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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수민 Nov 18. 2023

나의 첫 기사

제6회 뉴스통신진흥회 탐사 심층 르포 공모전_우수상 수상


1. 계기


'왜 기자가 되고 싶은가'


끈질기게 도망쳤던 질문이다.

가장 본질적인 질문이지만 동시에 마주하기 두려운 질문이었다.

오랜 시간 기자를 꿈꿔왔고 바쁘게 기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왜 기자가 되고 싶은지에 대한 나만의 답을 갖고 있지 못했다.

스터디 과제와 토익, 신문 발제 등등 하루하루 해야 할 일은 많았고, 그런 일상적 과제들에 치여 나는 '열심히' 살고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살았다.


하지만 사실 나는 끝없이 도망치고만 있었던 것 같다.


언론사 공채가 멈출지 모르고 쏟아지던 하반기에 동아일보 공채를 기점으로 나는 과감히 공채를 포기했다.

'나만의 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빠르게 무언가를 증명해야 하는 취업판에서 순진한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이도저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잠시 속도를 줄이고 나만의 답, 나아가서는 나만의 스토리를 갖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도전해 볼 만한 현실적 타협안이 '공모전'이었다.

'직접 해보자'라는 생각이 가장 컸다. 아무리 책상에 앉아서 생각해 봐도 답이 나오지 않으니, 직접 취재도 해보고 기사도 써보면서 찾고 싶었다.

내가 기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SBS 서류에서 탈락한 날 바로 스터디원들에게 전화를걸어 공모전 참여를 제안했다. 그중 한 명이 스케줄이 맞아 함께하게 되었고, 다른 팀원 한 명은 카페 '아랑'에서 구했다.


그렇게 총 세 명이 공모전을 준비를 시작했다!



제 6회 뉴스통신진흥회 탐사 심층 르포 취재물 공모


참고로 뉴스통신진흥회 공모전은 추적단 불꽃의 'n번방 보도'가 최초로 세상에 나온 공모전이다.

(심사위원 분의 말에 따르면 뉴스통신진흥회 공모전 상이 한국 미디어학부 학생들 사이에서 '대학생 퓰리처상'이라고 불린다는데,,, 사실인지는 모르겟삼^^,,,,)



2. 주제 선정

가장 어려웠다.

스터디원과 내 자취방에서 노트북으로 구글링을 하며 취재 아이템이 뭐가 있을지 머리를 쥐어짜며 생각했다. 이때 생각하면,, 그저 답답함과 막막함의 연속이었다.

무엇보다 우리가 참여하는 공모전 출품작 조건이 '언론매체나 연구결과 등으로 보도 및 게재, 발표된 사실이 없는 신규 취재물'이어서 더 어려웠다.

우리가 알고 있거나 검색으로 찾은 여러 사회 문제들은 이미 기성 언론사에 보도한 내용들이었다.


큰 주제를 먼저 잡고, 구체적인 취재 주제는 현장에서 찾기로 했다.

우리가 처음 잡은 대주제는 <지방소멸>이었다.


<지방소멸>에 대한 개인적 관심은 '저출생 고령화' 문제에서 시작됐다. 스터디에서 '저출생 고령화'라는 주제로 논술을 썼던 적이 있는데 당시 논제를 공부하면서 적잖이 놀랬었다.


'저출생 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 이에 따른 지방소멸의 심각성은 높았다. 나는 본가도 수도권이고 학교도 서울에서 다녔다.매일 숨 막히는 인구 밀도와 높은 취업 경쟁률에 눌려사는 나에게 인력난으로 소멸하는 지방의 현실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문제는 한국을 지탱하는 여러 산업들이 지방에 있다는 것. 결국 지방소멸은 수도권 소멸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였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지방소멸과 관련한 주제들을 찾았다. 지방대학 폐교와 지방 산업의 인력난, 지방 내 고령화 등등 뻗어지는 주제는 다양했다. 그중에서도 취준생이라 그런지 지방 산업의 인력난에 제일 눈길이 갔다. 특히 제조업과 농업 같은 지방의 3D 업종은 사람 구하기가 별따기라고 한다.


이러한 지방 산업을 지탱하는 인력이 바로 '이주노동자'였다. 이주노동자는 내국인들이 기피하는 직종과 지역에서 묵묵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산업을 이어가고 있는 소중한 인력이었다.


