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 산문집 '부디 아프지 마라'에 등장하는 라틴어.평소 가치관과 비슷해서 보자마자 사진을 찍었다.
'언제 밥 한번 먹자' 이 말이 그렇게 싫더라
나이가 드는지 사람들이 건네는 말을 쉽게 믿지 않게 됐다. 그중에 대표적인 말이 '언제 밥 한번 먹자'. 딱히 악의를 지닌 말은 아니지만 책임감도 없는 말. 기약 없는 약속이 싫어서절대 하지 않는 말이기도 하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 더 싫은가 보다. 고작 7 글자짜리 저 한 마디가.
언제 밥 한번 먹자는 말을 하지 않는 두 번째 이유는 오늘이 마지막일지 몰라서다. '메멘토 모리'와 닮았다. 눈앞에 있는 이 사람과 마주하는 순간이 오늘이 마지막일지 모르니까.
2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부터 애늙은이처럼 사람을 마주할 때면 혼자 생각한다. 오늘이 당신과 마주하는 마지막 날이라면 혹시 못다 한 말은 없나, 꼭 해야 하는 인사가 있지는 않았나.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것도 아닌데 그냥 혼자 버릇처럼. 사실 사람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 오늘 내가 세상을 떠날지 당신이 세상을 떠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살아가는 모든 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믿는다. 마치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그럼 약속은 어떻게 해야 좋은 걸까
몸이 안 좋아 좀처럼 무언가를 제대로 먹지 못했던 시기가 있었다. 어지러움이 심해서 누군가를 마주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하지만 몸이 안 좋다고 누군가를 보고 싶은 마음도 사라지는 건 아니기에 나답지 않게 기약 없는 약속이 하고 싶어졌다. 기다려주길 바라는 마음이 욕심이라는 걸 알면서도.
대신에 당신을 정말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전해지길 바라며 '언젠가'의 자리를 어떻게든 채우려고 노력했다.
"우리 6월에 만나요", "여름이 오면 꼭 찾아갈게요", "언제라고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다시 볼 수 있는 날이 올 거라 믿어".
지금이 끝이 아니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몇 안 되는 사람에게 약속했다. 그리고 떠나 있는 동안도 가끔 생각했다. 이들과의 약속을 잊지 않게.
마주하는 사람이 놓치고 싶지 않은 소중한 사람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 '언젠가'를 대신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구체적으로 '언제'를 정하는 것. 이게 어렵다면 최소한 나의 간절함이라도 전해지게 표현하는 것. 그게 기꺼이 상처받을 각오로 나를 기다려주는 이에 대한 예의다. '언제 밥 한번 먹자'는 말 한마디를 믿고 기다렸다가 결국 오지 않는 연락에 상처받는 건 오롯이 기다린 사람의 몫이니.
함부로 약속하지 말자. 책임감 없는 약속은 누군가에겐 상처가 된다.
그래도 기약 없는 약속이 하고 싶다면,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살자. 죽음을 기억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