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나는 이렇게 나를 돌보기로 했다.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오늘, 나는 뱅쇼를 끓인다. 코로나 덕에 아무도 만나지 못하는 크리스마스와 연말, 나를 행복하게 할 것이 필요하다. 가족과 오래 붙어있어서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인생에는 친구들과 지인들이 채워줘야 할 자리도 있다는 것을. 더욱이 회사를 다니며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연말에야 모처럼 마음 편히 친구들을 만나 수다 보따리를 풀곤 하는데, 그마저도 어려우니 더 크게 아쉬움이 남는다.
언젠가 캠핑을 떠나던 날, 동생이 마실 것을 하나 만들어왔다. 이름이 뱅쇼라고 했다. 알코올을 반쯤 날린 와인 맛이 나는 새콤달콤한 그 음료에 나는 푹 빠져버렸다. 그때부터 나의 뱅쇼 사랑은 시작되었다. 가끔 내 마음에 겨울이 찾아올 때마다 난 뱅쇼를 한 솥 가득 만들어 자기 전 한두 잔씩 홀짝이곤 한다. 어차피 술을 잘하지 못하는 나이기에, 달콤한 뱅쇼 한 잔이면 마음을 달래기에 충분하다. 좋은 일이 있어 기분을 내고 싶은 날에도 물론 이만한 것이 없다.
오렌지 3개, 사과는 큰 것으로 2개, 딸기 한 줌과 계피 스틱 3개에 저렴한 와인 두 병을 가득 붓고 오늘 밤 이렇게 뱅쇼를 끓인다. 아, 꿀을 듬뿍 부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비타민 폭탄이 투하되어 건강한데 숙취도 없고 술 마신 기분은 낼 수 있는, 그야말로 참 기특한 효자 아이템이다.
오늘 점심에는 온 정성을 짜내 크리스마스 카드도 만들었다. 카톡으로 전한 카드를 받고 감동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래, 올 연말은 이거면 됐다. 크리스마스 카드로 사랑을 전하는 일, 달달한 뱅쇼를 만들어 홀짝이는 일, 그리고 가족들과 부대끼다가 모두가 잠든 고요한 밤이 오면 혼자 홈트를 하고 잠드는 일, 이 연말 나는 이렇게 나를 돌본다. 아니, 어쩌면 이 일들이 나를 돌봐주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올 한 해 수고한 나를 토닥이면서 슬슬 2020년과 작별할 준비를 한다. 마지막 남은 뱅쇼 한 모금을 들이키며,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