문제는 처우다.

우리나라는 이주노동자의 노동력이 가진 가치에 비해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식과 법제도가 열악하다. 오히려 이주노동자를 '모셔'와야 할 판에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주거환경과 인권침해는 제자리걸음이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지방소멸>에서 <이주노동자>로 취재 주제를 좁혔다.


구체적으로는

'이주노동자가 가진 노동력의 필요성이 높아지는데도 불구하고, 처우가 개선되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라는 문제의식이 취재의 출발점이었다.


3. 취재원 구하기

가장 힘들었다.

전국 이주민 센터를 (거의) 전부 리스트업 해서 메일을 보냈다. 대략 20~30군데 정도였다.


두 세 곳 정도에서 회신이 왔다.

이후에는 전화와 문자를 돌렸다.(메일답장 기다리기 답답해서ㅠ)

생각보다 거절을 많이 당해서 절망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정식 기자 신분도 아닌 대학생들이 공모전을 준비로 취재를 부탁하는데 선뜻 취재에 응해주는 건 쉽지 않았을 거다.

그래서 취재에 응해주신 몇 취재원 분들에게 더더욱 감사했다..


결과적으로 취재했던 취재원은

1. 포천이주노동자센터 김달성 목사님

2. 충남아산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우삼열 소장님

3. 이주노동자노동 조함 우다야 라이 위원장님

4. 지구인의 정류장 김이찬 대표님

5.  충북 음성 노동인권센터 박윤준 실장님

이었다.


김달성 목사님과 우다야 위원장님은 우리가 실제 이주노동자 분들을 만날 수 있게 연결해 주셨다.

선의로만 취재에 응해주신 감사한 분들이었다.

그분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정말 기사를 잘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용산역 집회에서 처음 만난 우삼열 소장님,, 이때 진짜 더웠다.




4. 취재

여러 관계자 분들을 먼저 만나기는 했지만, 사실 우리 기사의 본격적인 취재는 이주노동자 분들을 만나면서 시작된 것 같다.

포천, 수원, 목포, 용산, 충남 등등 전국을 오가며 이주노동자 분들을 만났다.

이주노동자에게 직접 연락을 해서 만나기는 힘들었고, 대부분 취재하면서 만난 센터 관계자 분들이 만날 수 있게 도와주셨다.

포전이주노동자센터에서 인터뷰했던 장면


구체적인 취재 내용은 대부분 기사에 담았기 때문에 따로 적을 내용은 많지 않을 것 같다.

> 우리 기사


현장 취재 외에도 고용노동부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자료를 확보하면서 취재를 같이 이어갔다.

원래 정보공개청구에 답을 안 해주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우리는 청구했던 정보를 다 받았다.

정보 청구 이유를 품을 많이 들여서 적었고, 청구 내용을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적어 요청했다.

생각보다 청구 이후 정보를 받기까지의 기간이 꽤 길었다.(한 3주 정도 걸렸다)


블라인드 한 자료는 최종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



5. 기사 작성

회의의 연속. 그야말로 회의 지옥.

기사 주제를 날카롭게 하고, 기사를 작성하는 모든 과정을 팀원과 같이 했다.


그러다 보니 회의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회의는 매주 2-3번은 고정적으로 했지만, 중간중간 생각나는 게 있거나 궁금한 것, 취재 관련해서 생기는 여러 일들은 팀원들과 계속 공유해야 했기 때문에 거의 매일 연락한 것 같다. 어떤 내용을 최종적으로 기사에 담을 건지부터 기사의 순서, 구체적인 기사 구성과 대해 계속 회의했다. 기사를 쓰면서도 취재는 계속했다.


기사 작성을 하면서 느낀 점은 수많은 취재 내용 중에서 우리 기사 주제에 맞는 내용을 거르는 게 상당히 어렵다는 점이다. 아무리 안타까운 사연이나 기사화될만한 내용이어도 우리 기사 주제에 맞지 않으면 과감히 덜어냈다. (이 과정이 계속 욕심을 버려야 하는 일이라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최종 기사에 담은 취재 내용은 실제 나갔던 현장 취재의 7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매끈한 기사 뒤에 드러나지 않은 기자들의 무수한 노력들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하나 느낀 점은 팩트체크의 중요성.

