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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Lee Sep 09. 2020

내가 모르는 것을 만났을 때

모르는 게 죄도 아닌데 왜


내가 모르는 것을 만났을 때, 너무 겁먹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모르는 것을 만났을 때, 너무 걱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모르는 것을 만났을 때,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는 환희로 가슴이 쿵쾅거렸으면 한다.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아는 척하지도 않았으면 한다. 모르는 것을 만나는 일을 제일 기대하는 사람처럼 살았으면 한다. 길을 가다가 이름 모를 예쁜 꽃을 만났을 때처럼, 처음 유럽 땅을 향해 날아가던 어느 여름 비행기 안에서의 설렘처럼.


어린아이들은 모르는 것을 묻는 데 주저함이 없다. 하루 종일 새롭고 온통 궁금한 것들 투성이라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질문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엄마든, 선생님이든, 친구에게든 종알종알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이 아이들의 일상이다. 그런데 어른들은 참 이상하다. 아이들보다 고작해야 십 년, 이십 년, 아니 삼십 년 정도 더 살았을 뿐인데 왜 어른은 모든 걸 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모르는 것을 만났을 때 왜 그렇게 얼굴이 빨개지는 걸까. 왜 모른다고 말하는 것을 자꾸만 창피하고 머쓱해하는 걸까. 왜 몰라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입을 꾹 다물게 되는 걸까.


나이를 먹으면 분명 알게 되는 것이 더 많은데, 오히려 아는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며 더 알아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에 갇히고, 어린아이는 아는 것이 몇 개 없는데도 자기가 엄청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하고 뿌듯해한다. 참 신기하고 아이러니한 일이다. 모르는 것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고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배움의 행복을, 아이들은 온전히 알고 누리는 것 같다. 알고 있어야 한다는 당위도, 부끄러워할 것도 없는 순수한 열정으로 그렇게 하루에도 수많은 모르는 것들을 마주치고 충분하고도 기꺼이 설렌다.


서른과 마흔 사이, 나는 마냥 어리지도 늙지도 않은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내가 입힌 것인지, 남이 입힌 것인지 모를 무거운 옷들을 걸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 옷들 중에 아마 모르는 것을 만났을 때 두렵고 걱정되는 불안의 옷, 이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강박의 옷도 있을 것이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처럼 오늘부터 몸은 안되더라도 내 마음만이라도 하루씩 점점 아이로 돌아간다면 참 좋겠다. 어른이라는 압박감의 옷에서 벗어나 아이들처럼 배움의 순수한 기쁨에 머무를 수 있다면, 모르는 것들 투성이인 세상 속에 진짜 설레고 기분 째지는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모르는 것을 만났을 때, 아이가 되었으면 한다.

당신이 모르는 것을 만났을 때, 아이처럼 반짝이는 눈과 쫑알거리는 입과 뻔뻔한 가슴을 가졌으면 한다.

그런 어린 당신과 내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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