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지는 좋았는데... 좋았는데...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필자는 전시를 '어떻게 보여줄까'에 대한 부분에 집중한다는 점을 밝힙니다. 물론 콘텐츠와 감상도 중요하지만 전시 방법도 그만큼 중요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감상평은 타 블로그 글에서 충분히 볼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다소 많이 비판적인 후기이며, 그래도 비관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말투도 바뀝니다. 스타트.
어떤 전시를 처음 접할 때 우리는 포스터를 가장 먼저 보게 된다. 그리고, 개인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겠지만, 한 번쯤은 전시 설명도 읽어 볼 것이다. 거기에 해당 전시를 어떤 관점으로 관람해야 하는지 안내되어있기 때문에 (물론 설명서 정도의 지시문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느낌은 준다) 포스터만 보고 무턱대고 전시를 관람하는 것보다 잠시나마 시간을 들여서 그 글을 한 번은 읽고 가는 것이 전시의 이해를 도와준다.
소마미술관에서 이 부분에서 첫 실망을 하였다. 조금 가볍게 표현하자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들었다고 할까나. 그 이유는 전시 설명을 전시실 입장하기 직전에 처음 접하게 되기 때문이다. 미술관에 도착하여서 받게 되는 팸플릿에 적힌 글과 가이드온이라는 어플을 통한 설명 외에는 전시에 관한 글을 보지 못하였다. 심지어 공식 홈페이지에도 적혀있지 않다! 물론 검색을 덜 했을 수 있지만 홈페이지만큼은 바로바로 나와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MMCA(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 사이트에 어떤 전시인지 알 수 있게 설명이 나와있기에, 비교가 되는 순간이었다. 소마미술관에서 첫 번째로 아쉬웠던 부분이다.
먼저 전시실에 관한 이야기.
총 5개의 전시실이 있다. 실 4개는 2층, 1개는 1층에. (순서는 2층 먼저 돌고 1층으로 내려가는 방식이다.) 마지막 2개의 전시실의 크기는 적당하다고 판단되었으나, 1~3 전시실은 작품 수에 비해 공간이 다소 좁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마치 더 많은 작품을 전시하고 싶었지만 공간이 부족하여 더 못한 듯한 공간의 뉘앙스를 풍겼다.
처음 몇 전시실에는 가벽이 한 개씩, 나중에는 두 개씩 세워져 있다. 직사각형 전시실의 벽 중앙부터 사선으로 튀어나와있는 형태이며 바닥에는 매우 친절하게도 관람 동선의 화살표가 붙어있다. 작품의 수를 엄청나게 줄이거나 강제로 방을 넓히지 않는 이상 관람객의 동선 충돌은 불가피할 정도로 공간이 작았기에, 화살표로 이를 정리해주면서 다음 전시실로까지 자연스러운 안내를 하는 것은 칭찬할만하다. 나름의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 이 부분은 잠시 후에 설명하겠다. 그래도 좁은 공간을 극복하려는 생각은 좋았다.
1 전시실을 지나 2 전시실로 들어갔는데, 순간 1 전시실에 온 줄 알았다. 비슷한 크기, 같은 공간 구성. 순간 흠칫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설마 5 전시실까지 똑같은 방식으로 가벽 한 두 개 세운 공간 구성이 계속 반복되진 않겠지?' 그리고 그 의문은 현실이 되었다. 목재 틀과 합판(mdf 추정)으로된 가벽, 동선도 크게 다르지 않은 직사각 공간의 반복이다. 그나마 중간에 중정과 쉬는 공간이 있었기에 지루함을 조금 달래준다. 그래도 굳이 같은 가벽이어도 다 같은 사선이 아니라 조금은 다른 방법, 예를 들면 사선이 아니라 수직으로 돌출되거나 큰 하나가 아닌 작은 두 개의 벽으로 쪼개는 방법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사실 전시실마다 mdf 판에 칠해져 있는 색이 달랐는데, 공간의 형태와 동선의 지루함에 이 작은 변화는 묻혔다. 동선과 전시디자인의 지루함은 두 번째로 아쉬웠던 부분이다.
