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편의점 - 김호연
몇 달째 베스트셀러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소설 '불편한 편의점'. 얼른 읽어보라는 주변 사람들의 압박까지 더해져 나도 결국 그곳을 찾아가고야 말았다. 과도하게 친절한 설명, 장황한 문체 등으로 초반에는 몰입이 방해되기도 하였지만, 전체적으로 흥미진진하고 따뜻한 이야기였다. 한 인간을 망치는 것도 사람이고, 그 망가진 사람을 다시 살리는 것도 결국 사람이었다.
청파동의 어느 편의점 사장 염영숙 여사는 독고와 오 여사, 서현에게 편의점 일자리를 주어 그들의 생계를 돕고, 특히 노숙자였던 독고 씨는 염 사장을 통해 술을 끊고 기억을 회복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독고는 야간 알바로 일하며 오여사와 인경 등 주변 사람들의 이런저런 고민을 들어주고, 여러 명의 인생을 희망적인 방향으로 돕는다.
‘불편한 편의점’은 우리에게 말한다.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없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고. 도움의 손길을 받고 일어서 다시 누군가에게 도움을 나누는 독고 씨와 편의점 사람들처럼, 선행은 ‘전염’되고 점점 더 큰 눈덩이가 되어 굴러간다.
작게나마 누군가의 필요를 채워주는 일은 힘이 세다. 도움의 손길 하나가 생각보다 결정적인 한방이 되어 사람을 고치고 살릴 수도 있다. 내 작은 배려가 백만 불짜리 처방전이나 기적의 치료약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불편한 편의점’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사연 속에는 가족과 등지고 외면당하는 중년 가장의 설움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수험생의 하루도, 서울역 노숙자의 일과도, 사업을 번번이 실패하고 엄마의 돈을 노리는 철없는 아들의 인생도 골고루 녹아있다. 나이가 들어 여주인공 역에서 내려와 작가로 전향했지만 아직 그럴듯한 작품 없이 방황하는 어느 사십을 앞둔 여배우의 인생도 있다. 그들 중 한 명은 분명 우리의 모습이 틀림없다. 독자들은 그들에게서 묘한 동질감과 공감을 느낀다.
‘불편한 편의점’은 가족 간의 단절과 불통, 성형외과의 대리수술로 인한 의료사고 문제, 젊은이들의 취업난 등 이 시대의 어두운 면을 자연스럽게 노출시켜 문제의식을 제기하면서도, 소통과 공감,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귀한 소설이다.
점점 사막처럼 각박해져 가는 이 시대에 사람의 온기가 그립다면, 오늘따라 유독 외롭고 힘겹다 느껴진다면, 게다가 만약 당신이 사람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그리고 독고 씨에게 염 사장이 있어준 것처럼 우리도 누군가의 염 사장이 되어주기를 희망해 본다.
밥 딜런의 외할머니가 어린 밥 딜런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행복은 뭔가 얻으려고 가는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가 행복이라고. 그리고 네가 만나는 사람이 모두 힘든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친절해야 한다고.
역지사지. 나 역시 궤도에서 이탈하고 나서야 깨우치게 된 단어다. 내 삶은 대체로 일방통행이었다. 내 말을 경청하는 사람들이 널려 있었고, 남의 감정보다는 내 감정이 우선이었으며,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내치면 그만이었다. 가족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 주유소에서 나는 기름만 넣은 것이 아니라 아예 차를 고쳤다. 고쳤으면 떠나야지. 다시 길을 가야지. 그녀가 그렇게 내게 말하는 듯했다.
따지고 보면 가족도 인생이란 여정에서 만난 서로의 손님 아닌가? 귀빈이건 불청객이건 손님으로만 대해도 서로 상처 주는 일은 없을 터였다.
지난가을과 겨울을 보낸 ALWAYS 편의점에서, 아니 그 전 몇 해를 보내야 했던 서울역의 날들에서, 나는 서서히 배우고 조금씩 익혔다. 가족을 배웅하는 가족들, 연인을 기다리는 연인들, 부모와 동행하던 자녀들, 친구와 어울려 떠나던 친구들------. 나는 그곳에서 꼼짝없이 주저앉은 채 그들을 보며 혼잣말하고 서성였고 괴로워했으며, 간신히 무언가를 깨우친 것이다.
코로나에 이거 저거 다 불편하다 나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떠들잖아. 근데 세상이 원래 그래. 사는 건 불편한 거야.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