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또 지나갔다.
"엄마, 나 아빠한테 인사했어."
중학생 아들이 지난 목요일 퇴원을 했다. 병원에 있을 때가지만 해도 일부러 시간을 내어 방문한 아빠를 본체만체 해서 얼마나 민망했던지. 전화한통 해보라는 내 성화에 남편은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아들은 받지 않았다. 아빠가 얼마나 너를 걱정하는 지 아냐고 카톡이라도 한개 넣어주라는 말에 "아직 못하겠어."라던 아들이 퇴원하고 다음날인 금요일, 점심밥을 먹으러 집에 들른 아빠한테 "아빠, 왔어?"라고 인사를 했단다.
아들의 말다툼으로 남편이 심하게 욱한 적이 있었다. 그 '부자의 난'이 있었던 지 한달이 조금 더 지났다. 아들은 이제서야 마음이 풀린 모양이다. 아빠한테 인사로 말문을 튼 이후로 전과 같이 스스럼 없이 아빠와 이야기를 나눈다. 아들에게 화가 나긴 했지만, 자신의 표현이 과했다는 걸 아는 남편은 아들이 먼저 다가오자 좋아하는 눈치다. 이렇게 부자의 난이 종료되었다. 두사람 사이에서 눈치만 보던 딸과 나는 드디어 해방되었다. 괜히 같이 예민해져 있어 사소한 일에도 잘 부딪혔던 우리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매일 한 공간에서 살을 부대끼고 대면해야 하는 게 가족이다.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세상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이이기도 하다. 닮았지만 서로 다른 네 사람이 모여 있기에 마냥 행복할 수 만은 없다. 어떤 날은 세상 행복한 가족이었다가, 어떤 날은 제일 무서운 웬수지간이 되기도 한다.
"사는 건 원래 힘든거예요."
요즘 평탄하지 못했던 우리 집 이야기를 들은 H언니가 나에게 말했다. 원래 힘든 게 기본 값이고, 다들 그렇게 산단다. 나만 힘들다는 생각만 하지 않으면 된단다.
"좋아하며 살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꼭 그렇게 서로 힘들게 하며 살아야 해요?"
나는 따지듯이 물었다. 어차피 사랑하는 사이이고, 매일 마주해야 하는 사람들인데 꼭 지지고 볶고 살아야 할까? 감정적으로 예민한 나는 좋은 게 좋다. 평화로운 분위기가 받쳐줘야 내 할 일도 마음껏 할 수가 있다. 서로 싸우고 불편한 기운이 감도는 분위기에서 나는 무너져내린다. 지난 한달 남짓 시간 동안 서로 냉랭한 두 사람 보다 오히려 그 사이에 끼어있는 내가 더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여러 상황들과 겹쳐서 아무튼 힘든 시간을 보냈다. 도저히 웃음이 나오지 않고,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도 눈물을 흘렸다. 이제 상황이 종료되었으니 조금은 웃을 기운이 난다. 살아갈 힘도. 바다가 늘 잔잔하지만은 않듯이, 우리집 분위기도 늘 잔잔할 수만은 없다는 걸 인정해야겠다. 이런 날도 저런 날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