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한자력 - 신동욱
한 해가 간다. 그리고 이제 불과 몇 시간 뒤면 우리 모두 한 살을 더 먹게 된다. 언젠가부터 나이 먹는 것이 더 이상 아쉽거나 서글프지 않았는데(물론 주름이 늘어가는 것만 빼고) 아마도 그 시점은 내가 독서를 꾸준히 실천하기 시작한 때부터였던 것 같다. 쌓인 시간과 경험만큼 분명 지혜와 연륜이 생긴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고, 특히 인문학 책을 많이 읽으면서 좁은 나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보다 넓은 이해의 폭을 갖게 되었다.
오늘은 최근 읽은 책 <어른의 한자력>을 정리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려 한다. 한자의 중요성이 아직 강조되던 1980년대에 태어난 나는 일찍부터 천자문을 배웠고, 학창 시절에도 정식 교과목에 한자 수업이 있어 연필이 닳도록 한문노트를 썼던 기억이 난다. 다만, 그토록 오랜 시간을 한자의 늪에 살았음에도 그 시절 다 꿰고 있던 한자 중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태반이라는 사실은, 나를 적잖이 충격에 빠뜨리곤 한다.
<어른의 한자력>은 우리가 대부분 익숙하게 알고 있는 한자, 혹은 잘 알고 있었으나 지금은 희미해진 단어들로 구성된 책이라 부담 없이 읽기에 좋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한자를 따라쓰면서 다시 내 것으로 만드는 한 편, 저자의 인문학적 관점으로 한자를 재해석한 이야기들을 통해 직장생활, 관계, 사람, 인생에 대한 통찰을 엿볼 수 있다. 신동욱 작가는 한자를 통해 자기 계발을 도모해 보는 책이 한 권쯤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바람으로 이 책을 썼다는데, 저자가 목표한 바가 책에 잘 녹여진 것 같다. 나 또한 오래전에 만났던 한자들과 다시 조우하면서 반가움도 누리고, 한 해를 돌아보며 인생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더 의미가 깊었다.
2023년, 거창한 새해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해도 상관없다. 다만 당신만의 하루하루를 온전히 살아내면 된다. 그 시간을 통해 분명히 안목과 지혜, 혹은 인내와 강인함이 쌓일 테니. 그리고 새해를 맞이하며 읽을 책을 찾고 있다면 <어른의 한자력>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출발이 되어 줄 것이라 믿는다. 나처럼 자신만의 인생 한자와 인생스토리를 발견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삶을 뜻하는 한자 ’生‘은 땅 위에 새싹이 돋아나는 모습을 표현한 한자다. ‘死‘는 歹(뼈 알)과 匕(비수 비)가 합해진 한자다. 生은 땅처럼 그어진 一(한 일) 위로 생명이 솟아나고, 死는 一 아래로 뼈가 묻힌 듯한 모습이 대조적이다. 마치 종이 한 장 같은 一을 경계로 生(생)과 死(사)가 서로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알려주는 것 같다.
죽음이 늘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동시에 삶이 얼마나 감사한지도 깨닫게 된다. ‘省’(살필 성)은 少(적을 소)와 目(눈 목)이 결합한 한자지만, 갑골문에는 少가 아니라 生이 그려져 있다고 한다. 눈(目)으로 생(生)을 살피며 사는 것이 바로 省의 뜻이라니. 인생을 허투루 낭비하지 말고 스스로 잘 살피라며, 이 한자가 나에게 충고한다.
<어른의 한자력, 신동욱, 240쪽>
(출판사로부터 도서만 무상으로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