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을 시작했습니다.
첫 캠핑을 다녀왔다. 그리고 바로 캠핑에 빠져들어 이제는 매주 가고 싶어 안달이 나는 정도가 되었다. 벌레, 추운 곳, 등이 배기는 것, 다 싫어하는 나인데 어쩌다가 캠핑을 좋아하는 마음이 들게 된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캠핑이 우리 인생을 닮아서인 것 같다.
땀을 뻘뻘 흘리며 두 시간 동안 작은 집의 건축을 마치고 나면, 의자에 앉아 솔솔 부는 바람을 느끼며 한 숨 을 돌린다. 음악을 틀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가만히 타오르는 장작을 바라보는 달콤한 휴식은 언제나 집을 짓는 노동 뒤에 허락된다. 캠핑의 과정은 사람은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진리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노동 뒤의 휴식이 더 값지고 의미 있다는 말을 들려주는 것 같아서 괜스레 마음이 뿌듯하다.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가서 부지런히 풀고 고생한 뒤에 비로소 자연 속에서 행복을 만끽할 때면, 일과 휴식이 반복되는 우리 인생의 흐름을 일박이일로 짧게 압축해 놓은 듯한 기분이 든다. 딱 노력한 만큼의 대가만 누리는 달콤한 행복이다. 더없이 소박하고 공평하다.
야외에서의 하룻밤은 또한 날씨를 오롯이 내 몸으로 마주해야 한다. 언제나 맑고 화창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날씨는 결코 사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비가 내리거나, 갑자기 너무 추워지거나, 반대로 너무 더워 잠을 설치는 날도 있다. 일기예보는 변화무쌍해서 막상 출발일이 임박하기 전까지는 예측하기도 어렵다. 그러고 보면 캠핑하는 날의 궂은 날씨는 꼭 인생의 우여곡절을 닮았다. 예상치 못한 비바람 속에서도 언젠간 쨍쨍한 날이 올 거라 믿으며 환경에 적응해 나가야 한다. 내게도 흐린 날씨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빗 속에서의 캠핑도 즐길 줄 알게 되는 날이 오게 된다면, 분명 인생에서 찾아오는 비바람도 좀 더 멋지게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셋째로, 캠핑을 떠나는 일은 매일매일이 비움과 채움의 연속이다. 아무리 멋진 공간을 꾸몄대도 짧은 이틀, 삼일이 지나면 가차 없이 텐트를 허물고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같은 텐트여도 새로운 장소의 풍경과 날씨, 설치 각도와 그날의 음식들이 어우러져 매 번 다른 느낌의 공간이 탄생한다. 그리고 그 유일무이한 안식처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하루 이틀 뒤엔 미련 없이 허물어야 하니, 집에서처럼 꽁꽁 붙들고 있거나 집착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매번 내 손으로 허물고, 짓고를 반복하면서 채움과 비움에 익숙해지는 연습을 한다. 미련 대신, 오래 붙들고 있는 대신 짧은 그 찰나에 온전히 집중하는 고밀도의 시간을 만끽하는 연습을 하는 셈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일상의 한 순간, 한 순간을 소중히 여기게 된다.
마지막으로, 캠핑은 나를 포장하고 있는 껍데기를 벗게 해 준다. 우리 가족은 코로나 때문에 캠핑장 샤워실을 이용하지 않고, 아침에 목욕을 하고 가서 이틀을 버틴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언제나 밖에 나갈 땐 풀메이크업을 하는 나도, 캠핑 가는 날은 로션만 한 겹 바를 뿐이다. 어차피 씻지 못하기 때문이다. 호텔로 놀러 갈 땐 휘황찬란하게 옷을 여러 벌 챙겨가 내 짐으로만 캐리어 하나가 터질 지경이었는데, 이젠 내 것은 칫솔과 잠옷 한 벌이 전부다. 화장품도 옷도 빠지고 나면 내 짐이 없어서 어색할 줄 알았는데 아침에 동분서주하지 않아도 되고 아예 싹 마음을 비우니 오히려 더 개운하다. 그렇게나마 내 위의 껍질을 벗고 잠깐이라도 알맹이가 되어 돌아다니는 이틀은 새롭고, 특별하고, 무엇보다 단순해서 좋다. 마음도 생각도 너무 복잡한 사람인 내가, 캠핑하는 날 만큼은 단순하고 투명해지는 그 기분이 참 좋았다.
이러한 이유로 어느새 캠핑에 푹 빠져버렸다. ‘사서 고생’이지만 그 고생 뒤의 ‘휴식’ 이 값져서 좋고, 채움과 비움의 연습을 통해 순간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서 좋고, 나를 단순하게 만들어주어서 좋다. 무엇보다 캠핑이 우리 인생을 닮아서, 좋다. 이토록 공평하고 달콤한 행복이 또 어디 있을까. 그래서 말인데, 나 아무래도 한동안은 계속 캠핑이라는 술에 잔뜩 취해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