기자들이 왜 이렇게 팩트체크에 목숨을 거는지 절실히 느꼈다. 당연히 안다고 생각했던 내용도 막상 글로 쓰려고 하니 한 줄을 쓸 때도 '이게 맞나..?'라는 의구심이 든다. 정확한 사실이 아니면 한 줄도 쓸 수 없다. 이러다 보니 나중에 취재할 때는 취재원에게 약간 신경질적으로 사실관계를 묻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나의 부족함이다)


위의 과정이 다 갖춰지고 나면, 사실 기사 작성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기사라는 게 대단한 문장력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정확한 사실로 드라이하게 쓰면 됐다. 다만 유의할 점은 기사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게, 한마디로 딴 길로 새지 않게 계속 생각하면서 써야한다는 점이다.


최종제출 3~4일 전부터는 매일 회의했고, 이틀 전부터는 하루종일 회의했다. 그때부터는 새로운 내용을 담거나 취재를 하지는 않았고, 구글 독스에 기사 내용을 올려놓고 같이 문장 하나하나 다듬으며 가독성을 높였다. 먹고 자는 시간 빼고는 계속 회의하면서 기사만 수정했던 것 같다.(살짝 토할 뻔했다ㅠ)


6. 결과

수상에 대한 기대나 욕심은 하나도 없었다.

나포함 팀원들 모두 공모전 경험이 없었고, 심지어 나는 언론이나 미디어 전공도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 내가  제대로 기사라는 걸 썼는지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다만, 직접 내가 문제의식을 갖고 취재를 시작하고 기사를 작성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큰 의미였기 때문에 그걸로 만족했다. (솔직히 당연히 수상은 못할 거라 생각해서,, 수상작 발표 나면 우리 기사는 오마이뉴스나 다른 플랫폼에 올려야겠다는 계획까지 세우고 있었다...)


그래서 수상작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솔직히 믿기지 않고 얼떨떨했다. 그동안 언론고시를 준비하면서 고생했던 게 생각나서 전화를 받고 도서관 복도에서 계속 울었던 것 같다.


수상의 감격보다는 안도감이  컸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하자면 수상발표 직전에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가만히 있어도 심장이 크게 뛸 정도로 하루종일 마음이 불안으로 가득했고 몸도 정신도 많이 지쳐서 언론사 입사 준비를 이제 그만두어야겠다고 결심했었다. 수상 발표 하루 전날 언니한테 울면서 이번에 쓰고 있는 공채를 마지막으로 이제 그만두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수상 소식을 듣게 돼서 뭔가,, 잘하고 있으니 멈추지 말고 더 정진하라는 하늘의 뜻(?) 같기도 했다.


뉴스통신진흥회 시상식

우리는 우수상을 수상했다..!


7. 개인적 소회


'나는 왜 기자가 되고 싶은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고 싶어서 시작한 도전에서 참 많은 걸 얻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번 도전을 통해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저 질문에 대한 정해진 답은 없다는 거다.


어쩌면 나는 '기자'라는 직업이 가진 본질적인 질문에 대해 완전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그게 두려워 늘 도망쳤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매일 머리를 쥐어짜며 작성했던 논술들이 무색하게 정작 자기소개서는 한 줄도 제대로 쓰지 못했던 이유기도 하다.)


'나는 왜 기자가 되고 싶은가'

이 질문은 정답이 아닌 해답을 요구하는 질문이다.

기자란 무엇이고, 나는 왜 하고 싶은지. 무엇보다 기자가 될 자격이 있는지.

계속 부딪히고 끊임 없이 고민하는 노력을 요구하는 질문이지 않을까 싶다. 따라서 이 질문은 앞으로 내가 기자를 준비하는 시간 내내, 어쩌면 기자가 된 후에도 나 스스로 계속 던져야 하는 질문일 거다.


그래서 이제 도망치지 않으려 한다. 분명 틀릴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형편없이 들릴 수도 있겠지만, 또 심지어는 내 스스로도 생각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용기를 갖고 더 담대히 마주하려 한다.


내가 왜 기자가 되고 싶은지.

나는 어떤 기자가 되고 싶은지.


이게 공모전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성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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