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사의 힘-샌드라거스
처음엔 그저 의아했다. 어떻게 이 책이 독서모임 주제도서로 선정되었을까? 아무리 가리는 장르는 없다지만, 그래도 소설 묘사하는 법을 가르치는 책이라니. 아무래도 핀트를 잘못 맞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은 오늘, 분명 아홉 명의 멤버들 모두 소설을 한 번쯤 써본 경험이 있을 거라는 나만의 결론에 이르렀다.
글을 쓰는 이들이라면 꼭 언젠가 그럴듯한 소설 한 편 세상에 남기고 싶다는 수줍은 욕망을 품곤 한다. 그게 현실이 되든 안 되든, 진짜로 펜을 잡든 안 잡든, 꿈꾸는 데는 돈이 들지 않으니 말이다. 거부감 없이 이 책을 펼쳐 들고 금방 완독을 해낼 수 있었던 건, 역시 내게도 빛바랜 원고가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묘사의 힘>의 가장 큰 장점은 두께가 부담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추상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는 대신 구체적이며 실용적인 적용방법만 담겨 있고, 매 챕터마다 연습문제도 실려있어 작가들이 퇴고할 때마다 펼쳐 보기에 딱 좋은 참고서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이 책 덕분에 나는 수년 동안 데스크탑 안에 고이 잠들어있던 몇 편의 초고와 재회하게 되었다. 오글거리는 표현으로 가득한 그 소설의 민 낯을 마주하는 일은 굉장히 부끄럽다 못해 불쾌하기까지 했지만, “이제 다시 소설을 써 봐야 하지 않겠어?”라는 가슴속 작은 불씨에 불을 붙여 주기에는 충분했다. ‘보여주기’ 대신 ‘말하기’로만 가득 차 있는 종이들, 영양가 없는 내용을 화려하게 ‘보여주기’로 치장한 문장들, 그리고 어색하기 짝이 없는 따옴표 안의 대화들을 마주하며 나는 군데군데 빨간 펜을 긋고 새로운 옷을 입혀주었다.
<묘사의 힘>은 초반에는 ‘보여주기’의 문장을 쓰기를 강조하고 반복하지만, 끝에서는 사실 좋은 소설은 ‘보여주기’와 ‘말하기’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라고 마무리한다. 우리 인생처럼, 아니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듯 역시 소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균형을 잘 잡는 게 답인 것이다.
이 책은 이름난 소설가들은 물론이거니와 골방에서 남몰래 수줍은 글을 쓰고 있을 방구석 소설가들에게도 좋은 선생님이 되어줄 것이 틀림없다. 올해가 가기 전, 당신의 잠든 원고도 먼지를 털어낼 수 있기를 슬쩍 기대해본다.
“여러분이 영화관 관람석에 앉아 영화가 시작하길 기다리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런데 영화는 나오지 않고 옆에 앉은 어떤 사람이 영화에 나오는 재미있는 부분을 몽땅 말해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런 일을 당하면 장담컨대 그리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은 영화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이 아니다. 직접 영화를 보면서 그 세계에 푹 빠져 현실 세상을 잠시 잊고 싶은 것이다. 여러분의 책을 읽는 독자의 심정도 마찬가지다”
<묘사의 힘, 샌드라거스> 중에서
“여기에서의 요령은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며 언제 ‘보여주는’ 것이 더 좋고(대부분의 경우가 그렇다) 언제 ‘말하는’ 것이 더 좋은지 판단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원하는 올바른 효과를 내기 위해 ‘말하는’ 곳과 ‘보여주는’ 곳을 신중하게 선택하고 두 가지 기술을 적절하게 조합하라.”
<묘사의 힘, 샌드라거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