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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an Aug 29. 2019

베르나르 뷔페 展

그냥 모두가 봤으면 좋겠다.

* 본 전시는 내부 사진 촬영이 불가능한 전시입니다.



감성이 빠진 상태로 전시를 보려 하였으나


이번 전시는 교육적인 목표도 있지만 감상이 주된 목표라고 느끼는 전시였다. 나는 전시는 감상하지만 글에는 최대한 분석적인, 전시의 구성과 디자인에 초점을 맞춰서 쓰려고 노력한다. 그렇기에 전시를 관람할 때엔 어느 정도는 비평가의 마음가짐으로 본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그러기 어려웠다. 왜 그런지는 관람을 마치고 곰곰이 생각한 후에야 조금 알게 되었다. 우선 이 전시에 대하여 간략히 얘기를 하는 것이 순서가 맞으리라 생각하니, 작가 소개로 본격적으로 글을 시작하겠다.



뷔페는 먹는 뷔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뷔페 하면 우리는 무제한으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뷔페를 떠올린다. 나도 그랬다. 베르나르 뷔페를 처음 들었을 땐 그가 얼마나 대단한 예술가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니, 그의 이름조차 처음 들어봤었다! 베르나르 하면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떠올릴 뿐이었다. 아마 대다수가 그러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일까?


그것은 그가 별 볼 일 없는 화가여서가 아니다. 한창 잘 나갈 때, 1950년대의 그는 동시대의 피카소보다 훨씬 잘 나가는 화가였다. 그가 전시회를 열면 그것은 전시회가 아니라 폭동이라고 표현될 만큼 그 마을, 도시가 마비될 정도로 사람이 많이 왔으니, 얼마나 핫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런 그가 미술사에서 자취를 감춘 이유는 조금 사정이 복잡하기도 하다. 도슨트 정우철 님의 말에 따르면, 그가 너무 잘나기도 했고 시대 타이밍에 맞지 않아 희생을 당했다는 표현이 맞겠다.

피카소가 유일하게 본 뷔페의 작품. 이 작품을 한참 보다가 나가고, 다시는 뷔페의 전시에 가지 않았다고 한다.
프랑스는 세계 2차 대전을 겪으면서 자국 예술가들이 프랑스를 떠나게 되었다. 프랑스 시민권을 얻어서 활동하고 있던 샤갈이나 장 엘리옹 등 잘 나가던 프랑스의 화가들이 터전을 미국으로 옮기면서 프랑스 미술계는 침체기를 맞이했다. 그런 프랑스 예술의 부흥을 위해 추상미술을 새로운 트렌드로 밀어붙이며 기존의 구상미술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선포하였다. 나라에서, 그리고 비평가들이 나서서 이런 트렌드를 지지하니 국민들도 이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에 의해 구상회화를 하던 뷔페는 뒤쳐졌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하였다. 외에도, 처음 그가 미술계의 주목을 받을 때와 돈을 벌고 나니 그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평가들도 있었다. 이런 복합적인 이유로 그는 예술계에서 외면받기 시작하고 점점 잊혀져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프랑스에서는 그를 재평가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그를 무시하던 바로 그 나라에서 최근에 회고전을 여는 등, 그를 다시 수면 위로 올려놓으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가 어릴적 그린 그림은, 물감이 없어서 엄청 얇게 채색을 하였다. 엄청나게 긁은 자국 또한 특징적이다.



어떤 전시인가


 전시는 감성적인 뒤샹전이라 느꼈다. 둘 다 어느 정도는 교육적인, 작가 공부를 하게되는 전시였다. 하지만 둘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으니, 뒤샹전은 작가에 대해 배우는 전시였다면 뷔페 전은 작가를 이해하게 되는 전시이다. 물론 도슨트의 차이도 있었겠지만 작가의 인생 자체의 굴곡이 다르고, 전시 구성도 차이가 났기에 이렇게 느꼈다 생각한다. 작가의 인생 굴곡이 자신의 예술에 대한 태도를 반영하기 때문에 두 전시에서 전달하려는 목적에서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과 내가 살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것은 매우 다르다. (어느 한쪽이 더 대단한 것이 아니라 그저 차이가 있을 뿐이다. 오해말자!)


이해와 감상


 뒤샹 전과 다시 비교하자면, 뒤샹전은 시기별, 주제별로 입구 앞에 간략한 설명 글이 있었다. 비평의 글이나 작가의 말이 아닌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는 정보전달 글, 많은 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글. 하지만 뷔페 전에서 찾아볼 수 있는 글이라고는 그의 아내 애나벨의 글과 작가의 말이 전부였다. 이렇게 전시장 내에 배경 설명이 적으면 작품 자체를 더 깊게 감상 할 수 있게 된다. 재밌는 점은, 뷔페의 연대기적 기록이 전시 중간쯤에 있는데 이걸 보면 그전에 봤던 작품들이 머릿속에 시기별로 맞춰진다. 그만큼 그의 스타일이나 표현이 자신의 삶을 반영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직접 보게되면 알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전시는 작가를 전시해놓았다고 봐도 된다. 그의 일생의 굴곡이 그림에 녹아있고, 초창기 그림부터 사망 직전의 그림 모두 전시가 되어있기 때문에 한 사람의 인생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뒤샹전은 배움과 조사를 통해 그를 알게 된다면, 뷔페는 오직 그림 감상만으로 그를 알게 된다. 처음에 이야기한 것처럼 나는 감상의 자세는 조금 내려놓고 전시를 보려고 하는데, 이번 전시만큼은 그러기 힘들었던 이유가 이 때문이다. 감상을 내려놓고 본다면 전시를 보았다고 할 수 없었다.


