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개관 50주년 기념전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전시는 항상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전시 작품 자체의 선정도 좋지만, 매번 바뀌는 전시 공간은 항상 새로운 느낌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가벽의 위치나 높이, 재질, 공간의 구성과 작품의 배치 등 아주 많은 것이 바뀐다. 물론 넓은 공간과 여러 전시실을 기간별로 돌리기 때문에 다른 작은 갤러리와 달리 이런 다양함을 추구할 수 있는 시설이다. 그리고 이런 전시를 담당하는 수준급의 팀이 있기에 여태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전시에 관한 평가 같은 글을 쓰지 않았기도 했다. 감히 내가 누구라고. 하지만 어차피 개인의 의견이고, 최근에 간 전시도 많지 않아 겸사겸사, 드디어,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전시에 관한 글을 쓴다. 서론에서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기 전에 어서 본론으로 넘어가 보자.
이 부분이 아마 국립현대미술관(이하 MMCA)이 갖는 그 어디와도 차별화되는 무기라고 생각한다. 단 한 곳에만 있는 미술관이 아닌 서울관, 덕수궁관, 과천관 그리고 최근에 개관한 청주관까지 총 네 개의 미술관이 하나로 묶여있다. 이 넷의 크기를 합치게 된다면 세계적으로도 순위권에 들 정도로 큰 미술관이니, 비록 네 곳으로 나뉘어있지만 MMCA가 갖는 힘을 얼추 볼 수 있다. 전시관끼리의 연계를 통해 하나의 더 큰 전시를 만들어내는 모습은 마치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서울 도시건축 비엔날레나 이전에 있던 연희, 걷다와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그 연계되는 주체들이 서로 독립적인 기관이 아닌 하나의 그룹 아래 묶여있다는 것은 앞으로도 이런 연계 전시들이 더 쉽게 - 사실 쉽지 않겠지만, 앞선 두 예시보다는 비교적 쉽게라는 추측이다 - 열릴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전시관의 연계는 하나의 전시관만 관람하는 것이 아닌, 다른 곳들도 방문하게 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번 '광장' 전시의 경우 덕수궁관이 1부, 과천관이 2부, 서울관이 3부로 이 순서대로 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굳이 그래야 하지는 않아 보이긴 하지만. 이를 통해 서울관만 가던 사람들을 과천관이나 덕수궁 관으로 유도를 하고, 그곳들을 더 친근하고 익숙하게 만들어 재방문의 여지를 남긴다. 특히 필자의 경우, 전시관에 갔을 때, 전시 준비 중이라는 부분을 보면 후에 또 가서 그 전시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매우 많이 든다.
참, 본 글은 3부인 서울관을 다녀오고 작성한 글이다. 그렇다. 아직 덕수궁과 과천에는 가지 않았다!
우리가 흔히 광장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모습은 아마 넓고 황량한 곳에 여러 사람들이 있는 모습일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람들을 서로 모이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면서 다양한 관계를 맺는다. 누구는 비둘기에게 밥을 줄 수도, 누구는 책을 읽을 수도, 누구는 낮잠을 잘 수도 있다. 또 아이들은 소리 지르면서 뛰어다니며 놀고, 연인은 손을 잡고 걸어 다니며 노부부는 산책을 즐기기도 하는 곳이 바로 광장이다.
광장은 사람들의 다양한 행태가 나타나고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이런 부분에서 이번 전시는 공간 구성을 매우 잘했다고 생각한다. 우선 관람 공간이 상당히 넓다. 작품이 아닌 동선이 차지하는 공간이 상당히 넓다. 그렇기에 전시 작품의 주제도 광장의 의미와 관련되어있지만, 공간 그 자체도 광장 같다는 느낌을 준다. 가벽도 거의 없다시피 있고 작품들도 한 공간에 빽빽하게 있는 것이 아닌,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널찍하게 배치가 되어있다. 작품을 관람하거나 넓은 공간에서 이를 보는 사람들의 행태를 관찰하는 재미가 있는 공간이다. 정말로 광장처럼 아이들은 뛰어다니고 - 물론 제재하기는 하지만 아이들은 못 말리니까 - 작품에 대해 대화를 나누거나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어딘가에 앉아서 쉬거나 자신의 핸드폰을 보는 등 정말 다양한 행동들이 보이는 곳이었다. 특히 처음에는 밝은 공간이 전시실을 이동하면서 어두워지는데 (영상 작품 위주이기 때문에 그렇다) 밝은 곳과 어두운 곳에서 사람들의 행동이 또 다르기에 재미가 있다. 예를 들면, 밝은 곳에서 사람들은 그냥 바닥에 잘 앉지 않는다. 영상을 보게 되면 의자에 앉거나 서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두운 곳에서 동일한 작품을 보게 된다면 굳이 의자가 아니라도 구석진 곳이나 의자 옆 바닥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볼 수가 있다. 이처럼 비슷한 공간이라도 밝기가 주는 효과를 찾는 재미도 있다. 물론 작품 감상만 해도 되지만 이상하게 사람들에게 눈이 더 가더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가장 좋은 점은 전시가 지루하지 않다는 것이다. 대개 전시가 비슷한 작품들로 이루어져있지 않고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관객에게 다가온다. 회화, 조각, 사진, 영상 등 같은 미디엄이 반복되지 않고 이것저것 다양하게 있어서 큰 전시를 보아도 끝까지 지루하지 않다. 반대의 예로는 전에 쓴 SOMA 미술관에서의 드로잉전이 있을 것이다. 물론 최근의 박서보전과 같이 MMCA에서도 화화로만 이루어진 전시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전시실마다의 느낌을 조금 달리하거나, 작품 배치를 지루하지 않게 잘한다. (아, 물론 박서보 전에서도 중간? 후반쯤에 조각 작품이 있긴 했었다.) 이번 광장전은 사진, 설치미술, 영상 등 여러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고 작품의 수도 그렇게 많지는 않아서 시간을 갖고 하나하나 감상할 수 있었다. 특히 영상작품의 경우에는 너무 길어서 어느 정도만 보다가 다음 작품을 보기 위해 이동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작품의 수가 적어서 그런지 공간이 넒어서 그런지 거의 다 처음부터 끝까지 보았다. 공간이 어두워 영화 같은 분위기도 나니 앉아서 차분히 감상해도 좋을 듯하다.
추가적으로, 한 층 올라가면 작품이 또 있는데 꼭 봐보길 추천한다. 인터랙티브 설치미술(?)인데, 소리가 너무 차분해지고 소리를 만드는 방법이 정말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