이제는 전체적인 전시 공간에서 개별 전시실로 들어와 보자. 이전에 분명히 해야 할 것은 필자는 큐레이터도 아니고 전시를 기획한 사람도 아닌 철저히 개인 관람객의 입장에서 바라본 전시에 대한 생각임을 알린다. 개인이 모르는 미술관의 속사정이 있을 수 있으니 어느 정도는 스스로 판단하길.
이번 전시는 - 이제 와서 어떤 전시인지 알려주는 본 글의 괴상한 순서는 이해 바란다! - 1920년대 이후 서양 드로잉이 한국 미술사에 전개된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전시명인 ‘소화’(素畵)는 드로잉의 다른 이름으로, 작가의 개성과 정체성을 가장 진솔하게 드러내는 매체임을 표현한다. (안내 책자에서 발췌)
이 전시의 콘셉트, 내용을 한 번 되새겨보고 아래를 읽어보자.
너무 많은 작품의 수. 아마 여럿이 느낄만한 부분이다. 나는 좁은 공간에 여러 작품을 전시한다고 생각하면 두 가지가 생각난다. 1) 각각의 작품의 중요도가 전체의 흐름의 중요도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에 작품 하나하나 개별적인, 세세한 관람이 필요 없는 경우와 2) 그냥 전시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주어진 공간이 좁을 때, 두 가지. 개인적으로 이번 전시의 의도는 1)이라 믿지만 결과적으로는 2)가 되어버린 느낌이 매우 강하게 든다.
문제점이 나왔으니 원인 분석을 해보자. 왜 그렇게 느꼈을까? 바로 작품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짐과 동시에 전시의 집중도도 떨어지게 되는 장치들 때문이다. 하나하나 짚어보자.
앞에서 말한 화살표. 아니 이게 왜 문제가 돼? 앞에서는 잘했다며? 친절한 것은 좋으나 과도한 친절은 방해가 될 수 있다. 처음에는 화살표가 고마웠지만 어느 순간부터 화살표를 먼저 찾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작품을 보러 온 것이지, 화살표를 찾으려고 온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보통 이런 동선 안내는 작품들이 특정한 순서로 관람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을 때 쓰인다. 하지만 전시실끼리의 순서는 시대순이라 하여도 전시실 내부의 작품 순서는 거의 랜덤 배치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일단 많은 작품이 연도미상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들이 시간 순으로 배치되었다고 할 수도 없다. 즉, 흐름에 따른 이야기가 없다.
동선 안내는 작품의 감상 순서뿐만 아니라 전시실의 출구와 입구를 규정짓는 역할도 한다. 이 경우는 보통 전시실과 전시실 사이에 쓰이고, 각 전시실이 넓거나 복잡해서 출구와 입구 안내의 필요성이 있을 때 사용된다. 하지만 소마 1관의 전시실들은 크기가 크지 않아 각 전시실 내부에서는 안내의 필요가 없다. 가벽 하나 때문에 동선이 복잡해지기에도 너무나도 단순한 구조이다. 전시실끼리의 순서 안내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각 실 내부는 작기 때문에 굳이 그 안에서의 안내 없어도 출입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결국 실속 없는 매우 친절한 가이드가 쫄래쫄래 따라다니는 느낌이었다.
감상을 방해하는 다른 요소는 바로 작품의 전시 상태이다. 위의 1)처럼 전시의 목적이 전체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전체적인 작품의 전시 방법이나 상태가 통일되고 전시실마다 공간 구성과 배치에 차별점을 두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생각된다. 이 번의 경우 시대의 흐름이 하나의 큰 주제 안에 담겨 있으므로 과한 차별점들은 그 큰 주제에서 벗어난다는 인상을 주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즉 전체적으로 동일한 콘셉트의 각 실마다 디테일한 부분에서 차별점을 보여주는 방법이 베스트이다.
하지만 이 전시는, 전시실이 통일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각각의 작품들은 - 과하게 말하자면 - 도떼기시장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한 마디로 정신이 없었다. 액자는 제각각이었다. 어떤 작품은 아주 심플한 액자 속에 있고 어떤 작품은 아주 화려하고 번쩍이는 액자에 들어 있다. 통일성이 없었다. 애매한 것이, 모두 소마미술관 소장품이 아닌 작가 소장품부터 개인 소장 작품도 있었기에 임의로 액자를 변형, 통일할 수는 없었을 수 있다. 어찌 못하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전시의 집중을 방해한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서로 "나 여기 있어!"라고 외치는 액자들을 멀찍이 떨어뜨려 전시를 했다면 괜찮을 텐데, 서로 너무 붙어있다 보니 하나의 화음을 내어야 하는 전시실이 마치 모든 지방방송을 틀어놓은 느낌이 난다. 즉, 하나의 흐름을 보아야 하는 전시에서 흐름보다는 흐름 속에 있는 물방울 하나하나가 더 잘 보이는 전시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디테일 변태인 필자가 본 디테일의 아쉬움이다.