부인 애나벨 뷔페와 남편 베르나르 뷔페. 부인은 지금으로 따지면 연예인이었다. 미모도 프랑스에서 손꼽히는 미모였다고. 베르나르도 잘생겼는데, 완전 사기 커플이다!


 참, 도슨트의 설명도 매우 강력히 추천한다. 지루하지 않고 이해도 잘 되게 설명을 해주시기 때문에 아무런 지식 없이 가도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뷔페에 대한 정보가 타 작가에 비해 아직까지는 조금 제한적이기에 작가에 대해 스스로 찾아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여기서 도슨트는 여기저기 흩뿌려진 많은 재료를 잘 정리해서 맛있게 내 앞에 가져다주는 셰프와도 같다! 그러니 꼭 이 맛있는 설명을 먹어보길 바란다.



배려, 배려!


 무엇보다 이 전시는 관람객을 배려한 전시라는 점에서 특별히 더 좋았다. 이를 느끼게 하는 부분이 몇 있었다.

 가장 먼저, 모든 작품은 다 원화였다. 총 92점의 작품이 전시되어있는데, 아주 소수의 프린트된 사진 외에는 모두 원화다. 판화가 하나도 없다! 이렇게 원화로만, 심지어 뷔페의 작품을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을 기회는 이번뿐이라 생각된다. 모든 작품에 대한 허가를 받는데만 3년이 걸렸다니, 이 전시가 있기까지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원화는 판화나 사진으로는 볼 수 없는, 그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아마 판화나 사진이 많았더라면 전시를 보고 느꼈던 그 감동을 느끼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관람객에게 최대한으로 전달해주기 위하여 배려한 모습에 감사하다!


초기와는 다르게, 돈을 번 후에는 다양한 색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또 다른 포인트는, 원화를 가져온 것과 더불어, 유리를 사용하지 않은 점이다. 판화의 경우에는 유리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원화는 되도록이면 유리를 사용하여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한다. 하지만 유리를 사용하게 된다면 관객과 작품 사이에 하나의 벽이 생기게 되어 감상에 방해가 되는 경우가 있다. 유리에 자신이 비치기도 하고, 작품의 붓터치가 눈에 잘 안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이에 반해 본 전시는 유리 없이, 직접 그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점이 배려심 있는 전시라 생각된다. 전시실은 공간이 매우 넓은 편도 아니어서 동선을 고려한다면 작품과 관람객 사이의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다. 손을 뻗으면 작품을 만질 수 있는 거리인데도 유리 설치를 하지 않은 것은, 관람객에게 오롯이 작품 그 자체를, 작가를 전달하기 위함이다.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고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

 사실 현재 시점의 가이드라인은 이전보다 작품에서 더 멀어진 것이라 한다. 종종 어떤 생각이 없으신 분들이 진짜로 작품을 만지는 경우가 있다고. 그래서 기존보다 작품과 관람객의 거리를 멀리하고, 가이드라인 안쪽에 항시 스탭이 지켜보고 있다. 유리 하나만 설치했어도 이런 번거로운 일을 겪지 않았을 수 있는데, 관람객으로서는 참 감사한 전시이다.

 개인적인 감상평을 넣자면, 작가가 자살한 해인 1999년의 작품을 보면 그가 병 때문에 시달린 것이 붓 터치에서도 보여서 참 슬펐다. 힘 있고 직선적이던 그의 선들이 조금씩 뭉개지는 것이 참 안타까웠다. 이런 감정은 아마 판화나 유리 뒤에 숨은 작품에서는 느끼지 못했으리라 확신한다.


보르고뉴의 폭풍. 그가 죽기로 결심했음을 보여준다. 그가 사랑했던 어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보르고뉴 해변의 그림에 처음으로 폭풍이 나타난다. 그리고 자신을 대변하는 침몰하는 배까지.


공간에 대해서는


 나는 건축학도로서 전시를 관람하면서 작품도 보지만 전시 공간도 함께 본다. 그리고 이런 부분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마 앞 글, 소마 미술관에서 전시에 대한 글을 보면 얼마나 공간 쪽으로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딱히 쓸 이야기가 많지는 않다. 뭐, 벽의 색 정도? 벽들은 여러 가지 색으로 칠해져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화려했다면 화려했지만 작품 감상에 있어서 크게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보통의 벽은 흰색 혹은 무채색으로 마감하는데, 만약 그랬더라면 작품을 더 깊게 감상할 수는 있어도 92점의 작품을 모두 보는 데에는 조금 지루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벽의 색을 조금씩 바꿔주어서 각 공간을 늘 새롭게 만들어주는 점은 좋았다. 하지만 아직까지 각 색의 쓰임의 이유는 아리송하다.

 공간에 대해서 쓸 내용이 별로 없다고 하여서 완벽한 전시는 아니다! 그저 공간보다는 미술관의 배려와 작품이 너무 눈에 들어오기에 공간이 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을 뿐이다.


죽기 직전 남은 힘을 짜내어 그린 연작, La mort 중 하나. 평생 그의 곁에 있던 죽음이라는 소재에서 처음으로 심장이나 장기 등 생명의 징조가 보였다.


그러니, 이 글을 보게 된다면 부탁컨대 꼭 이 전시를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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