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한참이나 먼 이 도시에서 약속장소까지 도어 투 도어 2시간 정도 걸릴 것이라고 예상되는 부담감과, 더불어 살짝(매우) 지긋지긋했던 육아와 살림에서 비켜나 애정하는 친구들과 즐거운 수다와 맛난 음식이 주어지는 황금 같은 시간에 대한 설렘과, 동시에 마음 같지 않은 체력의 부침에 안타까움이 스멀스멀 일어나는 서울행 광역버스 안에서의 잡념들. 에라이. 여행 간다 생각하지모. 여행엔 김동률이지. 오랜만에 유선 이어폰을 꺼내 음악을 들어본다.
버스에서 내려서 택시를 잡아탄다.
- 저, 여기 가 주세요
- 허허. 여기가 어디요?
- 아... 네... 아 그러니까 한남동인데 그... 무슨 미술관 가까운 곳이요
- 아. 리움. 알겠소
택시도 오랜만에 타니까, 말이 왜 이리 꼬이나. 택시 드라이버 아저씨는 '해브 어 굿 새러데이 나이트'라는 멋진 멘트를 날려주신다. 이야~ 아저씨 센스 귯.
나의 이런 설레는 마음과는 다르게, 친구들과의 대화는 이내 꼬이기 시작한다. 뭐지? 뭘까. 애먼 화장실만 다녀오게 되고. 집에 가고 싶다는 마음을 꾹꾹 누른다. 이게 얼마 만인데, 또 언제 본다고. 하지만 계속해서 뭔가 마뜩지 않은 대화만 오고 간다.
무려 2시간 반을 웨이팅해서 영접하게 된 인터네셔널 시티 서울 핫 플레이스 부촌 한남동의 음식도 맛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고. 이 순간에도 기분에 따라 맛이 결정되는 게 인간인가. 이 따위를 생각하는 나에게도 지치고... 여차저차 만남은 끝이 나고 나는 다시 택시를 타고 또 버스를 타고 집에 온다.
아. 우리. 위험하다. 위험할지도 모르겠다.
지난 10여 년이 넘게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우리 사이엔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었다. 우린 함께 아무것도 하질 않았으니까. 우린 다들 주어진 각자의 삶을 살아내는데 총력을 다했다. 나는 결혼과 육아에 적응하고, 또 다른 친구는 사회생활에 적응하고, 또 다른 친구는 대학원 생활에 적응했으리라. 나는 친구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끽해야 1년에 두어 번 정도 만나 짧게 브리핑을 듣는 수준으로 알게 되었고, 그 또한 그저 '그렇구나.' 정도로만 이해했다. 나 사는데 내일의 에너지를 당겨 써도 감당이 될까 말까한 나날들이 있었기에, 나는 그녀들의 속속들이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무탈하면 다행이었고, 탈 하더라도 잘 버티기만을 바랬다. 아마도 우린 우리 일상에 일어났었던 그 수많은 '탈'들을 서로에게 말하지 않거나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 탈들이 지나간 후에야, 어떤 무용담처럼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마저도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렇게 친구들과의 만남이 파한 후, 광역버스를 타고 나 사는 곳에 내릴 때면, 나는 짧은 여행을 끝낸 자의 안도감 비스므리한 것을 느끼며 지긋지긋하다고 투덜대곤 했던 나의 스위트홈에서 잠을 이루었다. 따스하고 편안하게 아주 푹.
나는 '현재'의 친구의 삶을 모르는구나. 내가 끌어안고 있는 것은 우리의 20대 시절의 추억이지, 친구들의 현재가 아닐 수도 있겠구나. 우리 좀 더 자주 만났어야 했나. 그게 가능이나 했었나. 약속을 잡을라 쳐도 몇 달 후에나 가능했던 스케줄들.
우리가 사는 지점은 생활자로 하루하루 충실히 '일상을 살아내다 보니' 달라져 있었다. 우리, 달라졌구나. 이 다름이 나는 조금 버겁구나.
위험을 감지했다면, 조금은 멀어져 있어도 좋겠지.
꼭 끈적한 '우정'이어야만 친구일까.
그냥 '정'만으로 조금 허우적거려도, 그저 허우적거리는 대로 내버려 둘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