여름을 맞았다. 첫 해는 갓 태어났으니 당연히 기억 못할 테고, 두번 째 해에는 친정 식구들과 함께 간 바다에서 발만 겨우 담가봤다. 세 번째 해에는 본격적으로 바다에 들어가나 했더니 바다에서 한 시간째 모래놀이만 즐겼다.

네 번째로 맞은 여름. 이제는 '노는 법' 좀 배운 아이는 거센 파도가 와도 놀라지 않고 모래사장에 철퍼덕 주저앉아 파도가 몸을 적시는 걸 즐긴다. 아이의 신나는 웃음에 나도 미소와 함께 마음이 짠해졌다. 지난 여름, 둘째가 태어난 후로 둘째를 챙기면서 일도 하고 몸과 마음이 바빴는데, 그 사이 첫째는 어느새 훌쩍 커 있었다. 그 간극이 갑작스러워 행복하면서도 아쉽고 미안한 복잡한 마음이 스쳐갔다.



나는 아이의 세계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첫째만 있을 때는 미술놀이며 만들기 놀이며 열심히 놀아줬다. 둘째가 태어난 후로는 마음의 여유도 체력도 부족해 아이가 노는 걸 맞장구쳐주는 정도일 때가 많았다. 아이는 주로 아이스크림 팔기나 마트 가기 놀이를 즐겨한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주문하고 마트에 함께 가주고, 박수 쳐 주는 정도로 참여한다. 그마저도 해야 할 집안일이 쌓이면 "그래 그래 이따 놀자~"하면서 집안일이 끝나고 나면 힘들다고 누워있는다..


아이는 나름 기다렸을 텐데 놀아주지 않는 엄마에게 와서 "왜 안 놀아줘~ 심심해~"하면서 짜증을 부리기 시작하면 나는 또 잔소리를 시작한다. "짜증내지 말고 말해. 할 수 있잖아. 짜증내면 좋아? 안 좋아?" 아이는 엄마가 안 놀아주는 게 속상하고, 속상해서 짜증으로 표출하는 것일 텐데 그걸 받아줄 여유가 없을 때가 많다.


저녁을 먹고 또 한 가득 설거지가 쌓여 있는 걸 보고 얼른 해치워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가 혼자 앉아 있는 아이를 보자 마음이 달라졌다. '나에게 지금 중요한 게 무엇일까. 집안일일까. 아이와 눈 마주치며 놀아주는 것일까' 나는 기꺼이 아이 옆에 가서 앉았다. 아이는 레고 블럭을 붙이고 있었는데  속으로 놀랐다. 그냥 쌓기만 할 줄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모양을 대칭으로 쌓고 있었던 것. 아이가 크는 게 대견하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복잡하게 스쳐갔다.


아이가 컸을 때


이제는 나이를 세는 것에 무뎌졌지만 아이 나이를 세면서 내 나이를 종종 생각한다. 아이가 스무살 때 나는 몇 살? 서른 살 때 나는 몇 살? 생각하면 '그때 나는 아이 곁에 있을까?'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따라온다. 나는 아이에게 어떤 엄마로 남을까. 아이에게 '행복한 엄마'로 남았으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한참 부족하다. 행복할 때가 그렇지 않을 때보다 더 많긴 하지만 종종 삶의 짐이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남편이 둘째가 태어난 후 몸이 좋지 않아서 내가 집안일이며 아이들을 챙겨야 할 때가 많다. 가끔 내가 아이 셋을 키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힘들긴 하지만, 내가 임신했을 때 지금의 나보다 남편은 더 헌신적으로 일했기에 기꺼이 할 수 있다. 그나마 나라도 체력이 버틸 수 있어서 그걸로 다행이다.  


결론은 내 기준이 아닌 아이의 세계와 시각에서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한데, 내 기준으로 아이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잔소리하는 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아이기에 서툴고 실수하는 게 당연한데 아이의 안전과 훈육을 핑계로 아이에게 자꾸만 더 잘하라고 재촉하는 건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이렇게 다짐을 해도 나는 또 아이의 떼 쓰는 모습에 마음의 한계선이 무너지고 화내고 잔소리하겠지만, 그래도 이런 다짐이라도 있어야 아이를 더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완벽하진 않더라도, 어제보다는 조금 더 나은 '엄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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