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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Lee Aug 16. 2020

빗속에서 어떻게 춤을 추는가

시련을 현명하게 극복하는 법: 숨겨진 보물찾기

아침 내내 물가에 앉아 있다. 물들은 급한 곳에서는 우렁차고 평평한 곳에서는 잠시 머물러 조용히 파문을 만든다. 그러면서도 낮은 곳으로 흐르는 걸 잊지 않는다. 정신이 무엇이고 마음이 무엇인지 알겠다. 정신과 마음이 만나면 아름다움이라는 것도 알겠다. 생이 음악이라는 것도 알겠다. 두 개의 선율로 끝없이 시간을 변주시키는 숭고한 소나타.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38 중에서-


올여름은 유난히 장마가 길고 짙다. 호우주의보가 내려 지방 어딘가에는 다리도 집들도 잠기던 오늘, 그래도 친구의 집들이가 있는 날이라 다녀오긴 해야겠기에 왕복 두 시간 빗길 운전을 해야 했다. 안경을 끼고 앞이 흐릿한 유리창 밖으로 겨우 보이는 앞차의 불빛을 애써 좇으면서 김서림을 없애고자 히터를 껐다 켰다 반복한다.


사실 비 오는 날 운전은 지긋지긋 피곤하고 겁나기도 해서 평소에는 어떻게든 피하는 나인데, 오늘은 희한하게 싫지 않았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길을 더듬더듬 용기 내서 가보는 게, 어떤 길목에서는 쏴아아 물세례도 받곤 하는 게 꼭 우리네 인생을 닮아서였을까. 아니면 내가 요즘 조금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어서였을까. 우두둑 빗줄기 소리에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기도 했고, 무사히 집에 도착하고 난 뒤에는 수능을 치르고 엄마랑 귀를 뚫으러 가던 날처럼 홀가분한 마음도 들었다.


류시화 시인은 그의 책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에 인생은 폭풍우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가 아니라  빗속에서 어떻게 춤을 추는가 하는 것이다. ”라는 멋진 말을 남겼다. 빗길을 달리면서 그 글귀가 내내 떠올라 내 마음을 맴돌았다. 그 때문인지 평소엔 싫기만 한 빗길 운전도 오늘은 내 가슴을 후련하게 했다.


주위를 둘러보면 삶은 우리를 위로할 것 천지다.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모든 풍경이 경이로움 그 자체다. 그렇게 성가시고 눅눅한 빗줄기마저 오늘은 내 마음을 위로하고 있지 않은가.


내일은 친구와 아침 일찍 만나 망우산 둘레길을 걷기로 했다. 새벽같이 산에 가는 건 아빠 손에 이끌려 산악회에 따라가던 어릴 적 이후로는 거의 처음인 것 같다. 푸릇푸릇한 나무들 속에서 천천히 걷다 보면 새벽 공기가 주는 온기를 마시며 자연으로부터 또 어떤 특별한 선물을 받게 되지 않을까.


병이라든지 관계의 문제라든지 삶에 크고 작은 시련이 찾아올 때, 우리는 평소에 안 하던 것들을 자꾸 하게 되는 것 같다. 비로소 일상에 깊숙이 머무르며 보지 않던 것을 보게 되고 작은 것들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부정하던 것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줄 아는 마음, 발에 차이던 작은 돌멩이를 지긋이 바라보고 손으로 들어 올릴 줄 아는 마음, 겸손하게 나를 돌아볼 줄 아는 마음, 천천히 여유롭게 숨을 고르게 해 주는 마음은 유독 좌절하고 앞길이 꽉 막힌 순간에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런 특별한 위로와 깨달음들은 오직 인생의 어둔 터널을 지날 때만 유일하게 누릴 수 있는 행운이라고 생각해보려 한다. 그렇다면 인간을 더 인간답게, 성숙하고 따뜻하게 만들기 위해 삶의 고난은 필연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시련을 마주할 때 그 문제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는 스쳐 지나가 '숨겨진 행복'찾아가는 시간으로 받아들인다면 마음의 평온을 찾는 동시에 우리의 내일이 조금 더 멋지고 성숙해질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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