가벽이 목재 프레임 위에 합판 위에 페인트칠을 한 것처럼 보였는데, 이 합판이 프레임 중간에만 있어서 목재의 위아래 부분이 그대로 드러난다. 위아래의 시야를 뚫음으로써 좁은 공간을 그나마 좀 트이게 해 준 부분은 칭찬할만한 점이다. 하지만 이 목재에 그대로 접합 부위를 표시 해 놓은 자국도 보이고, 전체적으로 마감이 조금 아쉬운 모습이 있었다. 아, 이런 부분도 전시의 일환으로 '드로잉'이라 하면 할 말이 없다.
이와 더불어 전시 상태에 대해서 한 마디만 더 하자면, 가로로 쭉 가지런히 전시되어있던 작품들이 너무 순간에는 위아래로 두 겹으로도 전시가 된다. 의도된 것이라기보단 아마 공간이 작아서 그랬지 않았나 싶다. 덕분에 작품 이름을 보고도 어떤 작품이 어떤 작품인지 헷갈리기도 하였다.
충분히 깠으니 좋은 점도 정리해보자. 사람이 잘한 것보다 허점이 더 눈에 많이 들어오는 것은 사실이나, 좋은 것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그랬다. 누군가 그랬다. 아무튼.
위에서 언급된 친절함. 부작용이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친절한 것을 깔 수는 없겠다. 누가 끙끙 힘들게 짐을 나르시는 노인분의 짐을 잠시 날라주다가 실수로 발을 헛디뎌서 떨어뜨렸다고 그 선한 행동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지 않은가. 비유가 조금 이상하지만 하고자 하는 얘기는 전달되었기를 바란다.
또, 전체적인 전시실의 통일성도 마냥 깔 수만은 없다. 그 통일됨 안에서 작은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 베스트이지만, 중구난방 A를 얘기했다가 B를 얘기하고 싶어 하는, 이리저리 튀는 전시실을 보는 것보다는 천 배 만 배 나을 것이다. 모든 전시실이 연결되어있지 않다 보니 너무 다르게 공간 구성을 짜면 아예 다른 전시에 온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물론 필자의 관점에선 전시 디자인 예산 부족으로 보인다. (뇌피셜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실 전시 기획 의도와 전시 내용은 꽤나 좋았다. 한국 미술사를 잘 모르지만, 이렇게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그것도 다 완성된 작품이 아닌 드로잉을 보는 것도 꽤나 참신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완성작품도 있다.) 드로잉에서 보이는 작가들의 특색, 책자에 적혀 있는 대로는 개성과 특성이 확실하다.
결국 전시의 두 가지 목적은, 1] 1920년대 이후 서양 드로잉이 한국 미술사에 전개된 과정을 보여줌, 2] 드로잉에서 작가의 개성과 정체성을 가장 진솔하게 드러나는 것을 보여줌이다. 여기서 1]은 전시의 구성과 디자인이 중요하다 생각하는데, 이 부분에서는 아쉬웠지만, 2]에서는 작품 자체의 선정이 좋아 잘 전달되었다고 생각한다.
+ 추가적으로 드는 생각인데, 1]의 경우는 내가 한국 미술사를 전시 기획 의도가 보일 정도로는 잘 알지 못하여서 그런 것이 아닐까- 반성해본다.
+ 그리고 2]가 달성된 이유 중 하나가 1]을 방해하던 중구난방이던 액자가 한 몫했을까, 고민해본다. 사실 담백한 드로잉에 담백한 액자가, 화려한 드로잉에 화려한 액자가 있던 것은 아니고 그냥 가져다 놓은 것이 더 맞긴 하지만 그래도 영향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지 않을까. 그래도 개성 넘치시는 액자 없이도 충분히 달성 가능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