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래 동화중에 '저승에 있는 곳간'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승에서 사람들을 도와주거나 베풀거나 하는 등의 좋은 일을 하면 저승에 있는 곳간에 그 좋은 일을 한 것이 쌓이게 된다. 그러면 이승에서 그 곳간에 있는 것을 사용하면서 살게 된다는 이야기다.
엄마, 내 저승에 있는 곳간에는 뭐가 있을까?
- 음...?
엄마 엄마 저승에 있는 곳간에는 뭐가 있게?
- 글쎄...
아마도 병원비가 있을 거야.
- 아...
엄마, 엄마 저승에 있는 곳간에 뭐가 있는지 알았어.
- 뭔데?
내 코에 들어갔던 색연필 조각. 그거 엄마가 빼줬잖아.
- 아이고. 그러게. 엄마 저승 곳간에 너 예전에 이마에 혹 난 거 응급실에 데려간 거, 폐렴 걸렸을 때 같이 입원해 준거. 그런 거 다 들어 있지. 그리고 아기 때 황달 걸려서 병원 데려간 거. 심장에 구멍 있다고 해서 초음파보고 한 거. 그런 거 다 들어 있겠다 그치? 근데 엄마들은 다 그래. 아이가 태어나면 돌봐주는 게 당연한 거니까.
그래? 엄마 내 저승에 있는 곳간에는 사랑이 들어 있을 거야. 내가 태어나서 엄마에게 엄청나게 많은 사랑으로 보답해줬잖아?
- 아. 그렇지...
이 녀석. 뭐지. 인생 N회차인가.
하루에도 어떻게든 눈 맞춰 보려고 애쓰고, 손 잡고 싶고 안고 싶고.
이렇게 질리지도 않게 사랑하고 싶은 존재가 있다는 게 참 신기하다.
매 번 아침마다 학교 가기 전에 끌어안아주는 녀석, 누가 나를 이렇게 좋아해 줄까.
엄마, 그거 알아? 엄마는 누구를 제일 좋아하게?
- 현민이? 아빠?
아니. 엄마 자신. 엄마는 엄마를 제일 좋아하잖아.
- 아. 맞아.
아이는 알고 있는 걸까. 자신은 언젠간 날아갈 테니, 엄마는 엄마 자신을 제일 좋아하고 살아야 한다고. 자꾸만 까먹는 나에게 자꾸만 이야기해 준다. 나는 내 거고 엄마는 엄마 거라고.
아직은 세월이 많이 남았으니, 그 세월 동안 우리 미련 없이 사랑하고 아쌀하게 헤어지자.
아들은 아들 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