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학년도 2월이 되면 특수교사들은 자식 같은 아이들을 수료시키며 한 해동안 성장한 아이들의 모습에 감동받습니다. 특수교사의 덕목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로, "아이들의 작은 변화에 크게 감동받기"라고 적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는 특수교사가 생존하기 위해 아주 중요한 것으로 후배 교사들에게도 잊지 않고 전해주는 노하우이기도 합니다.
특수교육현장에서 아이들의 모습은 아주 미세하게 변화합니다. 마치 변화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조급함을 가진 일부 교사들의 경우 교육현장에서 견디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제도 가르친 내용을 오늘 모를 수 있다는 것. 오늘 가르치고 있는 내용을 내일 물어보면 모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요.
사람들은 무의미한 일을 반복하면 미친다고 합니다. 어떤 일을 하던 그 일을 하는 이유와 목적이 있어야 견디고 이루어 낸다는 것이지요. 그게 사람일 것입니다. 작고 쉬운 일이라도 의미가 없다면 그건 크나큰 고통일 것입니다. 제우스를 화나게 했다는 죄목으로 평생 바위를 굴려야 하는 형벌을 받은 시지프스의 이야기가 좋은 예입니다. 돌을 정상에 올리는 것이 목적일 수 있지만 그 정상은 돌이 멈출 수 없는 좁은 곳, 힘들게 큰 돌을 굴려 산을 올라 정상에 다다랐다고 생각하는 순간, 바위는 반대편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맙니다. 영원한 고통의 시지프스에게 유일한 휴식 시간이라곤 정상에 올린 바위가 반대편으로 굴러 떨어지는 그 시간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틀린 일입니다. 제가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시지프스의 형벌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특수교육이 꼭 시지프스의 형벌처럼 의미 없는 일의 반복이라는 생각말입니다. 옛날 집에서 콩나물을 키우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빛을 차단하기 위해 검은색 천을 두껍게 씌워 두었는데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그 천을 걷고 바가지에 물을 쓱, 부어주시던 모습입니다. 바가지로 부어 준 물은 1초 만에 아래로 모두 쏟아져 내려 무슨 영양가라도 남나 의문이 들지만 나중에 검은 천을 걷으면 콩나물이 자라 있더라는 것입니다.
특수교육이 딱 그와 같습니다. 붓자마자 아래로 쏟아져내리는 물과 같지만 그 물을 맞은 콩나물은 자라듯이, 매일매일 반복되는 수업에도 아이의 변화는 없는 것 같지만 그 무의미해 보이는 수업이 쌓이고 쌓이면 아이는 분명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 자람의 정도가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지만 결코 자라지 않는 아이는 없었습니다. 물을 꾸준히 주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아이들의 하루하루가 모여 소중한 시간이 모입니다. 누군가는 무의미한 외침이라고 여겼던 하루하루가 190개가 모이면 한 학년이 마치게 됩니다. 그 190일의 기록을 이렇게 한 곳에 모으면 아이의 변화는 더욱 두드러집니다. 3월 아이들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비교하면 제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과 관련된 기록, 사소한 하나까지 모아봅니다. 포트폴리오 자체이며 성장참조 평가가 됩니다. 아이들의 가정으로 보낼 평가지, 학습지, 노트, 일기장, 학급앨범, 공예작품까지 모두 담습니다. 짧은 학년말 방학이지만 그 방학에 살필 수 있는 놀 거리도 몇 가지 챙겨 넣었습니다.
이 결과물을 받으실 학부모님을 생각해 봅니다. 2023년 한 해를 고스란히 담은 이 기록들을 의미 있게 살펴보시길 부탁드립니다. 사진을 놓고 한 장 한 장 넘기며 아이와 이야기를 나눠보시길, 그리고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만든 학습의 결과물을 보며 격려를 아끼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한 해 농사를 마치고 가을 결실을 거두는 농부의 마음이 이와 같을까요? 한 해동안 정성 들여 키운 자식 같은 학생들을 이제 고3으로 올려 보냅니다. 그리고 2024년에 펼쳐질 이 아이들의 내일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수료식의 계절이 되면 모든 특수교사는 같은 마음입니다. 아이들과 가정을 향하는 마음의 시선, 그게 우리의 전부입니다.