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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Lee Aug 05. 2020

여름휴가 계획이 어떻게 되시나요?

코로나 시대의 여행에 대한 단상

사람이 머물던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중략)
여행 역시 한 지점에서 다른 한 지점으로 움직이지만 이주나 피난과는 다르다. 여행은 자기 결정으로 한다. (중략)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떠나야 하는 이주자와 자기 결정에 따라 여행하는 자가 보는 풍경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느끼는 것은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이주자는 일상을 살아가는 반면 여행자는 정제된 환상을 경험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중에서


김영하 작가가 ‘여행’을 바라보는 시선은 아마도 '자발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하다. 지방 발령을 받아 직장 때문에 제주에 내려가 살게 되는 것과 내가 선택해 제주 한 달 살기를 하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는 그런 이치를 말하는 것 같다. 그의 말대로 우리의 자율적인 의지와 선택에 초점을 맞춘다면 여행을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2020년의 현실은 조금 서글프기도 하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 보면 꼭 '장소의 이동' 이 필요하다고 국한을 두지 않는 한, 우리가 자발적으로 떠날 수 있는 여행은 참으로 무궁무진하다.

오늘 점심을 먹으며 동기들에게 휴가 계획에 대해 물어보었다. "신라호텔 망고빙수를 먹으러 갈 것이다, 밀린 드라마를 하루 종일 정주행 할 것이다, 집 정리를 싹 해서 중고물품들을 당근 마켓에 다 팔아버릴 계획이다"라는 대답들이 돌아왔다. 나의 계획은 2가지인데 밀린 독후감 쓰기, 그리고 오징어볶음을 마스터해 볼 생각이다.

휴가가 그 어느 때보다 '귀여운 목표'와 '작은 제목'들로 채워져 가고 있다. 어쩌면 휴가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시시한 것들이다. 그래도 지금이 아니면 언제 우리가 이렇게 일상 속에 머물러 있겠는가. 언제 책을 읽으며 언제 집 정리를 그렇게 열심히 하겠는가. 언제 이렇게 가족에게 신경 쓸 수 있겠는가. 우리 모두 일상에서의 행복을 찾으려고 부단히 애쓰고 있다.


한동안 ‘그 책이 다 그 책 같이’ 느껴지는 병에 걸려 책을 읽지 않다 올해부터 다시 좀 읽으려고 보니 꽤나 재미난 책들, 유익한 책들이 참 많이 쏟아져 나온다는 것 알게 되었다. 게다가 서울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웬만한 베스트셀러도 거의 다 전자책을 제공하고 있다. 덕분에 책값도 굳고 독서의 영역넓어지고 두 마리 토끼를 잡게 됐다.


어쩌면 나는 이미 여행을 떠나와있는지도 모른다. 몇 달째 책이라는 휴양지에 머물러 있는 지금,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영영 가질 수 없었을지도 모르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니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여름휴가가 끝나고 갖게 될 모임에서 사람들은 제주도, 발리, 괌이 아니라 강원도, 드라마, , 가족들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소박하지만 제일 인간적인, 가장 일상적인 이야기들로 수다가 채워지겠지? 비록 해외만큼은 아닐지라도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내 방식대로 즐거운 여행을 떠나서, 우리 모두 꼭 일상의 행복을 쟁취하고 돌아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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