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와 응원
나이가 들면서 어느 순간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기회가 줄어드는 시기에 도래하게 된다. 일의 장면도 큰 변화가 없고 - 일로 만난 사람들과 내밀한 관계를 꺼리는 점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나마 아이가 어릴 때 아주 적은 수이긴 하지만 연결되던 새로운 관계장면도 아이가 자라자 그 기회는 없어졌다. 뭐 이렇게 적어보니 내가 새로운 관계를 그다지 내밀하게 여기지 못하는 존재이긴 하구나 싶기는 하다.
관계에서의 에너지 배분을 균일하게 하지 못하고 비교적 시작보다 유지에 에너지를 더 쏟는 편인데, 첫 만남에서는 비교적 밝은 표정으로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편이며, 횟수가 늘면서 조금씩 취향을 공유하는 용기를 낸다. 물론 이건 일에서의 관계가 아닌 일상장면에서 친구관계를 맺는 내 모습이다.
월, 분기, 년 등을 기준으로 삼아 정기적으로 만남을 유지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오랜만에 연락이 오는 이도 있고, 각자의 일정이 허락하는 시간에 연락하다 불쑥 만나는 관계도 있다. 공통적인 점은 어떤 만남이든 마음을 나눌 마음의 준비(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뭐 이렇게 피곤하게 사는가 싶겠지만, 아마도 모두가 거치는 작업일 것이다. 그저 나는 글로 쪼개어 설명하다 보니 세밀해 보이는 것일 뿐이리라.
일상을 자주 나누지 못하지만 가치관이 비슷한 우리는 어느 때 만나도 ‘봉인해제’라는 용어를 쓸 만큼 그간의 경험과 느낌을 나누게 되는데, 주로 변곡점을 기준으로 이야기하게 된다. 상대의 이야기에 격렬하게 공감하기도 하고 가만히 듣다 느낀 점을 이야기하며 서로의 경험이 주는 삶의 웨이브를 응원한다.
관계에서 응원은 단방향이 아니라 양방향이어야 하는데, 어느새 단방향이 되어버린 친구가 생겼다. 존재는 그대로인데 관계적 정의가 변형된 것 같다.
그를 만나러 길은 반가움과 아늑함이 함께하는 설렘인데, 찡그러진 표정과 한숨으로 맞이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불편감이 조금씩 밀려온다. 아이를 키우면서 ‘인사’를 먼저 시키기보다 ‘반가움’을 먼저 배우게 하라는 말이 있다. 인간에게는 행동(인사)도 중요하지만, 감정(반가움)이 연결되어야 인지적 오류(잘 못 왔나?)를 범하지 않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필요한 경우 긍정의 요소를 찾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내밀한 관계에서의 감정소모는 건강하게 해결되면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하게 하지만 건강하지 못한 방식으로 해결되면 정서적 지배를 불러오고 회피하는 등의 불안정한 애착이 형성된다. 나무로 비유하자면 가지가 몇 없던 어린 시절에는 부모와의 관계가 다이지만 시간이 지나 나무가 자라면서 가지의 수도 많아지는데 때론 가지가 너무 많아 둥지가 자랄 영양분이 없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때는 의도적으로 가지를 잘라주거나 자연적으로 비바람에 의해 가지치기가 되기도 한다. 인간사에서는 바닥상황이 되면 사람관계가 정리되는 게 그 예일 것이다. 그러나 상황적 변화도 없고 잘라주는 사람도 없다면 속이 상한 가지라도 그저 자란다. 그러므로 혹여 상처는 없는지 면밀히 살펴봐야 하고 상처가 생겼다면 약을 바르거나 환기를 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계절이 바뀌어 연두잎이 무성한 어느 날, 내내 위로만 하다 돌아오며 생각한다. 나의 가지는 건강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