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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베카 May 17. 2022

편집자는 내 글에 어느 정도 손을 댈까.

            

"말씀 주신대로 주어 '나는, 내가' 등이나 쉼표, 말줄임표 등은 저희가 많이 뺐어요.     

독자 입장에서 볼 때 주어가 생략되어도 충분히 이해 가능한 부분이 있고, 말줄임표나 쉼표가 너무 많으면 가독성이 떨어지는 부분도 있어서 어느 정도 삭제했는데요.     

작가님 입장에서 보실 때 작가님의 스타일이 많이 사라져 보이시려나 싶어서 조심스럽긴 한데, 그래도 보시면서 이 부분엔 주어나 말줄임표가 꼭 들어갔으면 좋겠다 싶으신 부분은 체크해주시면 최대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편집자에게 책 인쇄 전 마지막 PDF 파일의 수정본을 보내며 보낸 내 메일의 답변이다.

나는 이렇게 보냈었다.     


"글투(?)가 조금 달라서인지, 주어인  나는, 내가 이런 부분이 좀 없이 편안하게 읽히도록 편집하신 것 같아요

몇 개의 문장에는 '나는, 현민이는' 이런 부분을 넣었는데 혹 필요 없으심 빼도 될 듯요"


예를 들면 이렇게 고쳐졌다.     

‘나는 밥을 먹었다. 미역국도 먹었다. 진미채는 별로였다.’

가 나의 ‘글투’였다면.

‘나는 밥을 먹었고 미역국도 먹었다. 하지만 진미채는 별로였다.’

로 고쳐졌다.     


물론 많은 부분 원문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하나의 문장을 손 대면 뒤의 부분까지 후드득 떨어지는 문단은 내가 쓴 그대로 실렸다.     


나는 생각해 보았다.

내 글투가 건조한가 보다. 가독성이 떨어지나 보다.

흠... 편안하게 읽히면서 작가의 의도가 읽히는 글이란 어떤 글일까.     



          

편집자는 글을 정말 잘 고쳤다. 글을 편집자에게 보낼 때까지, 나는 내 글을 읽고 고치고 또 출력해서 읽고 고치곤 했다. 그럼에도 나는 나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데 고쳐진 글을 보며 아, 내가 얼마나 두서없이 글을 써서 보냈는지 알게 되었다. 편집자에게서 전문 작가의 향기가 났다. 어떤 문장에서는 나보다 더 나의 마음을 잘 표현하는 어휘 사용과 유려한 문장 실력에 탄복하기도 했다. 편집자님을 따로 만나 문장 강화 훈련을 받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무나 편집자 하는 게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마도 이 직업을 하면 엄청나게 화가 날 것 같다. 작가라는 사람이 글을 이렇게 써서 보내주면 어떻게 해. 나한테 이걸 다 고치라는 거야. 이야기를 두서없이 쓰면 문장이라도 바르게 쓰던가. 이렇게 비문이 많이 있는 걸, 내가 무슨 글쓰기 선생님이냐고. 라는 생각. 하지만 작가라는 인간은 무슨 자존심인지, 자신의 글에 손댔다고 역정이나 내고. 오, 상상만으로도 미간이 찌푸려지고 혼잣말이 나온다. 내 진짜, 이 책만 하고 안 한다...라는.      


실제로 나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이후로 2년 동안, 내 책의 편집자가 이직을 하면 어떻게 하나, 나는 다른 편집자와 합을 맞추어야 하나... 하는 걱정을 한 적이 여러 번 있다. 그러나 나와 일을 시작한 편집자님은 그간 회사를 잘(?) 다녔고 대리님에서 과장님으로 승진도 했다.     




“이번 내용은 가슴을 울리는 내용이 많아서 곱씹으면서 읽었어요.”

응? 내 글을 곱씹으면서 읽어... 주었다고요? 누가 내 글을 제발 좀 빨간펜 선생님처럼, 문단의 끝까지 읽었다가 다시 첫 문장으로 돌아와서 처음부터 다시, 내 글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상상하며, 그리고 아, 하며 잠시 공명하는 시공간을 만들어주길 나는 또 얼마나 간절히 바람 했던가. 그런데 그렇게 해 주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원고 상에서 쉼표와 말줄임표, 단어 반복 사용 부분들이 조금 있는데요.

아무래도 쉼표가 계속 있으면 독자분들께서 읽으실 때 흐름이 깨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부분들은 제가 보면서 조금씩 다듬었습니다. "     

편집자는, 건조체 글투를 쓰는 나에게 ‘에세이란 말이야, 이렇게 쓰는 거야.’라고 가르치려 들지 않았다. 대신 조심스럽게 고쳐주었다.          


편집자는 나의 글을 2년여 정도 읽어왔다. 단어 하나하나, ‘,’ 하나하나, 말줄임표 하나하나를 문맥에 맞도록 수정해왔다. 아마도 나에게 내적 친밀감을 느끼고 있을 것만 같다. 아무리 일로 읽는 글이라고 해도 강제로라도 자꾸만 자꾸만 읽다 보면 그 글을 쓴 사람을 이해하게 되곤 하니까.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부끄럽다. 누구보다도 나를 잘 파악하고 있을 사람 이리라 여겨진다. ‘척 보면 압니다.’ 하며, 왠지 내가 글을 이렇게 써 올 거라 예상했던 글쓰기 반 선생님처럼 말이다. 우리는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왠지 대면하게 되면 ‘아... 이렇게 생겼을 거라 상상했는데, 딱 그렇네요.’라며 단박에 서로를 알아볼지도.     

 

"그럼 4장 원고도 손꼽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

무엇보다도 그녀는 나를 ‘쓰게’ 했다. 그래, 기다려줘. 누군가 내 글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지금까지의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응축되어 있었던 거야. 라는 내적 힘이 생기곤 했다. 기대, 기다림. 내가 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나에게 하고 있다니. 나는 더 나은, 이전의 글보다 미세하게라도 더 나은 글을 써야만 했다.     

          



책이 나오면, 저자와 편집자가 동일하게 표지에 찍히면 어떨까. 

‘저자 박혜란, 편집자 OOO'     


나만큼이나 내 글에 진심이었던, 그래서 내 글이라고 하기가 좀 민망한 - 편집자와 함께 쓴 글.     


내 글의 소재를 공개할 용기와 그것을 쓸 용기, 누군가와 함께여서 가능했다.

편집자님께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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