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인사대천명
어? 잘못 봤나. 왜 순위가 안 나오지. 아침이라 아직 집계가 안 된 건가... 가 아니고 내 책은 순위권 밖으로 밀려나게 된 것이었던 것이었다. 5월 말에 발간된 나의 책 ‘아이 친구 엄마라는 험난한 세계’는 국내 최대 온라인 서점인 YES24의 ‘국내도서 > 에세이 > 삶의 자세와 지혜’ 섹션 100위 안에 장장 두어 달 정도 랭크되어 있었다! 나는 눈을 뜨면 YES24앱을 켜고 내 책의 판매지수와 순위를 확인하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판매 3주 만에 무려 20위 안에 드는 쾌거를 달성했다! 그러나... 하루인가 이틀인가가 지나자마자 순위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왜지? 뭐지? 왜 더 잘 안 팔리지? 집계가 잘 안 되는 것일까. 나는 구글링을 했다. 검색어는 ‘YES24판매지수 계산방법’. 몇 개의 글이 나왔다. 선배 에세이스트로 사려되는 분의 나름 판매지수 계산 방법을 역추적하는 글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검색 결과는 ‘회사 방침임으로 공개 불가’인 것이 주였다. 내 이럴 줄 알았으면 IT 개발자 시절에 YES24 다니는 개발자 하나 알아둘 걸...
그러던 나는 출판사에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니 책이 나왔으면 그래도 한 세 달은 관심을 가지고 광고를 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럼 책이 잘 팔리니 출판사도 좋고 나도 좋고. 그런데 내 책의 마케팅은 아마도 2주 정도 바짝 온라인으로 이루어지고 끝이 났다. 구매 주요 타겟층이라 추측되는 전국 맘카페에 서평 이벤트가 주요 마케팅이었다. 사실 이 정도도 감사한 일인 진데, 책 판매량이 줄어드니 출판사에도 섭섭해지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 책 광고 피드 댓글에 ‘하다 하다 이제 이런 책도 나오네그려’, ‘작가가 진짜 쓸 게 없었다보다.’라는 댓글마저도 그리운 때가 오고야 말았다. 나의 책은 이미 잊혀지고 있다. 아이가 등원한 후, 아직도 졸린 머리를 깨우기 위해 아메리카노 샷 추가를 해 가며 10개월 정도를 꼬박 써온 나의 책은 이제 욕마저도 듣지 못한 채 경기도 파주 어디 즈음이라고 예상되는 인쇄소 창고에 먼지들을 친구 삼아 가만히, 작은 미동도 허락되지 않은 죄수인 양 ‘꼼짝 마라’하고 있을 테지. 먼지를 훌훌 털고 밝은 세상의 햇살을 가득 쐬며 택배 아저씨의 무심한 휘파람 소리를 들으며 어느 집 앞에 툭 하고 던져지길 바람 하는 작가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지만 이것은 엄마인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아니란다. (이쯤이면 정신이 안드로메다 가기 일보직전. 아니 한 발 살짝 들여놓음.)
그러다가 문득 제목이 걸렸다. 책의 제목을 ‘아이 침구 엄마라는 험난한 세계’가 아니고 ‘초보 엄마라는 험난한 세계’로 했으면 좀 더 편안하게 지었더라며 더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지 않았을까.
그때 뇌를 스쳐 지나가는 편집자의 한 마디.
“요즘은요, 연예인 에세이 아니면 좀... 작가님, 시간이 좀 걸려요. 입소문 나는데...”
아이씨, 연예인. 내가 연예인이랑 경쟁하는 날이 올 줄이야. 그러고 보니 개그맨, 가수, 그리고 방송인 누가누가 쓴 에세이는 판매지수가 만단위였다. 이 얼굴에 이 몸에 이 나이에 연예인은 고사하고 연예 자체도 하기가 힘들어서 겨우겨우 모태솔로 탈출하고 결혼했건만.
그러다가 의식의 흐름대로 연예인의 삶으로 생각이 넘어갔다. 연예인이라... 연예인. 대중의 선택을 받는 건 연예인도 마찬가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기자라 치면 보조 출연자로도 선택되기가 간절한 시절이 있을 것이고. 가수는 또 어떨까 싶었다. 요즘 채널을 돌리다 보면 하 비슷하게 생겨서 누가 누군지 구분하기도 힘든 아이돌 가수들을 보면, 그 어린 친구들 마음은 또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슷하게 이쁘고 비슷하게 춤 잘 추고 비슷하게 노래 잘하는데 누구는 데뷔를 하고 누구는 못 한다. 또 어렵사리 소속사의 선택을 받아 데뷔를 했다 하더라도 이제부터는 대중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누군가는 나보다 못 생기고 노래도 못 하는데 인기를 한 몸에 받는가 하면,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인기를 누리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대중에게 나를 어필하고 뽑아달라고 하고 기억해달라고 사랑해달라고 하는 것에 어떤 정도가 있는 것일까.
대형 영화 제작사 대표가 방송에 나와서 한 말이 기억난다.
“처음부터 성공할 시나리오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성공하지 않을 요소를 하나하나 없애면서 작업하는 게 영화죠.”
사실 그렇게 전문가들이 모여서 수많은 논의 끝에 만들었다 해도 어떤 작품은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한다고 했다.
어쩐지. 편집자가 내가 가장 아끼며 쓴 에세이 두 꼭지를 스리슬쩍 빼더라니. ^^
나는 대중에게 내 책을 어필할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지금이라도 내 책이 조금이라도 더 잘 팔리기를 바람 한다. 이 갑갑함. 모든 초보 작가의 마음일 테지. 그리고 아마도 많은 연예인 지망생의 마음일 것이다. 거 참, 이 외모에 연예인 지망생과 동류라 생각하니 조금 설레고 마음도 위로가 되네.
Pick me Pick me Pick me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