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으면 '모성애'가 저절로 생길 줄 알았다

엄마와 딸이 함께 쓰는 육아서

by 송혜교
'엄마와 딸이 함께 쓰는 육아서'는 두 딸을 키우며 수십 권의 육아서를 탐독한 50대 엄마와 심리학을 전공하고 교육계에서 일하고 있는 20대 딸이 함께 쓰는 시리즈입니다. 양육자로서 부모의 시선만으로 쓰인 육아서를 넘어, 그 육아의 대상자였던 자녀의 후기까지 담아보려 합니다.

필자가 두 명인 만큼, 헷갈리지 않도록 엄마는 ♣, 딸은 ♬로 표기합니다.



모성애는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다


: 엄마가 되면 '모성애'가 저절로 생기는 건 줄 알았다. 아이를 출산한 직후, 그게 아니라는 걸 바로 깨닫게 되었다. 빨갛고 쭈글쭈글한 2.9kg의 아이를 처음 본 순간, 못생긴 원숭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아이인데 왜 내 눈에 안 예쁠까?' 하는 생각에 이어 '난 모성애가 없나?' 하는 자책이 들었다.


나중에 엄마에게 들은 얘기로, 밖에서 기다리던 남편에게 간호사가 다가가 아직 씻기기 전의 아이를 안겨주었는데 '그 핏덩이 이마에 입 맞추더라'라고 했다. 남편 눈엔 첫 아이가 그렇게 예뻤단다. 2.6kg으로 낳은 둘째 또한 내 눈엔 여전히 원숭이 같았고, 남편은 또 핏덩이 아기가 너무 예뻐서 이마에 입을 맞추었단다.


아이가 이유식을 먹기 시작하면, 오물오물거릴 때마다 입 밖으로 나오는 이유식을 계속 숟가락으로 밀어 넣어주게 된다. 그러고도 또다시 한 스푼 떠서 먹이는 과정을 반복하게 되는데, 그럼 당연히 아이에게 먹이고 남은 이유식에 아이의 침도 섞여 있게 된다. 나는 그렇게 남은 이유식은 당연하게 버렸는데, 남편은 당연하다는 듯 자신이 떠먹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란 다음에도 난 아이들이 남긴 밥이나 국은 절대 먹지 않았다. 아무리 내 자식이 남긴 거라도 비위가 상해서 먹을 수 없었는데 남편은 아주 잘 먹었다. 그럴 때마다 다시 생각했다. '진짜 내가 모성애가 없는 걸까?' 그래서 모성애의 본래 뜻이 무엇인지 찾아보기까지 했다. '모성애'의 사전적 의미는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본능적인 사랑'이었다. 그렇다면 본능은 무엇일까? '본능'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생물체가 태어난 후에 경험이나 교육에 의하지 않고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이라고 했다.


모성애의 사전적 의미를 확인하고 나서야 자책을 멈출 수 있었다. 나는 분명 엄마로서 아이들을 사랑했으니까. 모성애는 자식을 사랑하는 '나의 감정'이다. 여기서 중요 포인트는 '나'의 감정이라는 것이다. 엄마가 되기 전에도 나에겐 수많은 감정이 있었고, 그 감정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왔다. 단지 엄마가 되었다는 이유로 '모성애'가 항상 1순위일 수는 없는 거였다.


아이가 잘 먹고 황금색 똥을 싸면 건강하다는 뜻이니 다행이었지만, 그래도 비위가 상하긴 했다. 그리고 내가 '난 네 똥도 좋단다'라고 말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아이들 앞에서 굳이 숨기진 않았다. 엄마라고 아이들이 남긴 밥을 다 먹을 수 있는 건 아니고, 엄마라고 아이가 싼 똥을 보고 비위 상하지 않는 건 아니라는 걸 아이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00맘'이 아닌 '나'


: 내가 엄마이기 이전에 본연의 '나'를 지키려 하는 성향이 강하다는 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깨달았다.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면 아무래도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의 자녀를 둔 엄마들과 왕래할 일이 늘어난다. 나 역시 그때 다른 엄마들과 연락처를 교환하고 각종 메신저로 소통하게 됐다.


그런데 다른 엄마들의 프로필을 보며 많이 놀랐다. 예외 없이 모두의 프로필 사진이 아이들이었고, 프로필명은 '00맘'이었기 때문이다. 내 영어이름과 셀카를 대문짝만 하게 달아놓은 나의 프로필이 유독 튀었다. 난 한 번도 아이들 사진을 프로필로 올려둔 적이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건 내 프로필이니까.


더 신기했던 것은, 엄마들 사이의 호칭이었다. 어느 날 혼자 동네를 걸어가는데, 뒤에서 누군가 딸의 이름을 불렀다. 00아! 하는 익숙한 이름에 돌아보니, 동네 엄마 모임에 속한 다른 엄마였다. '00 엄마'를 넘어 딸의 이름 그 자체로 불리는 것이 너무 낯설었다. 반면 다른 엄마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를 받아들였다. 아무도 자신의 이름 석자를 고집하지 않았다.


