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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현철 Oct 24. 2023

나는 양식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해외에서 꼭 먹어보고 싶은 한식

나는 양식이 잘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 근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외식거리가 주로 햄버거, 스파티게, 피자이며 치즈를 좋아하고 빵을 잘 먹었기 때문입니다. 가끔 여러 이유로 혼자 식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전 어김없이 패스트푸드 햄버거 매장을 찾습니다. 예전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햄버거만 보고도 어느 브랜드의 무슨 버거인지 맞추는 진기명기 영상 콘텐츠가 있었는데, '나도 저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햄버거를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치즈는 어디 넣어도 맛있는 요리의 재료라 가능하면 무조건 추가하는 편입니다. 볶음밥이요? 네 당연히 일 순위입니다. 스파게티도 이왕이면 치즈 오븐 스파게티가 좋죠. 다른 사람과 식사 약속을 잡을 때도 비슷합니다. 양식의 장점은 일단 크게 싫어하는 사람이 적고, 먹기가 깔끔하며 분위기가 편안합니다. 누가 구워야 하거나 너무 많은 먹을거리에 부담되지도 않습니다. 


이러이러한 이유로 나의 양식 예찬은 그동안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이번 유럽 여행을 준비하면서 많이 고민하지 않은 부분이 바로 음식이었습니다. 다른 나라보다 양식의 본고장인 유럽으로 가는데, 음식이 뭐가 문제일까? 햄버거 샌드위치만 먹고도 일주일은 버틸 수 있는데, 스페인과 포르투갈, 특히 미식의 나라 프랑스 아니던가? 그래서 아주 자신 만만하고 당당하게 여행길에 올랐었습니다. 그랬던 나의 포부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3일을 넘기지 못하고 처참히 무너졌는데, '더 이상 못 먹는다'라고 선언한 것. 

스페인에서 벌써 한계가 임박했습니다. 한식이 너무너무 그리워 구글 맵을 켜고 한식당을 검색한다. 폭풍검색으로 찾아낸 바르셀로나의 한식당 모두. 다행히 늦은 시간까지 영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식당에는 우리와 같이 여행에 지친 한국인 또는 현지에 사는 현지인이 대부분일 것으로 예상했는데, 예상과 다르게 현지인이 꽤 많았어요. 다양한 미디어의 효과로 한식이 건강식이라는 이미지가 생겼다고 하셨습니다. 

덕분에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랠 수 있었습니다. 

"한식 많이 안 가져왔어요?"

사장님이 물어보셨습니다. 왜, 다들 여행 가방에 컵라면이며 깻잎이며 캔으로 된 반찬들과 김치들을 챙기지 않느냐는 말씀이셨죠. "그러게요"하고 애꿎은 미소만 보이던 찰나, 주문했던 비빔밥이 등장했습니다. 돌솥에 담겨 나온 비빔밥은 정말 먹음직스러웠어요. 스페인에서 먹어보는 비빔밥이라니 감회가 새롭다는 표현은 이럴 때 딱 어울리는 말입니다. 

이때부터 시작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먹기에 바빠서 사진을 찍을 여유가 없었습니다. 이후 주문한 김치찌개와 떡튀김이었는데 정말 하나같이 잊을 수 없는 감탄의 맛이었습니다. 분명 한국에서 먹었던 것과는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곳 식당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구글 후기에 올라온 한식당 후기에 "정말 맛없다, 그런데 정말 맛있다.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는 글이 무슨 뜻인지 정말 공감되었습니다. 

너무 맛있게 먹는 우리의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공깃밥 더 드릴까요? 하고 묻는 사장님. 인심은 고마운 마음이었으나 도저히 더 먹을 수 없어 사양하고 일어섭니다. 계산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사장님께서 불러 뒤돌아보니 명함 하나를 주십니다. 명함을 보니 스페인에 있는 한국식품점의 주소가 적혀있습니다. 가슴이 따듯해집니다. 고마운 마음이지만 오늘이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날임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고마운 마음만 그래도 가져갑니다. 


음식은 단순한 먹을거리가 아니다, 그 민족의 얼이고 정성이다


어느 문화인류학자의 말이 이렇게나 동의가 됩니다. 우리 민족의 얼과 정성이 담긴 한식. 그 귀함을 새삼 느끼는 여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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