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을 백만 명이 읽는다는 것은
내게 허락된 젊음을 어떻게 쓸 것인가? 처음 이 문장을 떠올리던 순간을 기억한다. 열여섯 살 늦여름. 나는 시골집 마당에 혼자 누워있었다. 그 무렵 내 삶은 한량과 그리 다를 바 없었다.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더울 땐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그러다 또 낮잠을 자고, 하늘이 맑은 오후에는 어김없이 석양을 구경하러 평상에 누웠다.
젊다 못해 어렸던 나는, 시간을 '무한히 샘솟는 무언가' 정도로 여겼다. 철없는 이라면 응당 그래야 할 것처럼, 이 젊음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에 사로잡힌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채근하는 법이 없었다.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내일, 내년, 10년 뒤에 해내면 그만 아닌가. 앞으로도 여유롭게, 아주 여유롭게 살아가리라 다짐했다.
그날은 유독 하늘이 칠한 듯이 붉었다. 내가 가만히 지켜보는 동안 태양은 궤적을 그리다가, 마당 한 편의 소나무 뒤로 숨었다. 눈 닿는 모든 것이 놀라우리만치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나는 한순간에 착각에서 깨어났다. 마치 누군가 나를 쥐고 흔들기라도 한 것처럼. 내게 허락된 젊음을 그냥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는 걸, 불현듯 깨달은 것이다.
어영부영 살아서는 안 돼. 내게 허락된 젊음을 제대로 써야만 해. 나는 그렇게 핸들을 손에 쥐고, 인생의 방향을 과감하게 틀어버렸다. 상상만 하던 비영리활동에 뛰어들었다. 번 돈을 탈탈 털어 지구를 둘러보았다. 검정고시를 준비하면서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틈만 나면 메모장에 글을 끄적거렸다.
어느새 내 핸드폰에는 차마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글이 가득 찼다. 그렇게 쓴 글이 제법 구색을 갖추고, 정말로 책이 되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10년이 걸렸다. 치열함과 성과를 등가 교환할 수는 없지만, 치열함과 성장은 같은 선 위에 있다는 걸 그렇게 배웠다.
첫 책 출간 전야에는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드디어 작가가 되다니. 그런데 다시 주워 담지도 못하게 내 생각을 종이에 인쇄해서 전국에 뿌리는 게 정말 옳은 일이야?' 꿈을 이룬다는 설렘 반, 이제는 그 무엇도 돌이킬 수 없다는 걱정 반. 그런 밤을 몇 번이나 보내고 나니 내게도 드디어 작가라는 정체성이 생겼다.
첫 책을 낸 작가에게는 어김없이 '다음 책'이라는 위기가 온다. 나 역시 예외는 없었다. 더 이상 서명해 둔 계약서가 없으니, 이제는 글을 공개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다시 메모장으로 돌아가려던 차에, 문득 이 흑백 화면을 떠올렸다. 어쩌면 나에게 필요한 건 출판사 이전에 독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브런치스토리에 첫 글을 올리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에게는 출판사뿐만 아니라 독자도 없다는 것을. 100명이 내 글을 읽는다는 게, 그중 10명이 내 글을 마음에 들어 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배웠다. 나에게 필요한 건 출판사 이전에, 독자 이전에, '계속 쓰려는 마음'이라는 것도.
그로부터 2년 반이 흘렀다. 나는 그간 이 온라인 공간을 살뜰히 가꿔왔다. 200편이 넘는 글을 올렸고, 두 권의 책을 더 썼다. 어느새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쓰는 습관이 생겼다. 처음 브런치스토리에 발을 들일 때만 해도 상상조차 하지 못하던 일이다.
어느덧 누적 조회수도 일곱 자리가 되었다. '내 글을 백만 명이 읽는 기분'은 생각보다 훨씬 근사했다. 만약 이 공간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애정 어린 댓글도, 분수에 넘치는 칭찬도, 매주 내 글을 기다려주는 독자도 마주하지 못했으리라. 덕분에 이제는 12년 전의 나에게 답변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내게 허락된 젊음을 어떻게 쓸 것인가? 나는 내게 허락된 젊음을 '쓸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게 세상이듯, 쓰는 만큼 빛나는 게 청춘이라고 믿으며. 앞으로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내 삶의 조각을 활자에 담을 것이다. 내게 허락된 젊음을 소상히 기록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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