: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에게는 엄마와 아빠가 세상의 전부일 것이다. 그러나 조금씩 자라면서 아이들의 세상에도 부모가 아닌 타인이 들어온다. 성장이란 '자녀로서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인 셈이다. 나는 친구가 될 수도, 연인이 될 수도, 학생이 될 수도, 동료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아가는 것. 또 그 모든 것을 능숙하게 해낼 수 있을 때까지 실수를 거듭하는 것.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을 거치는 동안, 엄마의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면? 나의 세상에는 친구도, 연인도, 진로도, 꿈도 있는데, 엄마에겐 오직 나뿐이라면. 애석하게도 이때 자녀가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고마움이 아니다. 엄마를 생각하면 고맙고 미안하면서, 동시에 죄책감이 드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녀가 넓은 세상을 보며 자라길 바라는 게 부모의 마음이듯, 사랑하는 우리 엄마가 '엄마'로만 살지 않길 바라는 게 자녀의 마음이다. 00맘이 아닌 엄마의 이름으로 살 수 있기를, 엄마에게도 엄마만의 행복이 있기를.




엄마도 닭다리를 좋아해


: 예전의 엄마들은 '자식 입에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표현을 주로 썼다. 엄마는 생선대가리를 좋아해, 엄마는 퍽퍽한 가슴살 좋아해 같은 말로 자식들 먹이는 것에 온 신경을 써야 했다. 아무래도 모두가 풍족하게 먹을 수는 없는 시절이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그때도 우리 엄마가 덜 먹고, 안 좋은 것만 먹는 게 싫었었다. 시간이 갈수록 가족들 사이에 풍기는, 엄마는 맛없는 부분만 먹는 걸 당연시하는 그 분위기도 싫었다. 내 몫을 엄마 입에 넣어주면 그렇게 맛있게 드시면서도, 맛있는 음식이 있을 때면 가족수대로 n분의 1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엄마 자신의 몫을 빼고 나누는 게 못마땅했었다.


부모가 되어 내 가족을 이룬 다음에는 맛있는 걸 먹을 때 항상 n분의 1로 공평하게 나누었다. 엄마 아빠도 치킨을 먹을 땐 닭다리를 좋아하고, 생선을 먹을 땐 몸통을 좋아한다는 걸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알게끔 했다. 물론 아이들에게 더 줄 때가 훨씬 많았지만, 당연히 먹는 것이 아니라 '엄마 아빠도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데 그걸 나한테 나눠주는 거구나'라는 걸 알고 감사해할 수 있도록 반드시 생색을 냈다. 말하지 않고 표현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건 답답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 학교 친구들끼리 모여서 치킨을 먹던 때, 한 친구가 다리 두 개를 홀랑 가져가버린 적이 있었다. "야, 다른 애들도 먹어야지!"라는 나의 말에 그 애는 의아하다는 듯 "너희도 다 다리 좋아해? 우리 집에서는 다리 나만 먹거든."이라고 답했다.


엄마는 아이가 가장 처음 마주치는 타인이다. 그래서 '엄마에게 감사하고 배려할 줄 아는 아이'로 키우는 게 더더욱 중요하다. 엄마가 나에게 해주는 모든 것이 당연한 건 아니고, 엄마도 먹고 싶은 게, 하고 싶은 게 있지만 나를 먼저 챙겨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아이도 알아야 한다.


미디어에서 비추는 '희생적인 엄마'의 상을 볼 때마다 생경한 느낌이 들었다. 수련회에서 교관이 '나를 위해 뭐든 다 해주시는 어머니를 생각해 보라'며 눈물 펑펑 흘리길 유도할 때도, 강당에 모여 앉아 오열하는 친구들 사이에 나는 혼자 멀뚱히 앉아있었다. 아마 엄마는 지금쯤 맛있는 걸 먹으면서 드라마를 보거나, 평온하게 책을 읽고 있을 것이다. 재미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엄마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마음 한편이 저려오는 그런 일은 없었다. 엄마는 불쌍한 사람이 아니고, 불쌍한 사람이 될 필요도 없었다. 엄마는 닭가슴살보다는 다리를 좋아했고, 쾌적하지 않은 곳에는 굳이 가지 않았으며, 맛없는 음식은 굳이 먹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엄마를 꼭 닮았다. 그러니 만약 내가 엄마가 된다고 해도 굳이 나를 희생하며 살 필요는 없다는 걸 일찍이 깨달았다.




