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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 Aug 30. 2022

영화 <헌트>, 굵직하지만 섬세한 이정재의 안목.



영화 <헌트> (HUNT)
감독 이정재
출연 이정재, 정우성 외
개봉 2022. 08. 10.




배우 이정재의 장편영화 연출 소식.

그 결과물의 만듦새에 대한 의구심이 아주 조금은 있었다. 30년간 해왔던 연기의 영역이 아니라 꽤 큰 사이즈의 장편 연출이라니. 배경으로는 80년대 군부독재 시절. 게다가 광복절 연휴를 앞둔 텐트폴 마지막 주자.


결과물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모 아니면 도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헌트>를 봤다. 그리고 당연하게 한 번 더 봤고, 또 한 번 더. 훌륭한 데뷔작이자, 범작의 영역을 상회하는 작품이었다. 대중의 반응도 역시 그런 것 같다.


<헌트>의 호평이 얻어걸린 게 아니라는 건, 그간 이정재의 필모그래피가 증명한다고 본다. 흥행의 부침은 겪었을지언정, 그가 택한 작품들이 담은 메시지의 면면과 연기한 캐릭터의 선명함은 모두 배우로서의 가치관을 알차게 포장하는 작품들이었다.


특히 <대립군>(정윤철, 2017) <사바하>(장재현, 2019) 같은 작품들은 '이걸 이정재가 한다고? 하겠어?' 싶은 생각이 들 만큼 사이즈나 메시지, 캐릭터 모두 흔히 '이정재'하면 대중이 떠올리는 이미지와는 괴리가 있었음에도 그는 '토우'와 '박웅재'를 택했고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사바하>의 후반부 나레이션은 아직까지도 곱씹는 바다. 담담하고 묵직하게 토로하는 그 짙은 대사들이라니.) 외형적으로 더 끝내주는 시나리오가 분명 있었을 텐데도 비주류적인 작품들을 택한 그 안목이 <헌트>의 호평을 담보한 건 아닐까.


작품에 임할 때 연출자와 배우의 시선이 다르고, 표현하는 언어와 방식이 다를 텐데도 연기 인생 30여 년의 고민을 고스란히 녹여 멀티 플레이어의 포지션을 완벽하게 소화한 그의 노력이 꽤 마음에 든다.





굵직한 서사를 다루면서도 섬세함까지 포기하지 않은 연출과 각본. 간결하지만 예리한 대사 한 줄 한 줄, 인물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스크린에 표출되는 매 순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는 점에서 <헌트>는 꽉 차 있는 영화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 일이 부담스럽기도 조심스럽기도 했을 것이고, 실제로 <헌트>는 기승전결 내내 특정한 메시지나 어젠다를 직접적으로 던지지 않는다.


다만 "독재자보다 더 나쁜 놈들이 독재자의 하수인이래. 세상이 변하고 있는데… 멍청해." 같은 류의 대사를 통해, 또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헬기 사격'을 언급하고 인물의 배경으로 활용함으로써 현대사의 쟁점과 비극을 다루는 일에 게으르게 굴지도 않는다.


특히 '헬기 사격'은 1980년의 광주로부터 4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 내용을 인정하느냐 마느냐로 거의 진영이 나눠지기까지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감독 본인은 직접적 메시지는 가능한 덜고 싶었다고 하나, 언급만으로도 그가 광주를 결부시켜 그 시대의 서사를 완성한 사람으로서 해야 할 최소한의 책임을 담았다고 느껴진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오프닝 시퀀스였다. 암살 시도를 다룬 액션이 한 차례 휘몰아친 뒤 타이틀이 뜨는데 앵글도 타이밍도, 타이포 디자인도 좋다.


평행하게 선 '박평호'와 '김정도'를 잇는 듯, 잇지 않는 듯 그어지는 반전된 'N'의 선. 그 선이 이어지는 동안 '김정도'는 앞서 성큼성큼 걸어가고 '박평호'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그 뒷모습을 보고 있다. 러닝타임 내내 이어질 어떤 구도를 미리 보는 것 같은 그 멈춰진 장면이,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다시 떠올랐다. 





<헌트>에 대해 무엇보다 놀라운 건, 연출 제작 각본 주연까지 하면서 어느 하나를 포기할 법도 한데, 잘생김마저 포기하지 않은 끈질김이었다. 30년을 잘생기고도 부족하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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