나도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


: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까움과 연민을 느끼는 딸들이 많다. 자신의 자아를 누르고 '엄마'라는 정체성을 앞세우기 전에, 소녀였던 엄마와 젊었던 엄마가 있었을 테니까. 그 자아의 말로에 내가 기여한 것은 아닐까, 나를 낳지 않았었더라면 자유로운 삶을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당시의 시대상과 경제적 상황이 이끈 현실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우리 엄마가 몸이 부서져라 키워낸 딸이 바로 나인데,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아야지' 수없이 생각했었다. 그래서 더더욱, 나는 그렇게 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내 자녀들이 나를 떠올렸을 때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길 바랐으니까.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부모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책 읽으라고 잔소리를 하는 것보다는 부모가 독서하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처럼 "넌 엄마처럼 살지 마."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엄마가 한 인간으로서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너희보다 먼저 삶을 시작해서 지식과 경험이 조금 더 많을 뿐, 지금도 순간순간 생각하고 아파하고 실수하고 배우고 후회하고 발전하는 한 사람이란다. 오늘을 처음 살아보는 건 너와 나를 포함해 모든 사람이 똑같단다.' 이 사실을 어릴 적부터 깨닫는 것만으로도, 가족을 포함한 타인과 이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힘이 길러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도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엄마에게는 '엄마로서가 아닌 자기 자신만의 삶'이 존재한다. 이 사실을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아이가 나중에 자라서 엄마가 되든, 되지 않든 흔들림 없는 삶을 그려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 어느덧 나도 '엄마가 엄마가 되었던 나이'에 다다랐다. 그래서 엄마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적 있었다. "엄마, 애를 꼭 낳아야 할까? 낳아본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해?" 엄마는 고민 끝에 이렇게 답했다. "내가 네 나이 때는 애를 안 낳는다는 선택지가 없었어. 못 낳는 사람만 있다고 생각했지. 너희를 낳아서 행복했지만, 다시 돌아간다면 나도 안 낳았을지도 몰라."


아이를 낳아 키우는 기쁨은 경험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지만, 그 포인트는 '경험하지 않으면'에 있다는 거였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살 수도 있는 행복이니까. 다시 돌아간다면 낳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엄마의 말이 내게는 위로이자 깨달음이었다. 구태여 엄마로서의 삶을 고민할 이유가 없는 거였다. 나는 그냥 나로서 행복하게 살아가다가, 원한다면 아이라는 선택지를 택할 수도 있을 뿐이다. 엄마에게 자신만의 삶이 있었듯이, 나도 나의 삶을 지킬 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가면 된다.






: 자녀 둘을 어쩜 그렇게 똑 부러지게 잘 키웠냐는 칭찬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니, 아이들을 키웠다기보다는 아이들이 자라는 걸 바로 옆에서 지켜본 게 다였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는 말처럼, 우리 세대가 해온 방법이 아이들의 상황에도 맞으리라는 확신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아이들이 스스로 길을 찾아갈 때까지 기다리는 거였다. 그 기다림 속엔 아이들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아이들 또한 부모가 자신을 응원하고 믿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딸과 함께 육아서를 쓰며 지난 시절을 되짚는 동안, 작은 아쉬움도 들었다. 이때 이렇게 해줬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저게 아이에게 더 도움이 됐을지도 모르는데. 그러나 이렇게 딸과 함께 글을 써보는 경험을 해 본 엄마가 몇이나 있을까 싶은 생각에 나름 우쭐한 기분도 느낄 수 있었다. 즐거웠던 집필을 마치며, 독자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린다.


: 나는 보통의 육아서에서 성취라고 부를 만한 것들을 많이 이뤘다. 자기주도학습을 통해 일찍이 졸업했고, 20대 초반에 이미 장관상을 3개나 받았으며, '최연소'라는 타이틀을 셀 수 없이 수집해 왔다. 그간 받은 상장과 임명장은 책꽂이 한 칸을 채우고도 넘쳐서 방구석 어딘가에 쌓여있고,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응한 인터뷰만도 수십 건에 달한다.


그러나 지난 열 편의 글에서 이런 성취를 언급하지 않았던 것은, 그 상장들이 내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힘들거나 혼란을 느낄 때, 현명한 선택을 내려야만 할 때 도움이 되었던 건 언제나 행복하게 쌓인 유년기와 부모님의 믿음이었다. 나는 평소 "로또가 되긴 글렀어. 난 너무 좋은 부모님 밑에서 태어났거든. 이미 이번 생의 운은 거기에 다 쓴 거야!"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곤 했고, 모든 아이가 다 나처럼 못 견디게 행복한 성장기를 겪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교육자로서 살아가면서 불행한 아이들을 너무나 많이 만났다. 보통의 육아서에서 성공이라고 말하는 길을 걸으면서도 자괴감과 혼란을 느끼는 성인도 너무 많이 보았다. 육아에는 정답이 없고 이미 시중에는 수많은 전문가가 쓴 육아서가 넘치지만, 그래도 성취 너머의 후기를 생생하게 들려주는 육아서를 한 번쯤 써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의 경험이 많은 이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엄마와 딸이 함께 쓰는 육아서> 시리즈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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